고도전주 파수꾼에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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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풍남문이 곧 전주 아니겠습니까. 전주를 지킨다는 보람으로 이 일을 자원했고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전주의 상징 풍남문(보물 제308호)을 30년간 자원해 관리해 오는 정종실씨(56·전주시 서서학동22)는 오늘도 오전4시에 나와 주변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가, 파수의 눈길을 떼지 않는다.
정씨가 풍남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26세 때였다. 전동사무소 고용원으로 취직돼 출근하던 날, 당시만 해도 울타리조차 쳐있지 않은 풍남문이 부랑자들의 합숙소가 돼 오물이 널리고 악취가 품기는 쓰레기장으로 방치된 것을 보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았다고 한다.
『75년초 동사무소를 그만두고부터 본격 풍남문지기를 시작했습니다.』
전주시는 82년부터 정씨를 일용인부로 고용, 보수를 지급하고 있으나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에 보수를 받을 수 없다며 수령액 거의를 이웃돕기 성금에 보태고 있다.
독립기념관 건립 때도 전북지역에서 맨 먼저 성금을 기탁했고 전북도가 서울에 세우고 있는「전북 애향학숙」 건립에도 한몫 거들었다.
정씨의 이 같은 삶이 알려져 84년2월 미화원으로 일하는 부인 박영자씨(48)가 자궁암으로 전주예수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무료 수술을 맡아 완치했는가 하면 각계에서 성금도 쏟아졌다.
『배우지 못해 학문으로 기여할 수 없지만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풍남문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활짝 웃는 정씨의 모습엔30년 외길 남을 위한 봉사의 정신이 짙게 배있었다.【글·사진 현석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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