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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신화|시조는 말총 쥐고 태어난 「몽고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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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몽골 올도스 지방에서는 좋은 제보자를 만날 수 없었으나 외몽골 울란바토르에서는 루산잡이라는 분을 만나 얼마간의 내담과 신화를 채록할 수 있었다.

<민간에서 구전>
몽골족의 신화는 주로 『몽고비사』나 『사집』같은 고대의 서적 중에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북방민족에 관계된 역사책과 중국 및 외국학자들의 몽골 여행기에 극히 일부분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고, 민간에서 구비문학으로 전승된 것들이 더 많다.
◇몽골족 기원 신화
태양이 조그만 불덩어리였을 때 언니와 동생이 신주(중국)에 와서 언니는 아주 수려한 남방으로 시집갔고, 동생은 목초가 아주 기름진 북방으로 시집갔다. 언니는 손에 흙을 쥐고 있는 아기를 낳아서 「해특사」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이 사람이 바로 한인의 조상이며, 동생은 손에 말총을 쥐고 있는 아기를 낳아 이름을 「몽고악」이라고 불렀는데 이 사람이 바로 몽골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해와 달의 기원에 관한 신화
아주 오랜 옛날 우주에 천·지·산·수 등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에 옥황상제는 오백살이었다. 옥황상제가 일천살이 되어서야 하늘과 땅이 분가하기 시작했는데 옥황상제가 천왕에게 하늘을 만들게 하고, 지왕에게 땅을 만들게 하고, 수왕에게 물을 만들게 하고, 산왕에게 산을 만들게 하고서야 천·지·산·수가 있기 시작했다. 하늘은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리는 것을 관장했고, 땅은 만물의 생장을 관장했고, 산은 산림수목을 관장했고, 물은 생명체에 수분을 공급했으나 이때도 하늘에 일·월이 없어 옥황상제는 그의 아홉째 딸인 모단청모를 보냈다.
그녀는 금거울을 가지고 내려와 금거울로 해면 위를 1천6백번 갈자 해면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2천6백번 갈자 동쪽에서 밝은 빛 둘레가 나타났고, 3천6백번 갈았더니 태양이 나타났다. 후에 모단청모는 또 은거울을 가지고 바다 위를 3천6백번 갈자 달이 나타났다.
태양이 앞에 가고, 달이 그 뒤를 쫓아가는데 태양이 곤륜산의 남쪽에 이르렀을 때 날이 밝았다. 이때 달은 곤륜산의 북쪽에 있었으며, 달이 곤륜산의 남쪽에 이르렀을 때 날이 어두워졌다. 태양은 다시 곤륜산의 북쪽에 있었고, 해와 달은 곤륜산을 경계로 반복해서 쫓아다닌다. 해와 달의 주야는 이렇게 해시 형성된 것이다.
먼 옛날부터 사람과 자연과의 투쟁이 사회의 주요 모순을 조성했다. 그리기에 자연을 해석하는 것과 자연을 정복하는 것 또한 몽골족 신학의 주요 내용이 되었다.
◇선녀의 은혜
옛날에 「뚜얼부터」부족의 한 젊은 사냥꾼이 나덕산 꼭대기 호숫가에서 목욕하며 놀고있는 선녀들을 발견했다. 사냥꾼은 가죽 마대를 던져 그중 가장 아름답고 어린 선녀를 잡았다. 두 사람은 바로 호숫가에서 결혼했다. 그러나 천상과 인간세상의 한계가 너무나도 엄격했기에 그들 두 사람은 부득불 결혼 후 떨어져야만 했다. 선녀는 임신한 상태로 하늘로 올라갔다. 선녀는 달이 차자 몰래 호숫가로 내려와 숲 속에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모자가 이별하기 전에 선녀는 아기를 광주리에 담아 나무 사이에 걸어 놓고, 또한 작은 새 한 마리로 하여금 아기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게 한 다음 마음은 괴롭지만 하늘나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선녀아들 조상설>
이때 그들 부족에는 부족장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선각자라 불리는 한 샤먼의 가르침 아래 높은 산으로 올라가 밀림 속으로부터 아기를 맞아 왔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훌륭한 용사가 되었고, 위업을 쌓고 뚜얼부터 부족 「초로시가」족의 조상이 되었다.
이는 한편의 아름다운 실화이나 그것은 평범한 백조처녀형의 고사는 아니다. 이는 몽골민족의 기원에 관한 신화다. 신화 중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때가 바로 어머니는 알고, 아버지는 모르는 모권사회에서 부권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창조하고, 대업을 일으킬 수 있는 부계의 우두머리를 찾고 있었던 흔적을 찾게 된다.
