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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덕성 실종 ‘7무 정치’…이 대표 리더십 위기 일상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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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08면

[여의도 톺아보기] 이재명 대표 취임 1년 성적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이 대표는 1년 전 전당대회 때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재집권을 위한 토대를 만들겠다. 상대 실패에 기대는 무기력한 반사이익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합리적인 견제와 협력, 실용적 민생 개혁을 제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능한 민주당’과 ‘통합의 민주당’ 청사진도 제시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대표는 이런 약속을 얼마나 실천했고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만한 리더십을 얼마나 발휘해 왔는가.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절반에 가까운 47.8%의 지지를 받은 데다 77.8%의 압도적 득표로 당대표에 당선된 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에 맞설 적임자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오히려 ‘리더십 위기의 일상화’에 직면해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여의도 정가에선 이 대표 체제 1년이 ‘7무 정치’로 집약된다는 평가가 적잖다. 민생 없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한 방탄만 있고, 당내 민주주의 없이 ‘이재명 사당화’만 있고, 당 안팎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 없이 친명·비명 분열만 있고, 당을 살리는 혁신 없이 꼼수만 있고, 도덕성 없이 몰염치만 있고, 성과 없이 오로지 대여 투쟁만 있고, 내 탓 없이 네 탓만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정치 리더십에 꼭 필요한 게 ‘공감’인데, 이런 7무 정치 상황에서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대표 체제 1년에 대한 ‘실증적’ 평가는 3대 민심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정당 지지도다.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14차례 조사에서 민주당은 단 세 차례만 30~31%를 얻었고 나머지는 모두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 세 차례 조사에선 23%까지 추락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 지지도는 30→32→34%로 꾸준히 상승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과 잼버리 파행 등에 대해 파상 공세를 폈지만 당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로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둘째는 정당 호감도다. 이는 향후 지지층 확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꼽힌다. 이 대표 취임 직전인 지난해 7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에 호감이 간다는 응답은 32%였다. 그런데 1년 뒤인 8월 첫째 주 조사에선 오히려 30%로 떨어졌다. 당대표 역할 수행 평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셋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대표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2%로 당시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35%)보다도 낮았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60%에 달했다. 중도층에서도 상당수가 이 대표에게 사실상 ‘낙제점’을 준 셈이다.

왜 이런 상황이 초래됐을까. 왜 이 대표는 야권의 희망이 아닌 ‘리스크’의 대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혁신의 실종이 뼈아프다. 잇단 악재를 딛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 했던 혁신위마저 끊이지 않는 논란 속에 오히려 당을 더욱 수렁에 몰아넣는 최악의 결과만 낳았다. 도덕성의 실종은 더욱 심각하다. 전대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 코인 거래 논란 등으로 민주당이 늘 상대적 우위라고 주장해온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지만 정작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 탓에 돌파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민주당은 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강조해 왔다. 두 전직 대통령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 ‘특권과 차별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내세우면서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제시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등 국익·실용 우선 원칙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어떤 가치로 민주당을 이끌지 뚜렷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당은 오로지 반정부 강경 투쟁과 수적 우위에 기반한 법안 강행 처리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강성 팬덤은 불에 기름을 얹은 격이 됐다. 정치인은 선거 승리를 위해 열성 지지층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좌표를 찍고 문자 폭탄을 보내며 욕설을 퍼붓는 악성 팬덤은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당내에서도 이런 행태가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키우고 있는데도 이 대표가 저지는커녕 방관만 하면서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스스로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정치권의 관심은 ‘과연 이 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을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향후 민주당은 몇 번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내분이 격화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정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당장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둘러싸고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은 국회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법원 영장실질심사 후 이 대표가 구속될 때다. 이럴 경우 이 대표에겐 세 가지 대안이 가능하다. 대표 퇴진 거부와 총선 옥중 공천, ‘질서 있는’ 퇴진 후 조기 전대 개최, 지도부 동반 사퇴 후 비대위 전환 등이다.

친명계는 공천권을 유지하는 1안에 집착하겠지만 이 대표가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지역 기반이 없고 중도층 흡입력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최대 걸림돌이다. 그래서 제기되는 게 2안으로 ‘이 대표 12월 전격 사퇴설’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차기 대표 자리를 둘러싸고 친명·비명계의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대의원제 폐지 논란이 그 예고편이다.

결국 남은 카드는 비대위다. 최근 당내에서도 “비대위가 가장 현실적 대안이자 타협점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이 대표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분열 대신 ‘단합’이 필수라는 주장도 곁들여진다. 관건은 이 대표가 과연 결단을 내릴 수 있느냐다. 당과 본인 모두를 살리는 길이 뭔지 깊이 숙고한 뒤 사즉생의 각오로 선당후사하는, 당대표로서 ‘책임지는 리더십’과 희생하는 용기를 보일 수 있을지에 여의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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