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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MZ세대 사건리포트 | 박혜원 변호사가 말하는 직장 내 괴롭힘 대응법

중앙일보

입력

“수시로 녹음하고 주변에 피해사실 알려야”

■ 직장 내 왕따와 인격모독으로 ‘마음의 병’ 앓는 30대 늘어
■ 회사에 신고해도 면피성 조치 대부분… 산재처리가 최우선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의 조사 결과 직장인 1000명 중 33.3%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의 조사 결과 직장인 1000명 중 33.3%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서울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이지윤(30·가명)씨는 요즘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2년간의 취업준비를 거쳐 선망하는 회사의 인사 부서에 들어왔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특히 상사의 권위주의적 태도와 주말에도 계속되는 카카오톡 업무 지시를 참기 힘들었다. 카톡으로 전달된 업무 지시에 한 번 불응한 뒤로 동료들과의 소통이 급격히 줄었고, 카톡 업무방을 통한 메시지 전달도 완전히 끊겼다. 자신을 제외한 카톡 업무방이 새로 개설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어느새 이씨에겐 조직생활 부적격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회사에서도 기피 대상으로 전락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었다. 자연히 업무능력 미달 평가를 받아 소위 말하는 한직 부서로 발령됐다. 그런데도 회사는 직원 상호 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고 직급도 줄이는 등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우울증에 적응장애까지 앓게 된 이씨는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의 조사 결과 직장인 1000명 중 33.3%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30대 비율은 43.8%로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높았다.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참거나 모르는 척한다’는 직장인도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이 마련된 지 4년이 지났지만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따돌림, 폭언, 인격 모독은 예사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를 알아보고 이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안을 듣고자 산업재해 전문 박혜원(36·법률사무소 가득) 변호사를 찾았다.

폭행이 아닌 정신적인 괴롭힘으로 ‘마음의 병’을 얻는 20·30세대의 피해자가 많다. 근본적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기성세대와 MZ세대 간의 인식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래 가치를 중시하는 기성세대에게 회사는 평생직장이다.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인식이 당연한 세대다. 반면 MZ세대는 현재에 충실하다. 회사 또한 자아실현의 도구로 보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달라 업무적으로 불만이 쌓이고 충돌하는 것 같다.”

업무적인 부분이라면?

“상사는 부하라면 당연히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업무를 시키거나 상사 개인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MZ세대에겐 부조리로 느껴지는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사례를 듣고 싶다.

“한 기업에서 대체복무 중인 산업기능요원이 산재처리가 되겠느냐며 찾아온 적이 있다. 상사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거절했더니 복도로 불러내 허리를 주먹으로 치고 폭언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상해 흔적이 없고 녹음도 하지 못해서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또 건설사와 관련한 사례도 있는데, 면접 때는 외국어 능력을 묻지 않더니 입사 첫날 중국어로 된 도면을 던져주면서 숙지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어를 모른다고 하자 ‘너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느냐’는 등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매일같이 철야근무를 시켜 결국 자진 퇴사한 경우도 있다.”

상사와 부딪치면 다른 동료들이 눈치를 보느라 피해 근로자를 피할 것 같은데.

“그렇다. 상사 한 명에 의해 사업장 운영이 좌우되는 소기업일수록 심하다. 예를 들어 건물 시설관리팀은 소장 한 명이 전권을 행사하는데, 그렇게 되면 소장이 하는 말이 법인 셈이다. 지정된 업무 외에 다른 일을 시키는 것은 다반사고, 주말에도 체육행사 등을 열어 참석을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불만을 표시하자 소장 주도로 왕따가 이뤄져 못 견디고 산재 신청을 한 근로자도 있다.”

성 비위와 관련된 직장 내 괴롭힘도 여전할 것 같다.

“한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20대 여성은 50대 상사의 강요로 사적인 모임에 동반 참석하는 일이 잦았다.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처지여서 참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사가 카톡으로 고백하고 야한 농담을 일삼았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차단했는데 그해 바로 계약이 종료됐다.”

대기업에선 파벌싸움에 밀려 업무배제 당하기도

박혜원(36·법률사무소 가득) 변호사.

박혜원(36·법률사무소 가득) 변호사.

