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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화 |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과 최민호 세종시장의 ‘권력 지방이동론’

중앙일보

입력

[구루와 목민관 대화]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과 최민호 세종시장의 ‘권력 지방이동론’

“국회의원, 지방이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

■“상·하원(上下院)제 도입해 상원은 서울, 하원은 세종 설치”
■“행정수도 세종시 헌법에 명문화해 헌재 위헌시비 차단할 때”
■“국회 비례대표에 비(非)수도권 공천하는 정당에 힘 실어야”
■“세종시, 대중교통 요금 환급제로 지역경제 활성화 추진”

7월 14일 세종시청에서 만난 최민호(왼쪽) 세종특별자치시장과 우동기 지방시대 위원장은 국정운영과 함께 국회 권력의 중심추도 지방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7월 14일 세종시청에서 만난 최민호(왼쪽) 세종특별자치시장과 우동기 지방시대 위원장은 국정운영과 함께 국회 권력의 중심추도 지방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한 상상력 결핍이야말로 해소되지 않는 양극화 사회의 원흉이다.”

사회적 약자의 삶을 주로 취재해온 일본의 르포 작가 스즈키 다이스케(50)가 쓴 책 [그래도 사랑스러운 나의 아내님]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입지가 취약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는 현상 너머를 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과 같은 어젠다가 이에 속한다. 지방의 소멸에 대한 위기감은 이미 충분히 널리 전파됐고, 공유되고 있다. 문제는 필요한 실행(實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안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꼬인다는 점이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벌어지는 ‘국회 규칙’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국회 분원을 세종시에 두자는 법률이 2021년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이를 구체화할 국회 규칙은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다. 심지어 법적 지위가 ‘행정중심복합도시’ 인 세종시는 행정수도를 표방하지만 이게 행정수도인지 아닌지조차 모호하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 관련 특별법을 위헌으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꼭 세종시가 정책적으로 등한시되거나,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난 것도 아니다. 7월 10일 정식 출범한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세종시에 자리함으로써 행정수도로 가는 세종시 밑그림의 퍼즐 하나가 추가됐다.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최근 현판식을 가졌다. 기존의 국가균형발전위와 자치분권위가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방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에 해당한다.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시의 최민호 시장과 지방 분권 정책의 산실인 지방시대위원회의 우동기 위원장이 7월 13일 세종시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지방 소멸의 위기의식만 강조해서는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답답해했다. 수도권에 몰린 권력(정치인)이 대부분을 결정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남부 지방을 강타한 폭우 피해만 해도 하천 퇴적물을 제때 준설하지 못해 인명 피해를 더 키운 측면이 있다. 지천(支川)을 관리해야 할 지방 지자체에는 돈이 없다. 권력과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예산이 우선적으로 배정되기 때문이다. 수도권만 안전하고 지방은 점점 더 관리 부재의 영역으로 내몰리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이와 관련해 우 위원장과 최 시장은 지금이 ‘국가 권력의 이동’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최 시장은 행정수도 이전을 아예 개헌을 통해 헌법에 못 박고, 국회를 상·하 양원으로 나눠 하원을 세종시에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우 위원장은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수도권 중심의 직능 대표가 아닌, 전국에 분산된 지역 대표로 공천하는 방안을 강구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국회 권력의 개편이야말로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균형발전의 기폭제라는 인식을 가진 듯했다.

지방시대위원회가 20년 만에 세종시에 간 이유

행정수도 세종시에 지방시대위원회까지 합류했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가 개막한 것인가?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 “원래 대통령 직속기구는 서울에 두도록 돼 있다. 지방시대위원회 전신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2004년 발족 이래 줄곧 서울에 사무실을 뒀었다. 이번에 지방시대위원회가 세종시에서 발족한 것은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정부 정책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다. 균형발전, 지방분권의 의미를 상기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 “지방시대위원회가 세종시로 와 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저는 지방시대위원회가 ‘수도권을 떠났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세종시의 역사는 수도권 집중 해소의 역사와 맞물린다. 세종시가 2012년 특별자치시로 출범한 지 10년이 지났다. 성과는 아직 미흡한 편이다. 당시 세종시를 세울 때 수도권 인구 50만 명을 분산하자는 목표도 있었다. 그런데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온 인구는 10년 동안 6만2000명에 불과했다. 중앙행정기관 47개, 국책연구기관 16개가 세종시로 이전했는데 그 직원 수가 1만9000명 안팎이다. 딸린 가족을 3명으로 잡아도 당초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수도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우 위원장: “수도권 인구가 이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방과 수도권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국가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관점에서 균형발전, 지방 소멸 문제를 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방과 수도권이 따로 정체성을 가져가서는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지방도 지역의 정체성에 매달려서는 위축과 소멸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방과 중앙의 융합적 기반을 가진 세종시는 굉장히 흥미롭고, 실험적 도시의 표본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에서도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면 지방은 어떻게 되나?

