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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인턴이 간다 | MZ세대 9급 공무원들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봉에 악성 민원까지… 공무원이 꿀 빤다는 건 헛소문”

■ 공무원 인기 하락하자 학원 몰려있는 노량진 상권 칼바람
■ “박봉에 옷도 못 사고 외식 제대로 못 해… 처우 개선 시급”

공시생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노량진 ‘컵밥 거리’가 한산하다. 공무원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노량진 상권도 칼바람을 맞았다. 이 거리에서 10년째 컵밥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은 “지금이 10년 중에 최악이다. 코로나 때보다 손님이 더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진 권혁중 인턴기자

공시생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노량진 ‘컵밥 거리’가 한산하다. 공무원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노량진 상권도 칼바람을 맞았다. 이 거리에서 10년째 컵밥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은 “지금이 10년 중에 최악이다. 코로나 때보다 손님이 더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진 권혁중 인턴기자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공무원은 취업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해고 당할 걱정 없는 ‘철밥통’인데다, 퇴직 후 받는 연금도 두둑해 노후를 대비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까지 보장된다는 소문은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을 상승시키기에 충분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상권이 커진 이유다.

하지만 공무원 직종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노량진 상권도 시들해졌다. 점심 장사 준비로 한창 바쁠 시간인 오전 11시 20분. 노량진 공시생의 주린 배를 채워준다는 ‘컵밥 거리’의 23개 노점 중 14개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지금이 10년 중에 최악이다. 코로나 때보다 손님이 더 없다.”10년째 컵밥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상인은 한숨만 쉬었다. 20년째 문구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노량진은 공시생 때문에 먹고사는 곳인데, 공시생이 코로나 때보다 50%는 줄어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노량진 거리에서 잠시 쉬려고 밖에 나온 공시생 A(남·24)씨를 만났다. 대학을 휴학한 뒤 공무원 준비에 뛰어든 그는 2년차 공시생이다. A씨는 불과 1년 만에 노량진 풍경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원 한 반에 수강생이 80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반이나 줄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바늘구멍 통과해서 합격했더니 월급은 적고 일은 많다고 호소하는 내용이 많더라.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서 다들 눈을 돌리는 것 같다.” 그는 공시생이 감소한 이유로 인터넷 강의를 듣는 수험생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공무원 직종의 인기 하락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5년차 이하 공무원 중 74.1%가 박봉에 불만

박봉을 받는 것도 모자라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는 소식에 공무원 지원자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사진은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모습. / 사진:인사혁신처

박봉을 받는 것도 모자라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는 소식에 공무원 지원자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사진은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모습. / 사진:인사혁신처

취준생들에게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임금 때문이었다. 현재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은 208만5800원. 올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9620원×209시간)인 201만580원과 7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9급 공무원 할 바엔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낫겠다’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공무원이 추가수당까지 더하면 돈을 그럭저럭 번다는 얘기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공무원은 기본급 외에도 직급 보조비, 명절 휴가비 등 최대 18종의 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보수의 20~30%가 건강보험료·소득세 등의 제세공과금으로 빠져나간다. 실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공개한 월급 명세서에 따르면 전라남도 진도군청 소속 9급 1호봉 직원이 지난 5월에 받은 급여는 163만9650원이었다. 기본급에 직급 보조비, 급식비, 대민활동비(5만원) 등을 더했지만 세금을 제하고 남은 건 기본급보다 낮은 금액이었다.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해도 수령하는 돈은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기피 대상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직을 희망한다는 20·30 하위직(6~9급) 5년차 이하 공무원 중 74.1%가 ‘낮은 임금’을 이유로 꼽았다.

9급 공무원의 생활을 더 깊이 들여다봤다. B(남·20대)씨는 지방의 한 교육청에서 전기직으로 근무하는 9급 공무원이다. 그는 관할 내 학교의 전기·소방·통신 공사 및 설계를 감독한다. B씨는 “현장마다 도면과 작업 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매일같이 공부한다. 법규에 맞게 해야 할 것들도 많아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워라밸은 어떠냐고 묻자 그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업무량이 많을 때는 한 달에 30시간은 야근한다. 가끔은 주말도 반납한다”고 말했다. 이런 B씨의 월급 실수령액은 180만원. 관사에 살면서 월세까지 절약하고 있지만 목표로 정한 ‘1년에 1000만원 모으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했다.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아 1년에 약 400만원이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휴대폰 요금·식비 등을 제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옷도 잘 안 사 입고 외식도 덜 한다. 아니… 못 사고 못 먹는 거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그냥 회의감부터 든다”고 토로했다.

