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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영하 197도 액체질소 속 잠든 사람들, 언제 다시 깨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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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황열이란 섭씨 40도에 가까운 고열과 황달로 인해 우리 피부가 누렇게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황열이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바이러스성 질환임을 알고 있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황열은 나쁜 공기, 특히 여름철의 뜨겁고 탁한 공기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미국의 의사 존 고리(1803~1855)는 황열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얼음을 이용하려 했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공기가 더운 계절일수록 얼음을 구하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고리 박사는 메스 대신 망치를 들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압축공기를 이용한 제빙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냉장고는 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했던 한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1967년 이후 ‘냉동인간’ 수백명
난임 문제 해결한 냉동 정자·난자
최근엔 쥐 냉동 신장 이식 성공
인체 냉동 해동법 언제 나오나

살아있는 상태로 얼린 세포

냉동인간 보존은 사람의 시신을 섭씨 영하 197도의 액체질소 탱크에 넣어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금의 과학기술로선 냉동인간을 소생시킬 수 없다. [중앙포토]

냉동인간 보존은 사람의 시신을 섭씨 영하 197도의 액체질소 탱크에 넣어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금의 과학기술로선 냉동인간을 소생시킬 수 없다. [중앙포토]

1991년, 알프스 산맥을 등반 중이던 등반가가 얼음에 묻힌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불행한 조난자인 줄 알았던 시신의 정체가 무려 5300년 전에 사망한 청동기시대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일명 ‘아이스맨’ 외치(Oetzi)의 발견이었다. 만년설에 묻혔던 외치의 시신은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서도 여전히 그 시대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시신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를 얼리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에 대한 가능성이 알려졌던 건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18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생리학자 스팔란차니는 개를 이용해 연구를 하던 중, 개의 정자가 차가운 눈 속에서도 생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생존율은 높지 않았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물 때문이었다.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지만 냉동된 세포를 죽이는 것도 역시 물이다. 물이 얼면서 생기는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세포막을 찢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메틸 설폭사이드’(DM SO)의 발견은 행운이었다. 무색무취의 극성 액체인 DMSO는 세포 내 물과 자리바꿈을 할 수 있고, 얼음 결정을 만들지 않아 세포의 물리적 손상을 막을 수 있다. 또 냉동 보관시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오히려 세포는 안정적으로 보관된다는 사실을 알려지며, 냉동보관제도 기존의 액체 이산화탄소(영하 79도)에서 액체 질소(영하 197도)로 바뀌며 세포의 동결보존시 생존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이에 1953년에는 최초로 냉동 보관되었던 사람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이 시도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1964년에 ‘저온생물학’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저온생물학의 현재와 미래

현재 저온생물학이 가장 활발하게 응용되는 분야는 보조생식술 분야다. 특히 스텝토와 에드워즈 박사가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 시술을 성공시키면서, 이전부터 이루어졌던 냉동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 외에도 1983년 냉동 배아 이식, 1986년 난자 냉동 성공, 1988년 포배기 냉동 및 이식 성공이 이어졌다.

이제는 생식세포 및 배아의 냉동과 이를 통한 임신 시도가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고, 이는 수많은 난임 부부의 희망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미 사망한 이의 생식세포를 이용해 유전적 자손을 낳거나, 타인의 생식세포를 훔쳐내는 등 비윤리적이고 불법적 사건들의 발생도 늘어났다. 빛에는 늘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랄까.

세포가 냉동 가능하다면 장기는 어떨까. 지난 7월 2일 ‘사이언스’의 표지는 자그마한 쥐의 신장이 차지했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죤 비숍과 에릭 핑거 교수가 실험용 쥐에게서 100일간 냉동 보관된 장기를 이식해 생존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와 함께 말이다. 물론 실험용 생쥐는 사람에 비해서는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이 성공이 바로 인간 장기 냉동 보존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포 수준이 아닌 그보다 훨씬 상위 단계인 장기의 냉동이 가능함을 증명했기에 추후 물리적 크기를 점차 키워나가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최종 목표는 결국 인체 전체의 냉동과 생명 연장이 될 것이다. 흔히 ‘냉동인간’으로 불리는 일종의 인간 동면 기술의 등장이다.

전신냉동 22만 달러, 뇌는 8만 달러

물론 냉동인간 그 자체는 지금도 존재한다. 사실 저온생물학이 태동하자마자 가장 먼저 사람들이 눈길을 돌린 것이 이것이었다. 저온생물학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3년밖에 지나지 않은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 교수이자 신장암을 앓고 있던 베드포드 교수가 최초의 냉동인간이 되어 액체 질소 속에 보관된다. 그리고 베드포드 교수의 육체는 4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알코어 생명재단의 관리 아래 여전히 냉동 탱크 속에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언젠가 다가올 부활을 꿈꾸며 냉동 보관되어 있다. 현재 시세로 22만 달러(전신 냉동 보존)에서 8만 달러(뇌 보존)의 비용을 지불하면 누구나 신체를 냉동해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로는 신체 전체의 냉동 보존이 재생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기꺼이 돈과 몸을 지불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있다. 이들이 기대는 것은 미래의 후손들이다.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이 획기적인 해동법을 알아내고, 손상된 조직을 복구할 수 있는 의학적 발전을 이뤄낼 거라고 말이다. 어쩌면 줄줄이 늘어선 액체질소탱크가 의미하는 바는 멈추지 않은 인류의 전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일지도 모른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