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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360%로 설계 논란…서울시·조합 강대강 대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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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14면

압구정 3구역 재건축 갈등 심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의 모습. 압구정 3구역은 서울시의 신통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의 모습. 압구정 3구역은 서울시의 신통기획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서울의 재건축 ‘최대어(魚)’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 3구역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재건축조합과, 조합이 선정한 사업 설계사인 희림건축이 서울시의 설계 지침을 위반하는 재건축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논란 때문이다. 서울시와 조합, 설계사 간의 갈등은 법적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해안건축과 압구정 3구역 조합원 14명은 조합을 상대로 ‘설계사 선정 및 대의원회 계약 체결 위임 건’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타당성을 검토 중이다. 원고 측은 법원에 총회 결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설계 계약 체결 등 후속 절차 진행을 막아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안건축은 지난달 15일 조합 총회 투표에서 희림건축에 밀려 압구정 3구역 재건축 사업 설계사로 선정되지 못한 업체다. 당시 희림건축은 1507표, 해안건축은 1069표를 각각 받았다.

희림건축이 해안건축 등 최고 용적률 300%를 제안한 경쟁사와 달리 용적률 360%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 다수 조합원이 찬성한 때문이다. 압구정 3구역은 서울시가 개입해 사업성과 공공성을 결합한 정비계획안을 짜는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 방식의 재건축이 결정된 곳이다. 2021년 11월 조합원들이 신통기획 참여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신통기획에서 허용한 최고 용적률은 300%다. 희림건축의 설계안대로 360% 용적률로 재건축하려면 신통기획이 아닌 민간 주도의 일반 재건축 방식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얘기다.

설계사 징계위 회부, 영업정지 검토

다수 조합원들은 왜 이를 알면서도 희림건축의 설계안에 찬성표를 던졌을까. 복수의 조합원 전언을 종합해보면, 희림건축은 “서울시의 친환경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용적률을 360%까지 높일 수 있다”며 조합원들을 설득했고 이게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가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지구단위계획의 주요 방향을 친환경 건축물 조성 유도로 정했고, 압구정 3구역의 지구단위계획상 상한 용적률 역시 향후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희림건축의 설명이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친환경 건축물에 대한 용적률 완화 지침을 발표하면서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서도 이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안건축과 일부 조합원들은 “서울시 지침에 따르면 지능형 건축물과 제로에너지 건축물 등의 친환경 인센티브는 지구단위계획엔 적용이 안 된다”며 “또 이를 모두 적용해도 최고 용적률 300%를 넘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 입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지난달 11일 희림건축을 사기미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조합의 표결이 난 직후인 지난달 17일엔 “지침을 무시한 설계안으로 시장을 교란시킨 희림건축 선정은 무효”라며 조합이 재공모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31일부터 조합 운영 실태조사에 나섰다. 서울시는 그 결과 총 12건의 부적정 운영 사례를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시는 희림건축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영업정지 조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압구정 3구역 재건축을 둘러싼 갈등 고조에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 시장은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신통기획은) 조합원과 서울시민이 윈-윈(win-win)하는 사례를 만들려는 거고, 조합에 최대한 혜택을 주되 그 혜택이 공공에 기여하는 형태로 주어지게 하려는 것”이라며 “재건축을 통해 자산 가치를 더 확보하고 싶은 인간의 이기심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세력이 개입한 게 문제”라고 저격했다. 그러면서 오 시장은 “조합원들에게 절대로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울시가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건 신통기획 자체가 오 시장이 2021년 4월 취임 후 야심차게 내놓은 사업인 데다, 한국의 대표 재건축 사업이라는 압구정 3구역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신통기획은 도심 주택의 신속한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한다. 동시에 공공성을 중시한다. 대표적인 게 소셜 믹스(social mix)다.

소셜 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가구와 공공임대 가구를 함께 조성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양쪽이 구별되지 않도록 동일하게 설계, 공공임대 가구가 차별을 당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을 서울시는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통기획에 참여하는 설계사들은 적극적인 소셜 믹스 방안이 담긴 설계안을 내야 한다. 이번 압구정 3구역의 설계 지침 위반 논란에서도 쟁점 중 하나가 용적률이라면, 다른 하나는 소셜 믹스 등 공공성 강화 여부다.