최 시장: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 인구는 85만 명 늘었다. 세종시를 만들고 공공기관을 이전해도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사이 기초지자체 226개 중 80개 이상이 인구 소멸을 겪고 있다는 통계도 있지 않나. 세종시 역시 농촌의 면 단위 지역은 평균 연령이 70대를 웃돌고 있다. 이런 흐름이 앞으로 10년 더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조차 겁이 난다.”

우 위원장: “제가 지난 4월부터 세종시에서 살고 있다. 있어 보니 세종시는 우리나라 신도시 중에 비교적 강한 동질성을 가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더라. 신도심과 구도심의 격차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혁신도시들에 견주면 조화를 잘 이루는 도시가 세종이다. 10여 년 만에 40만의 인구가 짜임새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경우라고 하겠다. 도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안정화되고 있어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곳으로 꼽힌다. 제가 늘 얘기하지만 균형 발전은 인간의 생존권, 기본권의 문제이자 존엄성의 문제이다. 세종시의 동력이 지역균형 발전 모멘텀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윤 대통령 의지 강하지만 제도가 안 따라줘”

최 시장: “저는 결국 권력의 문제라고 본다. 경제·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도권은 지방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철벽이다. 이런 권력의 이동 없이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한다는 말은 그저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것이다. 6월 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개헌을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가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제안했다. 수도권 지역구 의원 121명에다 대부분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47명의 비례대표를 더하면 168명인데 이들이 거의 다 수도권에 거주한다. 권력이 지방으로 이동하자면 결국 지역의 가치에 가중치를 두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믿는다.”

우 위원장: “공감한다. 결국은 입법의 문제이고, 헌법을 개정해야 풀린다. 지금 분권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하면 조세법정주의와 자치입법권의 존재다. 지방세는 법률로 정할 게 아니라 당연히 지방의회의 조례(條例)가 정하는 게 타당하다. 또 자치 인사권을 준다고 하면서 지방정부에 국가 공무원을 배치한다. 인천시가 시민의 안전에 위험요소라 해서 정당 현수막 철거 조례를 정하고 집행에 나선 사례를 보자. 행정안전부는 인천시 조례가 상위법 위임 조항이 없어 지방자치법에 위배된다며 인천시를 대법원에 제소했다. 이게 뭔가? 시민의 안전과 생활 보호는 지방정부의 1차적 목적이다. 이런 부분의 뒷받침이 더 시급하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제가 봤을 때 국회가 가장 중앙집권화된 조직이다. 정치권의 분권화가 필요하다.”

최 시장: “권력의 이동 필요성은 국회 세종의사당을 추진하면서 더 절감하게 된다. 세종의사당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한 상징 아닌가. 그런데도 국회에서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22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규칙 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제가 언론인과 만나면 늘 하소연하는 게 이 문제다. 이 사안의 본질은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문제다. 비례대표를 제외하더라도 수도권 국회의원이 121명에 달한다. 이분들은 사는 곳이 수도권이다. 겉으로는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 찬성하지만 과연 진정성을 갖고 응하겠는가라는 회의(懷疑)마저 든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무적, 기술적 절차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전하는 상임위, 부속기관의 규모 등도 정해져야 한다. 사업이 지연되는 건 이들 대상과 인원이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옮겨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저항감이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 집무실을 공약한 윤 대통령의 의지는 추호의 변화도 없고, 불가역적이기는 하지만 제도가 따라와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50년 된 비례대표제도, 이제는 바꿀 때”

최민호(오른쪽) 세종특별자치시장은 6월 19일 국회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을 만나 국회 규칙 조속 제정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 사진:연합뉴스

최민호(오른쪽) 세종특별자치시장은 6월 19일 국회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을 만나 국회 규칙 조속 제정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힘의 이동, 권력 구조의 변동은 결국 개헌을 통해 이뤄야 할 사안이기는 하다.

