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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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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앞 회에서 살폈듯이 “본바탕으로 아름다움을 삼았다(素以爲絢)”라는 옛 시의 뜻을 묻는 자하에게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 즉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먼저 마련한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자하가 “예(禮)가 뒤이겠군요”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나를 흥기(興起:흥이 나게 함)시키는 사람은 자하로구나! 비로소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만하구나”라고 크게 칭찬했다. 두 사람 사이에 큰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始:비로소 시, 與:더불어 여, 已矣(이의):어기 조사. 비로소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만하구나!. 34x68㎝.

始:비로소 시, 與:더불어 여, 已矣(이의):어기 조사. 비로소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만하구나!. 34x68㎝.

자하는 “예(禮)가 뒤이겠군요?”라는 반문을 통해 ‘본질인 진심이 먼저이고 진심을 담는 형식인 예(禮)는 나중’이라는 자신의 깨달음을 말했는데, 자하의 그 말뜻이 자신이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의미와 완벽하게 부합했으므로 공자는 그토록 큰 칭찬을 한 것이다.

“줄탁통시(啐啄同時:여기서는 ‘同’을 ‘통’으로 읽는다)”라는 말이 있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가 어미닭에게 보내는 신호인 ‘줄(啐::재잘거릴 줄)’과 어미닭이 알껍데기를 쪼아주는 ‘탁(啄:쫄 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표현한 말로서 가르침과 배움이 완벽하게 투합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를 비유하는 말이다.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한 줄탁통시의 소통이 그리운 요즈음 교육현장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