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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심층분석 | 9월 정기국회에 정치적 사활 건 양당 원내대표의 행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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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온, 친명과 비명 사이 출구 찾기… 윤재옥은 野 공격 방어하며 존재감 키워

■ 이재명 체포동의안 놓고 朴 정치력 시험대, 지도부 공백 시 안정감 발휘해야
■ 尹 원내대표, 세심함으로 여당 내 호평… 총선 정국 압도할 정책 발굴은 과제

박광온(왼쪽) 민주당 원내대표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관계를 영위한다. 젠틀한 성품인 두 원내대표에게는 ‘이슈 파이터’로서의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광온(왼쪽) 민주당 원내대표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관계를 영위한다. 젠틀한 성품인 두 원내대표에게는 ‘이슈 파이터’로서의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람은 참 좋은데….” 국회 주변에서 윤재옥(62)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66) 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해 물으면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말이다. 여기서 강조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사람은 좋다’가 아니라 말줄임표에 있다. 인품은 공히 나무랄 데 없지만,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기에는 무언가 답답한 제약에 막혀 있다는 뉘앙스가 배어 있다.

원내대표는 당대표와 더불어 정당을 대표하는 투 톱으로 꼽힌다. 당대표가 대외 여론전 등 그랜드 디자인을 짠다면, 원내대표는 국회 의정활동과 관련된 전략·전술에 역량을 집중한다. 윤 원내대표는 7월 14일, 박 원내대표는 8월 6일 각각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허니문을 즐길 새도 없이, 이들 앞에는 8월 16일 시작하는 임시국회부터 험난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9월 1일부터는 100일간 정기국회가 이어지고, 그 사이 10월 국정조사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쏟아질 이슈에 어떻게 대응하고,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을지 여부에 2024년 4월 총선을 앞둔 양당 원내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걸려 있다.

비명계 원내대표가 마주한 견고한 현실

2023년 2월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은 이재명(오른쪽 맨 앞)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올려 정국을 흔들었다. 2023년 8월 다시 여의도는 태풍전야 상태다.

2023년 2월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은 이재명(오른쪽 맨 앞)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올려 정국을 흔들었다. 2023년 8월 다시 여의도는 태풍전야 상태다.

168석을 보유한 원내 제1당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취임 이후 줄곧 계파 갈등에 시달려 왔다. 2022년 8월 77.7%라는 압도적 당원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친명’과 ‘비명’ 사이에 골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다 2021년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까지 터졌다. ‘의원 19명이 연루됐다’는 리스트도 돌았다. 윤관석 의원(민주당 탈당해 무소속)은 8월 4일 구속됐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돈 봉투 살포 의혹과 이재명 대표 소환조사에 대응하느라 민주당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국회에서 띄워야 할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8월 16일 정책의원총회에 이어 28~29일 의원 워크숍을 기획했다. 향후 임시국회와 정기국회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민주당의 전략에 관해 원내대표실 인사는 “현재로선 워크숍 이후에 우리의 정리된 입장과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며 함구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어떻게 나올지 봐야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즉,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에 따라 민주당이 임기응변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맥락이다. 일례로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국회 체포동의안을, 한 장관이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중 어느 기간으로 잡을 것인지, 아니면 임시국회와 정기국회 사이 (체포동의안 관련 국회 표결이 필요 없는) 비회기 기간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민주당의 반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체포동의안 표결이 열린다면) 민주당이 뭉쳐서 거부하는 것도,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총의에 따라) 압도적으로 가결시키는 것도 난감한 일”이라고 봤다.

게다가 민주당의 불체포 특권 포기에는 ‘정당한 영장 청구에 한해서’라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이렇게 변수가 산적한 환경에서 박광온 원내대표가 ‘그립’을 쥐기란 여의치 않다는 것이 당 안팎의 중론이다. 가뜩이나 박 원내대표에 대해 우호적인 비명계조차 “친명이 아니라는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로 ‘조용한 리더십’으로 일관할 줄은 몰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3선 의원(경기 수원정)인 박 원내대표는 지난 4월 28일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원내 수장으로 선출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내며 박범계·홍익표·김두관 의원을 따돌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낙승을 거뒀다. 이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기국회부터 총선 전까지 민주당의 절실한 과제는 당의 통합을 바탕으로 당 밖에서 확장을 더 쌓아가는 것”이라며 “원내대표단이 민주당의 변화를 뒷받침하고 과감한 비전 확장 노력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재명 체제에서 비명계로 분류되는 원내대표가 무언가를 하는 그림은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MBC 기자 출신인 박 원내대표는 2012년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로선 55살이라는 꽤 늦은 나이에 정계에 뛰어든 셈이다. MBC의 현직 기자는 그에 대해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미지”로 기억했다.

이런 그의 성향은 정치인으로 전업한 뒤에도 유지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그에 대해 “알고 보면 무서운 면모가 있지만, 타고난 성격 자체가 강한 리더십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본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비명계임에도 큰 거부감 없이 이재명 체제에서 원내대표로 당선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원내대표는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익명을 요청한 정치권 인사는 “성향상, 소통에 능한 박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대표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 투쟁에 역점을 둬야 하는 야당 원내대표로 그를 불러냈다”고 촌평했다.

