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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선영의 마켓 나우

잭슨홀에서 나온 공공부채 비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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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매년 8월 말 미국 캔자스시티 잭슨홀에서 사흘간 전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회동한다. 작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올해도 그의 발언에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올해 모임에서 스타는 학자였다.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높은 공공부채와 함께 살아가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향후 세계 경제성장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며, 정부지출은 지정학적 갈등, 고령화, 기후변화 때문에 늘어날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갈등 고조로 주요국 정부가 군사력을 확충하고 있다. 의료·연금 지출은 계속 급격히 증가한다. 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인 노년부양비(OECD 계산 방식)는 OECD 평균 2023년 33%에서 2050년 5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같은 기간 28%에서 79%로 증가한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각국 정부는 코로나19와 최근 유럽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백신 프로그램과 가계·기업 재정지원 패키지를 시행하는 등 과감한 개입에 나섰다. 그 결과 공공부채 수준이 높아졌다. 여기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등 차입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이미 부채가 많은 국가가 채권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조달하는 게 어려워졌다.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 상승은 경제정책이 더욱 정치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에서, 얼마만큼을 걷어서 누구에게 지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고차원방정식이다. 더구나 세원 트렌드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탄소중립경제로 전환하면 유류세는 감소한다. 고용소득이 아닌 연금소득으로 생활하는 인구비율이 증가하면 소득세가 줄어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까지 G7 중 5개국에서 GDP 대비 순부채 비율이 100%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2010년대 저금리 시대에는 이러한 부채가 지속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부부채비율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거나 세금을 더 걷거나 지출을 덜 하는 것이다. 성장률은 높이기 쉽지 않다.

보편적 세원확대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한다. 지난 1일 발표된 국민연금 개혁 초안에 우리 미래세대의 명운이 걸려있음에도 정치권이 조용한 이유다. 숫자로 보면 더 내고 더 늦게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더 받게 해달라는 요구는 공허하다. 여야가 미래세대를 위해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인 적도 없으면서 재정정책을 정쟁에 이용하는 것은 비겁하다. 최선은 현재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게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우리 정치경제지형의 한계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