최 시장: “그렇다. 세종시의 법적 지위만 해도 여전히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머물러 있다. 당초 세종시를 수도로 명기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2004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은 지 20년이 지났고, 그로 인해 국가균형발전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제가 지난 6월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는 세종시로 하자는 취지의 문구를 헌법에 명시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통령 제2집무실과 국회세종의사당 유치로 행정수도의 지위가 공고해진 세종시에 그에 걸맞은 헌법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게 개헌안의 골자이다. 개헌을 하게 되면 국가 권력구조는 ‘이원집정부제’로, 의회는 상·하 양원(兩院)제로 바꿨으면 한다. 상원은 서울에, 하원은 세종에 둔다. 서울은 외교·국방·경제의 거점이 되고, 행정수도 세종은 내치의 중심이 되는 쪽으로 말이다. 이런 방향으로의 개헌이 성사된다면 국가균형발전과 지방 회생에도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할 수 있다. ”

우 위원장: “국회가 여의도에 자리하는 데서 오는 외부 비용을 고려하면, 세종의사당은 정말 시급하게 건립돼야 한다. 저도 세종에 와서 일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 국회에 가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은 이미 정해진 원칙인데 이를 1, 2년 더 끌어본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최 시장: “세종의사당의 법률용어로는 국회 ‘분원(分院)’이다. 생각해보자. 어떤 상임위는 본원에 있고 어떤 상임위는 분원에 있어야 할까. 분원이라는 표현도 지방이 받아들이기에 좀 불편한 용어다. 어디는 본원(本院)이고 어디는 분원, 이런 식으로 구분하고 차별할 일은 아니지 않나. 시야를 넓혀 보다 평등하고 전향적인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미에서 헌법 개정을 제안한 것이다.”

내년 4월에는 22대 총선이 치러진다. 개헌과 법률 개정에 앞서 이런 지역의 요구사항을 국회에 반영할 방도는 없을까?

우 위원장: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과 운영의 묘를 살리면 지역균형발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반세기 전인 1963년 도입됐다. 당시 지역구에서 ‘인구 대표’로 뽑히는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부족을 보완하려는 취지에서 직능별 전문가들을 전국구(비례대표)에 포진시켰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의 직업은 다양하고 전문성도 뛰어나기에 더 이상 직능별 전문성을 가미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우리 국회는 인구 대표성을 근간으로 구성된다. 가뜩이나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는 요즘일수록 이제는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 정치를 보자. 당대표 선출도 수도권 중심, 총선·대선도 수도권 중심, 법률 개정도 수도권 중심으로 가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는 마당에 정치마저 수도권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현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년 총선부터 주요 정당이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면 이 같은 권력과 힘의 편중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여야가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같이한다면 헌법이나 선거법 개정 없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역 균형형 비례대표 정당에 몰표를 준다면?

2012년 특별자치시로 출범한 세종시는 국회 분원과 대통령 제2 집무실이 들어서는 등 행정수도 역할을 하게 된다. / 사진:연합뉴스

2012년 특별자치시로 출범한 세종시는 국회 분원과 대통령 제2 집무실이 들어서는 등 행정수도 역할을 하게 된다. / 사진:연합뉴스

좋은 취지이지만 선거 승리에 급급한 주요 정당이 선뜻 수용할지 의문이다.

우 위원장: “우리가 정의로운 세상을 꿈꾼다면 공간(空間)적 정의도 반드시 그 범주에 넣는 게 온당하다. 전국이 고루 살 만한 나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권력의 이동과 배분은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운용에서부터 그 단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당이 비(非)수도권 인사들만 비례대표로 공천하는 분위기를 고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는 비수도권 지역민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역 균형형 비례대표를 공천하는 정당에 표를 몰아주겠다고 압력을 넣으면 정당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다면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국회 운동장을 그나마 바로잡는 데 유용한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재정과 제도를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관장하면서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프레임으로 환원된다는 지적이 있다. 중앙 관료들의 시장만능주의, 선택과 집중, 경제우선주의 사고가 지역균형발전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상황은 아닐까?

최 시장: “예전에 일본 지자체 공무원들이 자조적 의미에서 ‘2할(割) 자치’라는 말을 하더라. 명색이 지방자치라면서도 지자체가 행사할 권한은 20%밖에 안 되고, 나머지 80%는 중앙정부가 쥐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선친인 아베 신타로 외상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30여 년 전 일본 개조를 꿈꾸었다. 일본이 이렇게 가선 안 되며, 헌법이든 뭐든 다 바꿔 국가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당시는 일본이 아주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런 꿈도 중앙정부, 중앙관료라는 벽에 가로막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더라. 이런 일본을 떠올리면 우리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30년 전 일본은 국력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한국을 멀찌감치 앞서나갔다. 지금은 우리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앞지를 상황이다. 1억2000만 인구를 가진 일본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처했을까? 저는 2할 자치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자체에 주어진 권한이 20%밖에 안 되니 구성원들이 잠재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그런 덫에 걸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방정부가 중앙집권 구조에 갇혀 2할 자치, 3할 자치를 맴돈다면 국가 경쟁력도 그만큼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중앙 공무원들, 바뀐 시대정신 이해했으면”