공무원 월급만으로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수도권 한 지자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30대 여성 C씨는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안정적인 삶을 원해 9급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남자 친구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적금 통장을 보는 C씨의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C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수단을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엄두도 못 낸다. 지금 월급으로는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악성 민원은 일상… 문제 생기면 책임 추궁 당해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무경력 5년 미만의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은 1만3032명이었다. 노동계에서는 퇴사를 막기 위해 임금 인상 및 불합리한 업무 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무경력 5년 미만의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은 1만3032명이었다. 노동계에서는 퇴사를 막기 위해 임금 인상 및 불합리한 업무 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찰 공무원 D(남·30)씨는 악성 민원에 휘청이고 있었다.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고 욕설을 퍼붓는 취객을 하루에 10번은 상대한다고 했다. 그가 지구대에 배치된 후 처음으로 출동한 사건은 술에 취한 노숙자가 칼로 자신의 손을 자해한 사건이었다. D씨는 “이게 뭔가 싶었다. 자주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처음 출근한 날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D씨에게 주어지는 위험 수당은 하루 약 4000원. 요즘 물가로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 사먹기도 힘든 금액이었다. 그는 “일이 힘든 것도 힘든 건데, 위험한 상황이 너무 많다. 위험 수당은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라고 탄식했다.

9급과 처우가 비슷한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업무 스트레스도 이들 못지않다. 초등학교 교사인 E씨는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통해 자신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애가 학교 오는 길에 넘어져서 다치면 교사 탓, 방학 때 아이가 다치면 안전 교육을 안 시킨 교사 탓, 학생들끼리 싸우는 걸 말리려 팔목을 잡으면 신체 학대란다”며 “애들은 다 너무 예쁜데 이제는 교육을 할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썼다.

취재에 응한 9급 공무원들은 불합리한 업무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앞서 자녀 출산에 우려를 표한 C씨는 “(임용 당시) 실무 교육도 전혀 없이 바로 담당자로 투입됐다. 전임자에게 3시간 정도 인수인계 받은 게 전부”라며 “민원 처리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되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지자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F(남·33)씨는 상사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책임은 실무자가 지고 관리자는 쏙 빠지는 구조다. 특히 관리자가 결재를 해주면서 본인은 책임을 안 지려는 식으로 말할 때는 너무 어이없고 화도 난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임금이 낮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업무 스트레스에 비해 받는 돈은 적다고 생각한다. 누가 공무원이 ‘꿀’ 빠는 직업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렸는지”라고 한탄했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공무원 10명 중 7명이 업무 구조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근무 중인 40대 남성 G씨는 “국가를 위해 일하러 왔는데, 과장과 팀장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지자체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H씨도 “인맥이 없으면 안 되는 조직 문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MZ세대 붙잡으려면 임금 올리고 업무 구조 개선해야

2년차 공시생 A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학원 한 반에 수강생이 80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반이나 줄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바늘구멍 통과해서 합격했더니 월급은 적고 일은 많다고 호소하는 내용이 많더라.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서 다들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0월 노량진의 한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2년차 공시생 A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학원 한 반에 수강생이 80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반이나 줄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바늘구멍 통과해서 합격했더니 월급은 적고 일은 많다고 호소하는 내용이 많더라.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서 다들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0월 노량진의 한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퇴사를 선택하는 공무원들도 증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무경력 5년 미만의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은 1만3032명이었다. 7548명이었던 2019년에 비해 72.6%나 늘어났다. 앞서 인터뷰에 응한 B씨도 이직을 대비해 현재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며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B씨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기 분야의 공기업을 준비해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공노비(公奴婢)’라 자조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며 “뽑을 땐 귀한 인재라면서 뽑아 놓고서는 노예 부리듯 혹사하는 공무원 노동자 잔혹사, 대체 언제쯤 끝낼 것인가. 정당한 노동 대가, 언제쯤 받을 수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2년 한 해만 해도 1만3000명이 넘는 5년차 이하 공무원 노동자가 자진해서 공직사회를 떠났다. MZ세대 노동자들이 공직사회의 부당함을 몸소 느끼고 제 발로 걸어 나갔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젊은 공무원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무원보수위원회는 지난 7월 협의를 거친 끝에 공무원의 기본급을 ▷5급 이상 2.3% 인상 ▷6급 이하 3.1% 인상하는 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권고안은 인사혁신처와 기획재정부의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권고안보다 낮게 수정할뿐더러, 3.1%를 그대로 인상한다고 해도 9급 1호봉의 기본급은 180만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물론 직급보조비와 정액급식비 등을 포함하면 약 217만원이지만, 내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인 206만740원과 큰 차이가 없다.

임금 인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업무 환경의 개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말단이 대부분의 민원을 처리하는 것도 모자라 책임까지 져야 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젊은 공무원들이 공감하는 조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능력에 따라 승진 기회를 부여하고, 적극 행정 성과에 대해서는 즉시 보상하고, 성과 평가와 보상의 공정성을 높이는 등 다양한 방안들을 마련해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는 9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 근무연수를 16년에서 11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특히 5급 이하 공무원들의 보수 인상 등 처우 개선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인사혁신처의 개선안이 공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권혁중 월간중앙 인턴기자 gur145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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