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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특별기고]'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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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소설가 김훈, 교사 집회현장을 가다

김훈

김훈

지난달 29일 오후 2시에 전국 교사 3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 앞 거리에 모여서 ‘교육권 보장’을 외쳤고,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짓밟히는 교육자의 고통을 호소했다.

교사들은 교육자의 ‘교권’뿐 아니라 ‘인권’과 ‘생존권’까지도 절규했다.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10여 명이 이날 집회에 참가했고, 교수 102명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교사들은 교원단체나 노동조합이나 소속 학교의 깃발을 내세우지 않고 다만 ‘전국교사일동’의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중견 교사는 참가자들에게 “배포된 피켓 이외의 구호를 외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이날 집회가 정치적 당파성에 오염되는 사태를 교사들 스스로가 경계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집회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3만여 명의 교사는 선생 노릇 하기의 어려움을 일기에 써놓고 자결한 젊은 여교사의 죽음을 애도했고, 고인이 아이들과 함께 이루고자 했던 뜻을 추모했다. 이날 낮기온은 34도였고, 아스팔트 위의 온도는 50도가 넘었다. 길바닥의 주저앉은 검은 상복의 대열은 길어서 끝이 아물거렸고,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흔들렸다. 그 고통스러운 대열이 외쳤다.

“공교육은 죽었다” 그 배후는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

지난달 30일 서울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소설가 김훈. 학교 건물과 담장에 여러 지방에서 온 교사들이 고인이 된 젊은 여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붙어 있다. 동행한 출판인 김영훈씨가 촬영했다. 사진 김영훈

지난달 30일 서울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소설가 김훈. 학교 건물과 담장에 여러 지방에서 온 교사들이 고인이 된 젊은 여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붙어 있다. 동행한 출판인 김영훈씨가 촬영했다. 사진 김영훈

-공교육은 죽었다.

이날 교사들이 절규하는 고통은 실체가 분명했다. 요약하자면, 교육을 망치는 가장 큰 해악은 ‘악성 민원’이고 교육청, 교장, 교감 등 교육의 관리자들은 이 사태의 뒷전으로 물러서 있다는 말이다. 이날 집회에서 교사들은 ‘학부모’라는 익명의 거대 집단을 직접 겨냥해서 발언하지 않았고, 다만 ‘악성 민원’이라고, 에둘러 가는 언어를 사용했다. 교사들의 조심스러운 태도에는 어쨌거나 학부모들이 교육의 과정을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할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집회에서 정치적 당파성을 배제하고, ‘학부모’에 대해 거친 언사를 쓰지 않는 조심스러움에서 나는 교사들의 집단지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악성 민원’은 학생들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제기해 온 것이므로, 무대 조명 안으로 소환되지 않은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은 이 사태의 핵심이며 배후였다. 전국 교사 3만여 명이 도심의 거리에 모여서 교육에 가해지는 학부모 집단의 행태에 절규하고 저항하는 사태는, 아마도 세계 공교육의 역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이날, 검은 상복의 대열은 폭염 속에서 거듭 외쳤다.

-공교육은 죽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소설가 김훈. 학교 건물과 담장에 여러 지방에서 온 교사들이 고인이 된 젊은 여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붙어 있다. 동행한 출판인 김영훈씨가 촬영했다. 사진 김영훈

지난달 30일 서울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소설가 김훈. 학교 건물과 담장에 여러 지방에서 온 교사들이 고인이 된 젊은 여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붙어 있다. 동행한 출판인 김영훈씨가 촬영했다. 사진 김영훈

젊은 여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서울 서이초등학교 주변 일대는 전국의 교사와 시민들이 보내온 조화로 도시의 한 블록이 뒤덮였다. 한 새내기 여교사의 죽음에 모이는 이 거대한 조문의 대열은 공교육이 이 사회의 저변에서 일상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붕괴되어갔던 사태를 증언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고 말이 들끓는 자리에 얼굴을 들이밀고 마이크 잡기를 좋아하는 정치세력들은 이 조문의 대열에 조화를 보내오지 않았다. 판세에 민감한 그들은 학부모 집단과 교사 집단의 갈등이라는 이 사태의 심층구조가 얼마나 두렵고 또 난감한 것인지를 알고 있고, 진영의 입장으로 여기에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득 될 것이 없다고 정세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만, 인산인해를 이룬 이 고통스러운 조문 행렬이 보여주는 탈정치, 무정치의 풍경은 정치의 부재, 정치의 실종을 느끼게 했다. 그토록 끓어 넘치는 정치는 다 어디로 갔는가. 서이초등학교의 건물과 담장에는 여러 지방에서 온 교사들이 고인이 된 여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다.

-너도나도 당하면서 이게 우리 직업이려니 하면서 참고 살았습니다.

