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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직원평가는 간단하게, 명료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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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미국 수퍼체인 ‘트레이더 조’(일명 트조)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맞다. 최근 ‘한국산 냉동김밥 열풍’으로 출시 2주 만에 미국 전 매장에서 품절대란이 일어난 수퍼체인이다. 국내에선 그전까지 주로 쇼핑 마니아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트조는 신선식품 위주의 그로서리 스토어 체인으로 미국 전역에 54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자체 브랜드 상품(PB)으로 차별화된 트조는 직원 만족도가 다른 수퍼체인보다 높은 곳이기도 하다.

거의 1년 내내 평가하는 구글
‘냉동김밥’ 유명한 ‘트조’는 2회
빅테크 기업도 점차 단순해져
평가 목적은 개인 성장 돕는 것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구글 본사가 있는 도시인 마운틴뷰의 트조 매장에서 크루 멤버로 알바를 시작한 지 6개월을 넘기면서 최근 첫 성과 리뷰를 경험했다. 리테일 분야에서 경쟁사를 앞서나가는 트조에서의 성과 관리 시스템이 지난 25년 넘게 일해 온 글로벌 유수 기업들의 정교하고 체계적인 성과 관리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성과 평가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낭비한다는 비판을 늘 받아왔기에 다른 산업에 있는 회사 평가 시스템에서 시사점을 얻고 싶었다.

첫째, 1년에 두 번 있는 트조 평가 기간은 상당히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진다. 업무 평가로 직원들의 일 집중도를 흐트러뜨리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것 같다. 트조에서는 평가 리뷰 안내 이후, 실제 평가가 이루어지고 평가 보고서가 나온 뒤 1대 1 평가결과 미팅까지 모든 것이 2~3주 안에 다 끝난다. 물론 10만 명이 넘는 직원이 각기 다른 복잡한 일을 하는 구글과 같은 기술기업과 5만 명 정도의 직원이 표준화한 일을 하는 트조의 평가 시스템은 다를 수 있다.

다만 직원 입장에서 봤을 때 평가 기간은 가능하면 짧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구글에서는 한 분기 평가가 끝나면 일주일도 채 안 되어 바로 다음 평가 사이클이 시작된다. 평가 사이클이 재개된다는 얘기만 나오면 치과 치료받는 것 이상으로 다들 고개를 흔든다. 이렇게 1년 내내 진행되는 평가는 일 집중을 방해한다. 많은 시간을 평가 준비, 동료 리뷰, 사후 조정 등에 쏟고 있다. 이런 비효율성 때문에 넷플릭스는 연간 평가 제도를 없애고 동료 피드백 제도로 바꾸었다고 들었다.

둘째, 트조 평가 등급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평가 등급은 ‘기대를 충족했다’ ‘개선할 점이 있다’ 딱 두 개뿐이다. 반면에 구글의 평가 시스템은 복잡하기로 악평 났다. 올 초 4등급으로 다소 완화되기 전까지 5등급이었다. 탁월하게 잘함, 기대를 크게 초과함, 기대를 초과함, 기대를 꾸준히 충족시킴, 개선이 필요함. 이렇게 자잘한 등급은 평가자와 피평가자마다 해석 수준이 달라 불만이 일어난다. 사후 조정 단계를 거치지만 평가에 후하거나 박한 매니저에 따라서 ‘기대를 크게 초과함’과 그냥 ‘기대를 초과함’의 등급 정의가 임의적이라고 느끼는 직원들의 불만이 자주 제기되었다. 평가 시스템의 성공 여부는 직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직원들이 회의적으로 본다면 그 조직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알바생인 내가 느끼기에도 트조 평가 시스템은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평가는 지난 기간에 대한 업무 평가이다. 그렇지만 평가 내용을 리뷰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한다. 알바생인 나의 미래 성장 기회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매니저와의 미팅에서 나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회사 경험을 살려서 매장 성공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대화 이후 딱 1주일 뒤에 매장의 쿠키·캔디 섹션리드 역할을 제안받았다. 섹션리드란 매장의 한 분야를 맡아서 제품 주문부터 재고관리, 제품 디스플레이까지 맡는 자리다. 신참 알바생의 의견도 귀 기울여서 듣고 성장 기회를 찾아주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나는 6개월 만에 트조에서 섹션리드가 되었다.

늘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기업이 성장한다고 자동으로 내가 성장하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개인이 성장하도록 돕는 매니저와 회사가 중요하고, 자신의 성장을 늘 돌아봐야 한다고 말이다. 이번 성과 평가로 알바 시급이 시간당 1달러 올랐다. 1년에 두 번 평가하니, 한 번 더 오르면 1년에 10% 넘게 임금이 오를 수 있다. 트조에서 장기간 알바를 해 온 동료 중에는 다른 곳보다 두 배 높은 시급을 받는 사람도 있다. 트조가 제품력과 고객 감동으로 유명해졌지만, 그 뒤에는 직원들의 성장을 독려하고 진정한 파트너로 대하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성심껏 일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1년 프로젝트인 ‘실리콘밸리 몸체험’의 하나로 시작한 트조 알바지만, 내가 다시 회사 생활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한 주에 8시간 정도 트조 알바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