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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육·해·공군 칸막이 걷어내고 ‘합동 전력’ 키워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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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매년 이때쯤 정부 예산 편성을 놓고 각 부처의 경합이 뜨겁다. 필자는 군인으로는 드물게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에 파견 근무하며 이를 실감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방 예산의 효용성을 입증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일종의 보험 성격으로 투자한다고 하나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국방 예산을 정부 재정의 12.8%인 57조원을 획득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국방 예산의 군별 편성을 두고도 우여곡절을 겪는다. 조직 이기주의가 발동하며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인 미군도 마찬가지였다. 군사력 건설은 물론 작전에서도 군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베트남전(1960~1975)과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 그라나다 침공 작전(1983)에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1986년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이 제정되며 최초로 합동성(Jointness) 개념이 적용되었다. 각 군 군사력을 통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방안이다. 새로운 법에 따라 군 지휘 조직과 운용 개념을 개선한 결과 예산 낭비를 막고 전투력을 크게 높였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8·18 계획 때 처음 적용되었다.

육·해·공군별 작전 한계 뚜렷
전력 통합해 시너지 효과 내야
북 급변사태 등 난제 계속 증가
해군·공군 역할 크게 달라져야

북한 식량난, 인권유린 등 대비

지난 3월 10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임관식에서 펼쳐진 육해공 합동전력공중 침투 시연. [연합뉴스]

지난 3월 10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임관식에서 펼쳐진 육해공 합동전력공중 침투 시연. [연합뉴스]

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각 군 특성을 살리는 군사력 건설을 보장해야 한다. 군의 운용 개념을 각 군(Service) 중심에서 영역(Domain)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군사적 위협 외에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의 영향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는 북한 급변사태, 국가 경제 규모, 우주 안보, 무기 체계의 자율 무인화, 재해·재난과 국제 테러 등 포함된다. 이는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나 시간이 흐르며 심각한 문제로 대두할 수 있다. 각 군에 부여될 새로운 임무 영역과 과제를 살펴본다.

날로 심각해지는 북한 식량난과 인권 유린 상황은 급변사태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북한에 인민 봉기가 발생할 경우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닥칠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의 개입 등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많은 문제가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북한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통합과 안정화는 막중한 과제이다. 정전 후 70여년 남북 간 골이 너무나 깊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독일의 군 통합 사례

1990년대 중반 독일을 방문하며 군사적 통합을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통일 이전 동·서독이 서로 대치하면서도 아무런 적대 감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군사 통합 과정에서 엄청난 저항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남북이 극단 대치하는 우리 처지가 걱정되었다. 특히 북핵 처리는 대단히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이다. 북한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고 미국은 우리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 세력의 무장 저항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미군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도 안정화 작전 실패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최첨단 무기와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이다. 육군은 이처럼 어려운 안정화 작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많은 고뇌와 장비 및 기술 개발, 훈련 등이 필요하다.

무역국가 한국, 해군의 역할 확대

역사적으로 해군은 해안 방어보다 해외에서 국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과거 세계를 아우른 로마·영국, 최근 미국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 해군도 같은 역할을 해야 했으나 당면한 북한 위협에 발이 묶여 있었다.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간첩선 침투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했다. 앞으로도 해군의 임무와 역할이 한반도 연안 방어에 머물러야 할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은 해외에서 지켜야 할 국가 이익이 막대하다. 특히 무역수지가 국내총생산(GDP)의 70% 이상인 무역 국가로서 해상교통로 확보가 중요하다. 물동량의 99.7%를 의존하는 해상교통로가 끊기거나 봉쇄되면 채 50일을 버티지 못한다. 해군은 어떤 경우에도 해외에서 국가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작전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양한 위협에 맞서 장기간 원해 작전이 가능한 전력이 필요하다. 해병대는 날로 증가하는 해외 재해·재난 및 테러 상황에서 우리 국민을 구할 수 있는 원정 작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무인기 공격 등 커지는 우주 위협

우주가 국가 경제는 물론 안보의 새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며 우주는 개척해야 할 블루오션이 되었다. 현재 우주에는 4500여 대의 위성이 활동 중이며 조만간 수만 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우주로부터 어떤 형태의 위협이 닥쳐올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이 2019년 창설한 우주군 체계는 중국·러시아에서도 관심이 높다. 공군은 새롭게 대두할 위협에 대비한 작전 능력을 담보해야 한다.

아울러 병력 감소에 따라 각 군이 경쟁적으로 운용하는 무인기로 인한 공역 통제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인기가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전투기·미사일은 물론 드론 등 다양한 항체를 망라한 전시 공역 통제 대책이 필요하다.

군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 나아가 다른 영역의 위협에도 대비해야 한다. 제기된 과제는 대부분 동맹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임무이다. 또 이에 부합하는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정한 합동성이 요구된다.

과거 각 군 예산 담당자의 최대 업적은 어떻게든 다른 군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속에 합동성은 간 곳이 없었다. 당시 누군가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다. “고래가 두 개의 눈이 필요하면 새우도 두 개가 필요하다”. 진정한 합동성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