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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왜 지금 라흐마니노프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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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폭염과 태풍이 번갈아 위용을 내뿜는 여름의 한가운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페스타’에 다녀왔다. 지난 11일 열린 이 공연은 송민규의 지휘로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또모 오케스트라가 라흐마니노프(S Rachmaninoff, 1873~1943)의 작품만으로 기획한 연주회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보칼리제’에 이어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 18’(1900~1901)과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 op. 30’(1909)이 피아니스트 임효선과 조가람의 협연으로 연주되었다.

탄생 150돌 기념 연주회 잇따라
서정적 선율, 강한 에너지 감동
정작 음악사 책에선 홀대 받아
관객이 사랑하는 최고 음악가

이달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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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별칭을 가진 ‘협주곡 2번’,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해 큰 주목을 받았던 ‘협주곡 3번’. 스케일이 큰 이 두 곡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이번 음악회에 많은 청중이 열광하며, 그야말로 우레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그야말로 애수에 찬 서정적 선율과 격렬한 에너지를 생생하게 전달해준 음악회였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는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은 가장 사랑받는 장르이다. 지난 3월 한경 아르떼 필하모니는 손민수와 협연으로 협주곡 2번을, 5월에는 서울시향이 같은 곡을 박재홍의 협연으로 연주했다. 또한 7월 부천 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리추얼 라흐마니노프’로 이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며 ‘협주곡 2번’을 라이헤르트 아비람과 협연했다. 오는 9월에는 손열음이 도이치방송오케스트라와 ‘협주곡 3번’을, 10월에는 일리아 라쉬코프스키가 용인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또모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서 왜 청중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에 열광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그의 협주곡에는 서정적인 주제 선율이 주로 단조 조성에서 뚜렷하게 제시된다. 그 선율은 대위적으로 구성되거나 변주되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유니즌으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청중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며, ‘애절한 서정성’ ‘센티멘탈한 떨림’ ‘애잔함’ 등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반면 갑작스러운 템포 변화, 격렬하게 몰아치는 리듬과 화성의 중첩, 빠르게 상행하고 하행하는 스케일과 현란한 트릴, 화려한 아르페지오는 비르투오소적 효과와 긴장감의 상승을 가져온다. 협주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카덴차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 형성되며, 무엇보다도 마지막 악장은 극적으로 화려하게 끝나서, 청중이 마음껏 손뼉을 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을 만든다. 작곡가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을 얻었던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가 구사할 수 있는 서정적 감성과 고난도의 테크닉을 적절하게 투영시킨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연주자와 청중을 만족하게 한 라흐마니노프가 음악학자들에게는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라흐마니노프는 서양음악사 책에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서양음악사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수강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다. 음악사 책에는 수많은 음악가가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가가 음악가의 가치를 말해 준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아예 이름도 나오지 않거나, 아주 짧게 언급된다.

왜 그럴까. 아마도 라흐마니노프가 20세기 작곡가이지만 낭만주의적 전통을 고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음악사는 ‘새로움’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독창적인 새로운 양식의 출현을 통해, 바로크에서 고전, 고전에서 낭만, 낭만에서 현대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이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이 주목을 받았고, 이들은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

반면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움보다 전통에 주력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작곡된 시기에 조성이 해체된 무조음악이 나타난 것을 보면, 현대적 시각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조명받지 못한 것이 이해된다. 그렇지만 음악의 가치는 역사성에서만 찾을 수 없음을 라흐마니노프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청중들은 익숙한 아름다움에 도취하며,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원한다. 전문가들이 클리셰라고 하는 음악에도 크게 감동하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예술적 의미를 지닌다. 작품 중심의 미학을 비판하고, 예술 작품의 가치를 수용의 측면에서 접근한 수용미학의 시각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일명 ‘음악사에 등장하지 않는 최고의 작곡가’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