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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혜의 마음 읽기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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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뉴욕은 어디에나 있다. 크라카우어의 『역사』를 펴니 서문을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폴 크리스텔러 교수가 썼고, 한밤중 침대에서 하드윅의 『잠 못 드는 밤』을 펼치니 이 책은 뉴욕의 뒤틀린 기억과  초상화 그 자체였다. 편집하며 읽은 원고의 저자인 비비언 고닉·그레이스 조·윌리엄 헬름라이히는 모두 뉴욕의 아들딸이다. 스타일과 문화, 정신의 푯대가 되곤 하는 이 도시에 나는 올 9월 처음 가볼 계획이다. 하지만 여행은 두어 달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숱한 작가·예술가 거쳐간 뉴욕
그곳 사람들의 꿈과 좌절 ‘예습’
여행은 끝없이 균열을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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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갔던 에든버러는 견학을 목적으로 했고 일행과 함께 움직였기에 나는 도시의 바글바글한 풍경만 보고 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한순간도 은둔자인 적이 없었다. 들뜸과 피상성이 지배한 시간이었다. 그 기억을 덧씌우려고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계획을 세웠고, 올여름의 읽기·말하기·상상은 모두 뉴욕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여행의 큰 재미는 ‘준비’에서 시작된다. 기초체력 다지기인 셈인데 이번엔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는 짧은 여행』 『전사자 숭배』 『잠 못 드는 밤』 『역사』 『저스트 키즈』가 근력을 만들어줬다. 가장 관심 가는 것은 뉴욕의 사회 풍경이다. 최근 몇 달 새 가장 많이 들은 뉴스 중 하나는 바다 건너 탈출하다가 익사한 이민자들 소식이었는데, ‘다름’을 겁내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맨 처음 걸으려는 곳도 20세기 초 동유럽·아일랜드· 이탈리아 출신의 저소득 이민자들이 살았던 동네다.

“이미 말하고, 읽고, 듣고, 꿈꿨던 것과 유사하게” 혹은 “책에서 표현하는 글과 정반대거나 아주 유사한 빛나는 삶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나는 그 도시에서 이웃집에 초대받을 만하지 않거나 진지한 사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무리에서 겉도는 이들도 만나게 될까. 그 어떤 사회적 풍경이 펼쳐지든 그건 지금 나무나 풀보다 더 내 관심을 끌어당긴다.

그다음에 갈 국립 9·11 추모관은 어떤 기분을 불러일으킬까. 몇 년 전 제주 4·3평화기념관에 갔을 때 비통한 심정이 흘러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여행자로서 곧 그런 기분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어느 도시에나 떠도는 혼백과 출렁이는 만가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필연적으로 마주칠 텐데, 이때 조지 모스의 『전사자 숭배』는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의 귀한 가이드라인이 돼줄 것이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묘지 참배인들을 ‘전장 순례’하는 이와 ‘전장 관광’하는 이로 대조시키며, 후자가 비판의 대상이 됐던 역사를 짚는다.

영국에서는 전사자 기리는 방법을 두고 폭넓은 논쟁이 있었는데, 핵심 사안은 비탄에 잠겨 추모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도서관과 정원을 함께 조성해 산책하듯 묘지를 돌아볼 수 있는가였다. 실상을 파악해보니 사람들은 묘지에서조차 즐거움을 누리길 원했다. 그렇다면 뉴욕의 9·11 추모관에서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것과 그곳의 공원을 거니는 여유 사이에서 내 감정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수년 전 도쿄를 여행할 때 신주쿠역 길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노숙인을 봤고 그 이미지는 여태 선명하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속 아일랜드인 처녀 펠리시아는 미래(남자)를 찾아 런던으로 가지만 긴 여정 끝에 종이가방 하나에 살림을 챙겨 다니는 노숙인이 된다. 나의 아일랜드인 친구 루크는 서울의 길거리를 보며 “노숙인은 다 어디 갔어? 동냥하는 사람들은?” 하고 묻는다.

작가 하드윅은 미국 남부 켄터키 태생이지만 뉴욕을 흠모해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설 속 뉴욕은 빛의 도시여야 할 텐데, 정반대로 녹슬고 사방에 덫이 놓인 데다,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호텔에 득시글대는 등 불운이 덧칠된 도시다. 냄새나고 소란스럽고 마약에 찌든 이 장소는 저자의 시적 문체에 힘입어 더 선명하게 잔인해지고, 공기는 더 역해진다.

하지만 그런 작가 수천수만 명이 사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이가 들끓는 침대에서 잤지만 그곳을 사랑해 절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은 예술로 뒤덮인 도시가 됐고, 나 역시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낼 것 같다.

끝으로 여행에서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기다. 지금 나는 전기(前記)를 쓰고 있지만, 여행 후 다시 내 언어와 이미지로 가다듬어 단단한 글로 구축하고 싶다. 여행을 기억에 새기는 방식 중 하나는 글쓰기의 우회로를 통해서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여행자의 목소리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고, 이따금 그것들은 권위를 갖고 오랜 세월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고착화된 이미지는 다음번 여행자가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