-다들 당하는 걸 보면서 ‘난 운이 좋아서 안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과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제가 먼저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이 참가했다. 뉴스1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이 참가했다. 뉴스1

이 슬픈 편지들의 전언은 힘없는 자들의 힘이 무수한 파편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울음을 따로 우는 소리로 들렸다. 교사들은 이 편지에서도 ‘학부모’라는 익명 집단을 직접 호출하지 않고 있다. 나는 교사가 아니므로, 이 ‘악성 민원’의 실체를 교사들보다 덜 점잖은 언어로 말하려 한다. ‘악성 민원’의 본질은 한마디로 한국인들의 DNA 속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내 새끼’를 철통 보호하고 결사옹위해서 남의 자식을 제치고 내 자식을 이 세상의 안락한 자리, 유익한 자리, 끗발 높은 자리로 밀어 올리려는 육아의 원리이며 철학이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의 자식이 겪게 되는 작은 불이익이나 훼손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관계망 전체를 뒤흔들어 버린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 ‘내 자식’을 편드는 부모의 싸움으로 확전돼 교사를 괴롭히는 사례는 흔하고, ‘내 자식’을 편들며 달려드는 학부모의 태도는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와 같다고 경험 많은 교사는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내 새끼 지상주의’는 자식을 명품 시계나 고가 핸드백처럼 물신화한다. 이것은 이제 이 난세의 생존술이고 이데올로기다. ‘내 새끼 지상주의’는 계층의 차이가 없이 고루 퍼져 있지만, 부유층 밀집지역의 ‘악성 민원’이 더욱 잦고 사납고, 위압적이라는 일선 교사들의 고백은 이들을 행세하게 하는 부(富)의 천민성을 증언하고 있다. 사실, 이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이 나라 수많은 권귀(權貴)들에 의해 완성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너도나도 그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해 실정법을 위반해 가며 학원 좋고 학군 좋은 동네로 거듭 위장 전입을 해왔는데, 이 정도 범죄는 매우 경미한 사안이다. 위장 전입이 문제돼 공직 임명에서 탈락한 사람은 없다. 이런 위법행위들은 애끓는 모성애, 부성애, 또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미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가치는 파괴됐고, 공적 제도와 질서는 빈껍데기가 되었다. 아마도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일 터인데, 그는 아직도 자신의 소행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절망과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일가가 관련된 재판의 과정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인연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미망(迷妄)일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의 무명(無明)과 마주 대하고 있었다.

새내기 여교사의 죽음과 전국 교사들의 대규모 조문 사태는 한 시대의, 전체의 통렬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내 새끼 지상주의’로 몰락해 가는 현실을 향해 ‘반성’을 말하는 것은 무력한 관념의 신음처럼 들리지만 뉘우침의 진정성이 없다면 문제를 헤쳐 나갈 추동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아동학대 처벌법을 고쳐서 ‘정당한 지도 행위는 신고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여야는 이 법안에 대해 의견이 접근해 가고 있다고 여러 매체가 보도했다. 이 법안이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정당한’이라는 한마디의 형용사는 며칠 전 야당이 방탄 국회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위한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정당한 영장청구에는 면책특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정한 것과 똑같다. 이것은 언어의 농간(弄奸)이다. ‘정당한’이란 한마디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 형용사는 매끄러워서 붙잡을 수 없고 아리송해서 기댈 수 없다. 이 몽롱한 형용사 한 개로 괴물을 막으려 한다면 더 큰 괴물이 달려든다. 두 번째 괴물은 더 많은 언어와 세련된 논리를 동반하고 달려들게 되는데 이 세련된 논리는 사태를 정돈하지 않고 더욱 헝클어 버려서 수렁으로 빠뜨린다.

상처받은 교사들에게 직무 연수교육을 강화하고 심리상담과 치료를 해주겠다는 ‘대책’은 고마운 것이기는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교사들은 말했다. 교사들의 경험 부족, 자질 부족, 열정의 부족으로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며, 민원을 퇴치하는 개인기를 길러주고 상처를 힐링해 주겠다는 것은 개선책이 아니라고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말했다. 교사들은 개별적 교사 한 명씩을 이 무겁고 또 무서운 사태 앞으로 내세우지 말고, 교육청, 교장, 교감이 교사들과 함께 사태의 전면에 나서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지위 높은 선생님들은 사태를 빙 돌아서 형용사 ‘정당한’ 뒤로 숨어들고 있다.

29일의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교직 2년 차의 젊은 교사는 이날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이초등학교 분향소에 들러 숨진 동료 여교사에게 바치는 편지를 써서 붙였다.

-오늘 4만 명이 거리에 모여서 외쳤습니다. 교육대학교 교수님들도 함께 외쳤습니다. 다들 함께 외쳤습니다. 다들 함께 외쳤으니까 이제 무언가 달라지겠지요. 선생님.

편지는 ‘함께 외쳤다’는 사실을 희망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이 젊은 교사의 ‘희망’은 아직은 울음으로 보였다. 광화문 앞거리의 거대한 울음은 이 시대의 지층 맨 밑바닥까지 울려야 하는 울음이다. 숨진 여교사는 지금 이름도 없고 사진도 없다. 숨진 여교사가 이름 석 자와, 웃는 표정의 사진으로 돌아오기를 교사들은 바라고 있었다.

‘전국교사일동’은 8월 5일 토요일 광화문 앞거리에서 다시 모인다.

◆김훈=1948년 서울 출생. 한국일보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뒤늦게 작가가 됐다. 장편소설 『하얼빈』 『칼의 노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산문집 『연필로 쓰기』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황순원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소설가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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