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강명의 마음 읽기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비전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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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 그 집 강아지를 봐준다. 그런 때 근처에 사는 초등학생 조카들이 놀러 오기도 한다. 어린 푸들과 어린 호모사피엔스들이 방방 뛰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본다. 그들은 5년 뒤, 10년 뒤에 대한 걱정 없이 오롯이 지금 이 순간을 사는데, 그게 그렇게 부럽다. 나의 번민, 불안, 두려움은 대부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데서 온다.

정부 바뀌어도 ‘긴 안목’안 보여
즉흥적 발언·대책에 미래 불안
고령사회·기후위기 등 준비됐나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영적 스승을 자처하는 이들의 가르침 중에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라든가, 현재에 집중하라는 내용이 많다. 어떻게든 될 테니 그냥 걱정 자체를 버리라고 한다. 낭만적인 성향의 예술가들도 그런 말을 좋아한다. ‘케세라세라’ ‘카르페 디엠’ ‘하쿠나 마타타’처럼 이국적으로 들리는 문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별로 낭만적인 인간이 아닌지라 저런 조언을 그냥 ‘걱정에 압도되면 안 된다’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 하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삶이 망가지는 사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자세가 파국을 낳는 과정을 몇 번 봤다. 따지고 보면 우리 뇌가 맡은 임무가 바로 걱정이다. 인간의 뇌는 자연이 만든 최고의 시뮬레이터다. 엄청난 산소를 소비하며 눈앞에 없는 각종 상황을 쉬지 않고 시뮬레이션한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보다 훨씬 더 뛰어난 생존 도구다. 그 고급 도구를 사용하는 대가로 우리는 끊임없이 앞날을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걱정한다.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나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키팅 선생님 말씀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에 더 끌리는 편이다. 사실 내 생각은 좀 더 암울한데, 세상 누구도 미래를 자기가 원하는 그 모습 그대로 창조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내 생각에는, 사람은 비전을 만들고 거기에 기대 불안을 다스릴 수 있다. 비전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런 비전조차 힘을 발휘한다.

비전은 소망 이상이다. 냉철한 현실 인식, 구체적인 실현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 고결한 가치를 담아야 하겠다. 그래야 최악의 경우에도 ‘내가 어떤 가치를 지켰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비전이 있으면 길 잃은 기분에 빠지지 않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얻으며, 그래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고난에도 더 잘 버틴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행운을 기대하지 않고 도박을 하지도 않는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멀리 내다본다(묘하게도 내년, 내후년보다 10년 뒤, 20년 뒤 비전을 세우는 게 종종 더 쉽고 실현 가능성도 더 높다).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도 비전은 중요하다. 우리는 최고경영자에게, 정치지도자에게 비전을 요구한다. 나는 2년 전에 이 지면에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당시 정부에 대해 ‘정교한 비전과 철학이 부족했’다고 썼다. 현 정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하려는 참이다. 출범 이후 국정 운영에서 정교한 비전과 철학보다 그 정반대에 있는 것, 바로 즉흥성을 훨씬 더 자주 봤다.

예컨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섯 달 앞두고 ‘킬러 문항’을 빼겠다고 발표하는 일 같은 거다. 방식이 즉흥적으로 보이니까 방향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은 어떤가. 갑자기 시작했고 갑자기 중단했다. 그러고는 신년 기자회견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무슨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읽어야 할까.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둘러싼 혼선은 어땠나. 주69시간을 일하게 되는 거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며칠간 고용노동부, 대통령실, 그리고 대통령 본인의 설명이 다 달랐다. 다른 사례도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대통령이 여러 사안에 세세하게 지시를 자주 내리는데, 상당수가 즉흥 발언으로 들린다. 그 와중에 정부 조직의 아랫단에는 ‘케세라세라’ ‘하쿠나 마타타’ 정신이 깃든 것 아닌가 싶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 사태를 보며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원래 이렇게 무능했나, 궁금했다. K팝 아이돌을 동원해 잼버리 파행 사태를 무마하는 K수습책을 보며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졌다. ‘우리 수준이 그렇지 뭐’ 하는 기분. 자유를 강조하던 대통령이 그때 “아티스트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지시했다면 적어도 이 정부가 지키겠다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거다. 고령사회, 지방소멸, 중산층 붕괴, 인공지능, 기후위기에는 이 정부가 준비를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 길 잃은 기분 속에 미래가 두렵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