‘포스트 이재명 체제’, 저마다 셈법 다른 민주당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풍경. 이재명(왼쪽 다섯째) 대표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전제 아래 계파 간 득실 계산이 분주하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풍경. 이재명(왼쪽 다섯째) 대표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전제 아래 계파 간 득실 계산이 분주하다. / 사진:연합뉴스

박 원내대표는 ‘크지 않은 권한으로 작지 않은 사안들을 처리해야 할’ 국면에 직면해 있다. 8월 임시국회 이후 민주당이 정국을 장악하려면, 계파 불문하고 당을 하나로 융합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의 성향이나 외부 환경 등 어느 쪽으로 봐도 그렇게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흘러갈 확률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박 원내대표 체제에 대해 민주당 내, 특히 비명계일수록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바닥에 흐르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부재하고, 최고위원회가 해체되는 사태 등 지도부 궐위를 생각하면, 박광온 스타일의 안정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이재명 다음’을 놓고 암중모색이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친명계조차도 이런 기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표 궐위 시 잔여 임기가 8개월 미만이어야 전당대회 없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릴 수 있다’로 나와 있다. 다시 말해 친명 입장에서는 이 대표 임기가 8개월 이상 남은 시점에서 궐위가 발생하는 편이 ‘차라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당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김은경 혁신위’는 8월 9일 사실상의 대의원제 폐지(종전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일반국민 25%, 일반당원 5%의 전당대회 투표 비율을 권리당원 70%, 일반국민 30%로 바꾸자는 안)를 내놓고 퇴장했다. ‘김은경 혁신위’의 안을 친명계 다수에서 찬성하는 상황은 음미할 만하다. 당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 궐위 시, 김두관 의원을 대안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퍼지고 있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일단 부인했다.

비대위 체제로 가려면 최고위원의 절반 이상이 물러나야 한다. 현재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외에 민주당 최고위원은 선출직 5명, 지명직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고민정 의원, 서영교 의원, 송갑석 의원이 비명으로 분류된다. 7명 중 절반을 넘기려면 친명 중 최소 1명을 더 끌어와야 한다.

이렇게 미묘한 흐름에서 박 원내대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정기국회를 맞이하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왜 박 원내대표가 ‘김은경 혁신위의 혁신안’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강하게 이 대표에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런 말도 못한다면 애당초 원내대표 선거에는 왜 출마했는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박 원내대표에게 계파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라는 요구는 가혹하다”며 “친명계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정치적 공간을 확정하고, 그 선 안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박 원내대표를 둘러싼 또 하나의 변수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거취다. 이낙연 체제에서 그는 당 사무총장을 맡는 등, “오른팔”이라는 평을 들었다.

국회가 열리면 민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대통령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가족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양평 고속도로 의혹에 역량을 투입하려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뚜렷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다른 이슈에 묻히게 된다면 오히려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받을 수 있다. 이번 국회에서의 성과가 박 원내대표의 정치적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장점이 곧 단점인 윤 원내대표의 스타일

윤석열(왼쪽 다섯째) 대통령이 김기현(왼쪽 넷째)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왼쪽 셋째) 원내대표 등을 용산 대통령실로 불렀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역할 분담이 관심사다. / 사진:연합뉴스

윤석열(왼쪽 다섯째) 대통령이 김기현(왼쪽 넷째)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왼쪽 셋째) 원내대표 등을 용산 대통령실로 불렀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역할 분담이 관심사다. /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지난 4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윤재옥 의원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윤 의원이 우리 당 원내대표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비단 해당 의원뿐 아니라 윤 원내대표에 대해 물으면 “일 처리가 꼼꼼하고, 말이 과하지 않다”는 발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전임 권성동 원내대표 때 수차례 설화에 시달렸던 것과 비교해서 국민의힘은 내부에서 더욱 안정감을 실감하고 있다. 원내대표는 의정활동과 원내대책을 주도하는 자리다. 이를 조율하는 무대라 할 수 있는 의총이 윤 원내대표 취임 이후 부쩍 늘어났다. 한 의원은 “의총에서 윤 원내대표는 의원들을 ‘깬다’ 하지만 (듣는 의원이 기분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조인다”라고 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 시절 이후 가장 무난하다”는 평가도 들린다.

경찰대 1기 수석 입학·수석 졸업으로 유명한 윤 원내대표는 정보·외사 등 전문성과 보안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경찰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이런 그의 관리 능력과 별도로 여당의 핵심 기능이라 할 어젠다 세팅 측면에서는 미흡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도 그렇지만, 윤재옥 원내대표도 지나칠 정도로 논쟁적 이슈를 회피한다”는 지적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그동안 야당인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이나 양곡관리법처럼 어젠다를 주도하려는 시도라도 해봤다. 하지만 정작 국민의힘은 야당 제안을 반대만 하는 모양새다”며 “당대표가 야당과의 투쟁에 치중한다면, 정책정당·대안정당으로서의 의정활동 부분은 윤 원내대표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재옥, ‘여당 프리미엄’ 어떻게 활용할까

김 교수는 “총선은 용산 대통령실이 치르는 것이 아니다. 정당이 치르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주도로 정책의 방향 전환을 해낼 수 있느냐가 윤 원내대표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문재인 정부 때와 달리 정책수석실을 폐지했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정책수석 역할을 실질적으로 겸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야당은 정부를 상대하지 여당을 상대하지 않는다. 존재감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며 “정치는 시끄러워야 하는 법인데 지금 국민의힘은 관심부터 끌지 못한다”며 전략 부재를 적시했다.

반면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여소야대 구도에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누가 됐든 용산 대통령실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공천권이나 당협위원장 임면권이 없는 원내대표에게 총선 승리 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나치다는 관점이다.

윤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선거법, 내년 예산 등 첨예한 과제들을 원만하게 풀어내고 시급한 민생 법안들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여당 원내대표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시국회와 정기국회에서 여당 소속인 윤 원내대표에게는 방패와 칼이 존재한다. 민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와 양평 고속도로 국정조사 요구를 차단하면서 예산이라는 여당의 ‘필살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관한 전략적 로드맵을 홍보해야 한다. 이는 총선의 주(主)전장이라 할 수도권 선거를 가늠할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윤 원내대표는 “이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민주당과 충분히 대화가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애쓰겠다”고 답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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