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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봄의 제전’의 혁명…익숙한 것의 파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진회숙 음악평론가

진회숙 음악평론가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은 러시아 발레단이 공연하는 ‘봄의 제전’을 보러 온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막이 열리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용한 도입부에 이어 북이 ‘밤밤밤밤’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극장 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관객들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무용과 음악에 충격을 받았다.

‘봄의 제전’이 보여주는 야만적인 춤과 파괴적인 음악은 당시 관객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의 금관악기는 비명을 내고, 플루트는 ‘푸드득’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며, 클라리넷은 비명을 지르고, 튜바는 뱃고동처럼 거친 소리를 냈다. 연주자들은 악기마다 다른 리듬 때문에 쩔쩔맸으며,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박자 때문에도 애를 먹었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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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야생의 파티를 보고 관객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악을 쓰고 휘파람을 불면서 난리를 쳤다. 소동이 극에 달하자 극장 측에서는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소동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부터 시작된 소란이 너무 커지자 급기야는 경찰이 개입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하지만 2막에서도 소동이 진정되기는커녕 더 커졌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격렬하게 ‘봄의 제전’에 저항했을까. 그것은 이 작품이 우리가 이제껏 익숙하게 보고 들었던 것들을 과감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에 이렇게 관객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켰던 ‘봄의 제전’이 오늘날에는 20세기 예술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익숙한 것을 파괴해야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은 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그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역사는 무수한 반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