희림건축은 설계안에서 공공임대 가구가 살 곳을 조합원이 거주하는 동과 분리했다. 일부 조합원 입장에선 매혹적인 조건이지만, 서울시로선 묵과하기가 어려운 조건인 셈이다. 또한 서울시는 한강변인 압구정 3구역의 공공성 강화를 고려, 공공 보행로를 조성하면서 재건축 단지 내부를 관통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희림건축은 공공 보행로를 단지 바깥쪽으로 우회하도록 해 단지 내 일반인 통행을 제한하는 설계안을 제시했다. 한 조합원은 “총회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등 희림건축에 실현이 가능한 설계안인지를 거듭 물었지만, 희림건축이 ‘명확한 서울시 지침이 없었다’는 식의 홍보만 일삼으면서 잘못된 표결을 부추겼다”며 “녹취록 등 증거 자료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조합 집행부는 설계사 선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안중근 조합장이 “아직 정해진 바가 없고 법적 검토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다른 조합원은 “희림건축의 설계안은 친환경 인센티브 등 서울시의 당초 지침에 충분히 부합한다”며 “서울시가 정치적으로 말을 바꾼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일부 조합원은 ‘효력 정지’ 소송 내

일각에선 이 같은 갈등이 다른 재건축 대상지 주민들의 신통기획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서울시가 정비사업에 차질을 빚진 않을까 우려 중이다. 압구정 3구역처럼 법적 공방과 재공모 추진 등으로 이어질 경우 재건축 속도도 더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관(官) 주도로 빠르게 재건축한다는 게 신통기획이 나온 배경인데, 과정 자체는 기존 민간 재건축 사업과 동일하다는 데서 피로감을 갖는 주민도 있다”며 “기부채납 등에 따른 공적 부담 가중도 주민들 입장에선 달갑잖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원한 다른 대학교수는 “주택 공급 속도도 중요한 요소지만 공공성 강화 원칙도 깨서는 안 된다”며 “소셜 믹스처럼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정책은 관 주도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초·송파서도 신통기획 잡음…서울시 “흔들림 없이 추진”

서울시의 신통기획은 기존에 재건축 계획을 세우는 데만 5~6년씩 걸리던 기간을 1~2년으로 단축, 빠른 재건축으로 서울시내 주택 공급난을 해소함으로써 집값을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등 부촌을 중심으로는 난항을 겪고 있다. 법적 분쟁, 주민 간 갈등, 서울시를 향한 주민 반발 등 때문이다. 일각에선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일환으로 신통기획을 통해 한강변 재건축의 공공성 강화를 강조하다보니 주민들의 부담이 늘거나, 재건축 속도가 느려지는 모순이 생긴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3월 신통기획이 확정된 서초구 잠원 신반포2차는 일부 주민들이 “일반 재건축에 비해 득보다 실이 크다”며 반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4월 재건축 조합장을 업무방해죄 등 혐의로 고소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조합에서 반대 의견이 있는 사람들이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용역 업체를 써서 방해했고, 서울시도 이를 묵인하는 등 불투명하게 일처리를 했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신통기획으로 일반 재건축 시나리오에 비해 부담금이 가구당 최대 9억4000만원에서 13억1900만원으로 늘어 재산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반포2차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에 따른 ‘수변 특화 단지’로, 이에 맞는 구조와 녹지 공간 확보, 공공 시설물을 확충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주민들이 나눠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에 따른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송파 한양2차의 경우 지난해부터 신통기획을 추진했지만 이로 인해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가 1년 연장됐다. 거래가 막히면서 주민 반발이 거셌다. 결국 신통기획 추진을 반대하는 주민 비율이 85%에 달해 조합 측이 서울시청에 철회를 요청했지만, 서울시가 이미 예산을 투입했다는 이유로 거부해 사업이 그대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신통기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부촌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외된 낙후 지역을 빠른 속도로 재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2차 신통기획 후보지로 우선 발굴한 곳도 낙후도가 높고 침수 이력이 많아 재개발이 시급한 금천구 독산 시흥구역, 관악구 신림 5구역과 상도 15구역 등지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소외된 낙후 지역의 재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행정적으로 최선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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