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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강명의 마음 읽기

시간을 버티는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또래 소설가나 영화감독, 음악인을 만나면 대체로 침울한 분위기다. 창작자라고 하는 이들끼리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위로와 격려도 분명히 있는데, 그게 조금 방향을 틀면 신세 한탄으로 이어진다. 다들 마음 깊은 곳에 비슷한 서러움과 걱정이 있다. 대중이 내 진가를 몰라준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평론가들은 다 머저리들이다,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 대박을 터뜨리려나, 언제까지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이제라도 웹소설을 써야 하나…….

숏폼과 소셜미디어 시대인가
‘순간의 열기’에 돈과 사람 몰려
오래오래 남을 음악과 문학은?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나는 그런 자리에서 모든 참석자에게 기묘한 위안을 주는 화젯거리를 한 가지 안다.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혹시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이 빌보드 핫 100에서 최고 몇 위까지 올라갔는지 아시는 분?” 록밴드 너바나의 대표곡이자 록음악을 넘어 대중음악을 바꾼 바로 그 노래, 위대한 팝음악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그 곡 말이다. 나와 어울리는 소설가, 영화감독, 음악인은 대체로 40대이므로 다들 이 노래를 안다. 10대 시절 좋아하건 싫어하건 엄청 들었을 것이다.

“그 노래가 제일 인기 많았을 때 빌보드 핫 100 순위가 고작 6위였다”고 하면 모두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엥? 그 곡은 30년 동안 전설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데. 1991년에 듣자마자 바로 알았는데. 이건 몇 세대 뒤에도 잊히지 않을 노래라고, 정말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그러면 나는 검색해서 확인해보라고 하면서 덧붙인다.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거랑 시간을 버티는 건 완전히 다른 일 같습니다.” 그러면 술자리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진지한 작가라고 여기고 있을수록 더 그렇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나는 영화 ‘중경삼림’이 고전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보는데, 이 작품이 1995년 개봉했을 때 서울 관객은 12만여 명에 불과했다. 지금과 집계 방식이 달랐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해 한국 극장가 흥행 순위로 40위 안에도 못 들어갔다. 그렇다고 ‘중경삼림’을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부르려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외면받았던 적이 없다.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최고의 인기를 얻는 작품과 시간을 버티는 작품은 별개라는 거다. 뭐 모차르트라든가 마이클 잭슨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대중보다 더 너그러운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매정하다. 시간은 제법 괜찮은 작품과 시시한 범작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말 탁월한 극소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다 녹여 없애버린다. 시간의 선택을 예측하기 쉬운 것도 아니다. 1929년부터 1950년까지 발간됐던 미국의 교양 계간지 ‘콜로폰’이 1936년 구독자들을 상대로 “2000년쯤에 1930년대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을 사람이 누구일까”를 물은 적이 있다. 응답자들의 답변을 모아 만든 목록에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빠져 있고, 2000년대 평범한 문학 독자의 눈에는 낯선 작가들의 이름이 많다.

그런데 왜 나와 어울리는 창작자들은 시간이라는 또 다른 리그 주최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 걸까. 그게 일종의 패자부활전처럼 느껴져서? 그보다는 갈수록 더 변덕스럽고 얄팍해지는 ‘대중문화상품’ 시장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은 차분한 감식가다. 스타 파워나 인플루언서의 추천에 휘둘리지 않고, 밈이나 틱톡 영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유 횟수나 마케팅 예산에도 무심하다. 시간은 또 완벽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엄격하게 첫 시도와 아류작을 가려내는 편이다. 시간은 이유를 깐깐이 따진다. ‘유명해서 유명한’ 것들은 시간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시간의 그런 특성이 어떤 고집쟁이들에게는 서늘한 격려로 다가온다.

흥행이냐, 불멸이냐. 어느 쪽에 더 관심이 많으냐에 따라 프로듀서의 길과 아티스트의 길이 갈리는 것 같다. 각각의 길을 걷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도 다르다. 그 두 길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벌어지는 듯한데, 이제 대세가 된 숏폼과 소셜미디어라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순간적이고 집단적인 열기를 빠르게 잘 조직하고 거기에 본능적으로 잘 올라타는 사람이 점점 더 큰 보상을 얻는다.

나는 이런 현상이 대중문화뿐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즉흥성과 불안정성, 그것을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의 열광과 도취, 그것을 기회라고 여기지 않는 이들의 피로와 무력감이 모두 지금의 시대정신인 것 같다. 그 사이에 있는 이들의 망설임과 머뭇거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