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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가 자극한 한·미·일 결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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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해 한·미·일 정상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회담은 핵 추진 잠수함 및 최신 군사 기술 협력을 위한 호주·영국·미국의 협의체인 오커스(AUKUS)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관련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역사적 관점에서 오커스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행사일 수도 있다.

캠프 데이비드 회의 결과 주목
한국의 적극적인 행동도 한몫
집단 안보로 가는 돌파구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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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미국·영국·호주의 협력을 두고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지만, 일본과 한국의 전략적 협력은 차원이 다르다.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한·일 관계의 전략적 모호성과 양국의 불필요한 마찰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를 불러왔다. 미국의 동맹 체제를 붕괴시켜 중국·러시아·북한으로 하여금 동북아가 미국의 영향권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는 확신을 줄 수도 있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국이 행동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민주국가의 가치와 이해관계에 부합하면서도 자유롭고 번영하는 아시아의 미래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아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3국 정상은 어느 한 국가가 공격받으면 즉각 3국이 협의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사실 궁극적으로는 집단 안보로 가는 길이다.

이전에도 한·일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된 적이 있었다. 미국이 돕기도 했고 때론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기도 했다. 예컨대 1965년 한·일 관계 정상화 선언은 알고 보면 에드윈 라이샤워 당시 주일 미국대사의 막후 역할이 컸다. 이를 통해 한국은 경제적 혜택을, 일본은 전략적 혜택을 입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대는 한·일 관계 격동의 시기였지만 후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두 나라 화해를 추구했고, 이런 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와 전두환 대통령은 밀접하게 협력했다. 이런 돌파구들은 정치 리더십과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도 용단을 내렸다. 정치적으로 보수인 윤 대통령과 중도 보수로 알려진 기시다 총리는 두 정상은 지지율이 30%대에 불과한 상황인데도 결단을 내려 더 대단해 보인다. 마치 골수 반공주의자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중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지지율이 높았던) 아베 신조 총리나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보자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보다 훨씬 더 쉽게 양국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다른 나라끼리의 관계 개선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면서 한·일 갈등이 악화하도록 방치했다. 일부 미국 국방부 고위 관료들의 노력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리더 자리를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와 정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은 3국 협력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양자 동맹뿐만 아니라 동맹의 네트워크가 안정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며 북·중·러 관계에 지렛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으로 끝났던 과거의 관계 개선 노력과 이번 합의는 과연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변수에 달렸다고 보여진다.

첫째,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 대다수는 일본이 과거사 정리를 위해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문제는 한국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과감한 조처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지지 기반이 일본 정부에는 없다는 점이다.

둘째,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 관계 화해에 의지를 갖고 집중해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차기 행정부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트럼프가 재집권하게 된다면 말이다.

셋째, 한국의 민주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반일 공세를 선거 전략으로 삼아 이번 화해 국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점증하는 중국의 도전, 북한의 도발, 러시아의 호전성, 강화되는 북·중·러 협력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당위성을 계속 떠받쳐 줄 것이다. 이렇게 될 거라고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알았을까 궁금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