대기업에서는 괴롭힘이 좀 더 교묘하게 이뤄진다고 들었다.

“중견기업부터는 파벌싸움에서 비롯되는 괴롭힘이 있다. 특히 밀려난 파벌에 속한 근로자에게 업무 배제나 꼬투리를 잡아 징계를 내리는 사례가 많다. 심각하게는 승리한 파벌의 직원이 보복성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며 신고하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에는 아무도 없고 빈 책상만 하나 놓인 창고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는 건가?

“먼저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대체로 직장 내 괴롭힘은 직접적인 폭행보다 모욕·명예훼손·부당지시·따돌림 등 무형의 폭력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로 인해 우울증·적응장애·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발병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의뢰인에게 병원에 다녀왔는지 묻고 아니라면 가서 꼭 진단을 받으라고 권한다.”

정신 질환으로 진단서를 받는 게 예삿 일은 아닐 것 같다.

“동네병원에서 받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근로복지공단(공단) 소속 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가서 심리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병원에선 오늘 진료받았다고 내일 결과를 내주지 않는다. 3개월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괴롭힘이 있었다는 물증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그렇다. 자료가 많이 필요하지만 피해 근로자가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직장 동료의 발언이 담긴 인터뷰라도 구해야 하는데 공단에서 조사가 들어가면 인터뷰에 협조한 분들의 실명이 공개되기 때문에 협조하는 분들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하려고 제가 20명이 넘는 분들에게 직접 전화하고 요청하는 일도 많다.”

산재로 인정되면 휴업 급여 보상 받을 수 있어

산재가 인정되면 보상은 얼마 정도가 되는가?

“산재는 공단에서 심사하고 인정될 시 휴업 급여를 보상받는다. 휴업 급여는 요양 기간이 정해지는데 정신 질환으로 1년 쉰다고 가정하면 그 기간의 급여에서 70%를 받는 것이다.”

업무적으로 피해자를 구박해서 몰아붙인 끝에 피해자가 과로사하는 경우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과도한 업무로 인해 뇌졸중이라든지 심혈관 질환이 발생해 사망했다는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한다. 또한 근로자의 근무시간이 이전보다 확연히 늘어난 점을 증명해야 한다. 통상 과로사는 12주간의 근무시간을 토대로 확인된다. 발병 전 1주 이내의 근무시간이 과거 12주보다 30% 증가했을 경우 단기 과로사로 인정되고, 12주 동안 주 52시간을 초과 근무하면서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수행한 점이 입증되면 만성 과로사로 인정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크게 실효를 거두지 못 한다는 지적이 있다. 원인은 무엇일까?

“징계수위가 약하고 가해 근로자로부터 사과를 받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큰 회사는 몰라도 작은 회사에서는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도 않는다. 큰 회사에서는 쓸데없이 일을 키웠다며 괘씸죄를 적용해 피해 근로자를 지방으로 발령내는 사례도 있다. 덩달아 평판도 떨어지게 되니 피해 근로자에게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다.”

퇴사하고 나서도 피해 근로자가 계속 참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미 괴롭힘으로 굉장히 많은 고통을 받았고 본인이 그 상황을 개선해 보려다가 잘 안 돼서 퇴사까지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적으로 많이 소진돼 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고소를 진행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또 고소하더라도 괴로운 기억을 들춰보고 기록도 다시 보고 가해 근로자와 다시 얽혀야 하므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

형사 고소도 마음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텐데.

“사건이 불기소됐을 때 본인이 졌다는 느낌을 받는 걸 두려워들 한다. 무고에 대한 걱정도 있고. 그래서 포기하는 분들도 많다.”

법률가의 시선으로 볼 때 직장 스트레스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 있을까?

“산재나 소송에서나 똑같이 증거 수집이 최선이다. 이것도 사유가 되나? 이것도 문제 삼을 수 있나? 그런 부분이 하나하나 쌓여서 유리해지는 것이다. 특히 녹음을 많이 해둬야 한다.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동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괴롭힘을 당했을 때 가족이나 친구, 회사 동료에게 그때그때 피해사실을 알려둬야 한다. 과거의 특정 시점에 괴로움을 호소한 기록이 장부처럼 남으면 핵심 증거가 된다.”

- 글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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