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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탈시설화 가이드라인’의 허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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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최근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해 발표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탈시설화 가이드라인’은 어떤 국가도 완벽하게 실행할 수 없는 허구성이 많은 지침이다. 이 내용을 7개 지역 500여 명의 탈시설 장애인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여해 작성했으나, 급진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핵심 내용은 수용보호시설 운영이 차별과 폭력, 자유 박탈과 구금 등 범죄에 해당하므로 폐쇄하고, 국가는 시설수용 생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이에 복지계의 뜨거운 이슈인 ‘탈시설’의 주요 문제점과 개선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가장 큰 문제점은 거주시설 폐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시설 폐쇄의 이유로 언급하는 시설 내 인권 침해는 장소 문제가 아니라 사람 문제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가족과 함께 사는 일반가정과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으며 혼자 거주하는 지원주택 등에서도 인권침해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정에서 장애인을 돌보기 어려운 경우 시설 입주를 희망하고 있지만, 시설이 부족해 대기자가 많고, 기다림에 지쳐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설 입소를 금지하고, 시설 보강 등의 투자도 하지 말라고 강요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인권 침해이며, 장애인의 선택권 침해이다.

현재 국내에는 약 1530개의 장애인 거주시설이 있고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체 등록 장애인 약 265만 명의 1%가 조금 넘는 약 2만8000명이다. 이 중에 약 20%는 지체·뇌병변 등 신체적 장애인이므로 대부분 자립이 가능해 시설에서 나와 일반주택에 거주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약 80%의 거주인은 지적장애 혹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중증 발달장애인으로 대부분 자립이 불가능하다. 일반 또는 지원주택에서 생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며, 의료 및 요양 등 전문적인 케어가 필요한 중증 발달장애인은 활동지원사의 보조만으로는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선책으로 탈시설이 아닌 탈시설화를 제안한다.

탈시설은 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원가정과 지원주택 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반면, 탈시설화는 시설화의 약점인 집단·통제·보호 생활을 청산하고, 개인·자율·지원 생활로 전환하는 것으로 탈시설의 목적은 살리고 시설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시설의 물리적인 구조와 운영방식을 개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시설 현대화를 통해 4~5명이 함께 사용하는 생활실을 1~2인실로 변경하고, 시설 운영을 공급자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자율적인 생활환경을 확보해 개인별 장애 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개별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까지 어떤 국가도 탈시설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을 소형화·다양화·특성화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시설화 요소를 배제하고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참여가 가능한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 최근 유럽연합에서도 탈시설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장애인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힘 있는 장애인’이 그중에서도 최약자인 ‘발달장애인’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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