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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뜻밖의 효과: “지역 정체성 살리자” 미술관 시설 개선·전시 차별화 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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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18면

이건희컬렉션 순회전 효과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사계’. [뉴스1]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사계’. [뉴스1]

“이건희컬렉션 전을 보려고 처음 오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멋진 미술관이 경기도에 있다는 사실이 경기도민으로서 자랑스럽네요.” (경기도미술관 ‘사계’ 관람객의 지난 26일 리뷰)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를 다녀와서 ‘아, 안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마침 쉬는날에 취소표가 나와서 다녀왔습니다. 막상 가 보니 전에 못 봤던 작품들이었고 정말 아름다워서 감동했습니다.” (대전시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과 신화가 된 화가들’ 관람객의 지난 23일 리뷰)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2만 여점 기증

이건희컬렉션 지역 순회 전시의 인기가 뜻밖의 효과를 내고 있다. 지역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지역 관람객들이 속출하는 한편, 지역 미술관들이 이건희컬렉션 전시를 계기로 오랜 숙원이었던 노후 인프라 개보수 예산을 확보했다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국가 기증 이건희컬렉션 중에서 근현대 미술 46점과 기타 미술관의 근현대 미술 11점을 모아 ‘사계’라는 테마의 특별전을 개최 중인 경기도미술관의 경우, 안미희 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건희컬렉션 전시 덕분에 미술관 개관(2006년) 이래 최초로 조명·벽·바닥 전부를 교체할 수 있었다. 전체 전시 공간을 3개월간 문 닫고 시설 공사를 했다. 이건희컬렉션 전시를 한다는 명분이 아니면 공립미술관에서 불가능했을 일이다. 다른 지자체 미술관들도 비슷한 사정이었을 것이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25일 개막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연합뉴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25일 개막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연합뉴스]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고인의 방대한 문화예술 컬렉션 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에 2만1693점,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 1488점, 지역 미술관 5곳에 102점을 기증한 것은 2021년 4월의 일이었다. 곧이어 국박과 국현은 각각 기증작품 전시를 열어 연일 관람객 만원을 기록했다. 기증 1주년인 2022년 4월에는 국박과 국현의 공동주최로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열렸으며, 이 전시 이후부터 이건희컬렉션의 전국 순회 전시가 시작되었다. 컬렉션 중 선별된 150점을 50점씩 3개 세트로 나누어 동시에 3곳의 지역 박물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형태다.

‘이건희컬렉션 제2 라운드’ 특집을 7월호에 마련한 현대미술 전문잡지 ‘월간미술’의 심지언 편집장은 “기증받은 미술관들의 기증 전시까지를 1라운드라고 보고, 2022년부터 시작된 순회전 이후를 2라운드로 본다”며 “1라운드로 설정한 시기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전시도 있지만, 국현이 기증작 3부작 전시를 하면서 흥행에 고무되어 과도한 우려내기 전시를 한다는 평도 받았다”고 말했다. 2라운드에서는 여러 지역 미술관들의 시설 개선과 전시 차별화 노력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현의 송수정 미술정책연구과장 또한 “각 지역 미술관이 이건희컬렉션을 가지고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차별화된 전시를 만들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다 보니 전시 기획 역량이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반면에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었던 세간의 관심이 결국 고(故) 이건희 회장이라는 한 기업인의 브랜드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그러한 브랜드 효과가 가라앉은 이후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혜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장은 월간미술 좌담회에서 “이건희 컬렉션 정도가 와야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풀리고, 처음으로 지역 미술관에 오는 관람객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미술계의 슬픈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평하고, 이 현실을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평했다.

기증 의도와 다른 전시관 추진 우려도

현재까지 열린 이건희컬렉션 지방 순회전

현재까지 열린 이건희컬렉션 지방 순회전

한편 이미 국박과 국현에 나누어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크다. 지난 20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가 기증 이건희컬렉션을 보존·전시하는 가칭 ‘이건희 기증관’을 서울 송현동 부지에 건립하는 사업이 최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이건희 기증관은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헌법재판소로 둘러싸인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연면적 2만6000m²(약 7900평)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며 총사업비는 1186억 원이다. 사업 기간은 2028년까지다.

이에 대해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왜 기증자가 국박과 국현의 소장품 사정을 세심하게 고려해서 나누어 기증한 것을 국가가 함부로 다시 합쳐서 잡탕으로 만들어 전시하려는 것인가. 이것은 기증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기증한 사람보다 기증받은 사람이 더 생색을 내는 꼴”이라며 “지난 정부의 잘못된 계획을 왜 현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으려는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 “현 정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대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엮는 문화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송현동 부지도 그 일환으로서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기증관 건립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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