◇화철용산
『사집』에 의하면 대개 칭기즈칸이 출생하기 2천년 전에 북방에는 몽골부락·돌궐부락이 있었다고 한다. 두 부족간의 싸움 끝에 몽골족은 2남2녀 4명만 남고 모두 죽었다.
그들은 깊은 얼구네쿤산에 들어갔다. 이 산은 모두 절벽이고, 나무도 많고 작은 오솔길 하나만 있는 지형이었다.
남녀 네 사람은 서로 혼례를 치러 부부가 되었다. 몽골의 후손들은 이 네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 부족은 살 곳이 비좁아 산에서 떠날 방도를 찾아보았다. 그리하여 처음 산 속으로 들어올 때의 오솔길을 찾았으나 긴 세월동안 숲이 우거져 결국 찾지 못하고 뜻밖에 철광산을 발견했다.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전 부족 사람들은 나무를 채벌 하여 숯을 만들고, 암소와 말을 각각 70마리 잡아 그 가죽으로 큰 풍구를 만들어 철광산의 철광석이 용해될 때까지 계속 불을 땠다. 철광산이 다 녹게 되자 철이 나왔고, 또한 길이 트이게 되었다. 그래서 전 부락 사람들은 원래 살던 좁은 산림 속에서 광활한 초원으로 나오게 되었다.

<철을 녹이며 제사>
그 뒤로 칭기즈칸의 대가족은 조상들이 철을 녹여 산에서 탈출해 나온 대단한 장거를 기념하기 위해 연말마다 제사를 지낸다. 그 제사에는 철을 녹이고 그것으로 칼과 화살촉 등을 만든다고 한다. 이 고유한 습속은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다.
이 신화 역시 앞의 「선녀의 은혜」와 마찬가지로 몽골민족의 기원에 관한 신화이며「단철왕」(Smith King)설화이기도 하다. 곧 철을 다루는 자가 지배자가 된다는 신화로 우리의 석탈해 설화와 유사하다. 가끔 몽골 오보(서낭당)의 돌무더기 위에 큰 쇳조각이나 솥이 올려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같은 신화와 깊은 관련을 갖는 민속이다.
◇마신(지하치) 신화
옛날 「지하치」라는 말을 잘 다루고 부지런하며 열성적인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으면서도 한사코 죽음과 대결했다. 노인은 말떼와 헤어지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노옌(몽골어로 부족장이라는 뜻)이 친히 와서 병중의 노인을 만나보았다. 지하치 노인이 노옌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평시 내가 말먹일 때 입던 옷을 입히고, 손목에는 말 홀 매는 것을 매고, 노란색 말에다 태워 서남산까지 보내라. 그리고 매장할 때는 월품뱀배산에 누이고, 눈은 아라단펀베이산 쪽으로 향하게 해달라』고 했다. 노옌이 이 말을 듣고 그대로 해주겠노라고 약속하니 그제야 노인은 눈을 감았다.
몇 개월이 지난 뒤 노옌의 말떼가 병이 났다. 노옌은 밤마다 한 사람이 말떼가 있는 곳에 들어가 말을 몰아 심산궁곡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일을 본 노옌은 아마지하치가 죽은 후 그 혼령이 안주하지 못하고 말을 쫓아 심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했다. 그래서 노옌은 친히 산림 속으로 들어가 지하치의 혼령을 불러 추도했다. 그리고 지하치 혼령에 그의 얼굴을 소가죽에 그려 제사를 지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니까 지하치가 『그렇게 하면 내가 친히 말떼를 볼 수 있겠군』하며 안심했다. 약속한대로 제사를 지내주었더니 그 뒤로는 아무 변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신 민족을 상징>
그런데 그후 지하치 부인이 또 죽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기들이 돌림병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부녀자들이 바삐 지하치부인의 모습을 양털로 만든 흰 천(요단 같은 것)에 그려 제사를 지냈더니 아기들의 병이 다 낫다.
그때부터 지하치 부부가 짐승의 보호신과 아기들의 보호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세상에 신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그런데 원래는 소가죽이나 요단에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 붙였으나 나중에 천에다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 소개한 신화 중에서 처음 것은 몽골족의 기원신화인데 이밖에 그들 조상이 푸른 이리와 흰 사슴 사이에서 낳았다는 신화도 전한다. 「선녀의 은혜 신화」는 씨족신화로 그들이 천신민족임을 말하고있으며, 「화철용산」신화는 국조신학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야금술이나 단철술을 가진 자가 지배자가 된다고 하는 「단철왕」신화로 우리나라의 석탈해 신화를 비롯하여 일본 등지에도 유사설화가 전한다. 끝으로 「마신지하치」신화는 후대에 발생한 신화이긴 하나 그들이 사는 겔속이나 라마사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데 인격신으로서 크게 숭앙 받고 있다. <글 김선풍 교수(중앙대·구비문학) 사진 주기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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