국내 최초로 BRT(간선급행버스체계) 전용 자율주행버스를 운행 중인 세종시는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 사진:연합뉴스

국내 최초로 BRT(간선급행버스체계) 전용 자율주행버스를 운행 중인 세종시는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 사진:연합뉴스

우 위원장: “중앙 공무원들의 자세나 태도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이제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경제의 효율성, 국가적 통합성은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야 할 개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통합적 체제, 중앙집권적 체제의 한계는 우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새로운 발전 모델이 바로 분권 전략인 것이다. 사회와 시대정신이 바뀌면 국가가 지향했던 발전 전략도 수정돼야 한다. 중앙부처의 공무원들도 달라진 환경에 어울리는 발전 전략과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최 시장: “1990년대 초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당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뒷받침하고, 국내 모든 행정을 통할하는 역할을 한다는 자긍심이 대단했다. 때가 되면 군수·시장에 임명되던 내무부 관료들이 지방자치 부활로 오갈 데가 없어졌다. 당연히 불만과 반발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무부는 국민을 위한 부서이고, 언제까지고 중앙집권 일변도로 갈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당시 관료이던 유정복 인천시장과 제가 지방자치 실무를 담당하는 통에 냉랭한 눈길을 감당해야 했다. 이제 그런 때가 다시 왔다. 그 시절 지방자치법이 30여 년 만에 부활했듯, 지금은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지방분권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고 대한민국의 국정운영 체계를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지방회생, 지역균형발전은 결국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는 의견이 많던데. 가까이서 본 윤 대통령은 어떠했나?

우 위원장: “분권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7월 7일 지방시대위원장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도 지방시대와 분권을 강조하셨다. 시·도지사들이 외국의 주지사들처럼 기업을 유치할 때 세금도 깎아주고, 땅도 제공하도록 모든 제도를 뒷받침해 주라고 말이다. 국가가 할 일은 물길을 내주고, 선착장을 세우며, 해적을 소탕하는 것이고, 거기에 나룻배를 띄우든 유람선을 띄우든 그건 지방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분권 작업은 중앙과 지방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고 자부한다. 분권형 정부 대(大) 개조 계획, 이 부분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국정운영의 중심축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옮겨가는 거대한 권력 이동이다.”

최 시장: “저도 오랜 세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일해봤지만 이렇게 실행력이 강한 대통령은 처음인 것 같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중앙정부 공무원들은 지방정부의 역량을 아직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지방정부에 이렇게 권한을 다 줘도 되는지, 그러고도 국가 재정이나 통합성이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 같다. 1970년대 유신시절을 보자. 그땐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소득 1000달러 달성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기도 했다. 지금 충남도의 수출액이 1000억 달러에 달한다. 화폐가치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출 100억 달러 시대의 중앙정부 역량과 수출 1000억 달러 시대의 충남 지방정부의 역량에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이렇게 시대가 바뀐 만큼 지방분권을 통해서 더 시너지를 얻어야 된다는 철학이 확고하다. 옆에서 보면 그 생각을 정책에 옮기는 추진력도 굉장하더라. 그래서 지방정부를 이끄는 입장에서 윤 대통령의 지방분권 정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승용차 중심에서 대중교통 중심으로 정책 이동

우동기(왼쪽) 지방시대위원장과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지방과 중앙의 융합적 기반을 가진 세종시의 성패가 지역균형발전의 시금석이라고 믿는다.

우동기(왼쪽) 지방시대위원장과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지방과 중앙의 융합적 기반을 가진 세종시의 성패가 지역균형발전의 시금석이라고 믿는다.

세종시는 인근 지역 교통량 유입이 많아 도로 교통 정체가 발생하는 도시다. 얼마전 교통체계 혁신을 예고했던데.

최 시장: “세종시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전국 1위이다. 살기 좋은 도시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지만 대전, 청주, 광주 등 인근 지역의 출·퇴근 수요가 많아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한다. 세종시는 또 인도와 자전거 도로는 다른 도시보다 큼직큼직하게 놓여 이용이 편리한 반면, 차량용 도로는 처음부터 좁게 설계돼 교통난이 가중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 중심으로 전환하는 혁신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그 첫 단추로 ‘대중교통 자기기여 인센티브’제라 해서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무료화한다고 해서 요금을 안 내는 건 아니다. 일단 승객이 요금을 내고 나중에 지역화폐로 환급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환급 제도는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기를 제공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도 하게 된다. 이미 전 세계 90개가 넘는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김성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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