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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동의 최초의 질문

수십개국 과학자가 참여한 ‘mRNA 백신’,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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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최근 몇 년간 주요 국가들에서 기술주권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논의가 심화하고 있다. 영국·일본·프랑스·호주 등 여러 국가가 기술주권 전략을 발표했고, 실제로 전략기술개발 프로젝트에 국가별로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전반적인 정책기조로 보면 핵심 전략기술을 자국이 개발하거나 유출을 방지하자는 보호주의적 색채가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의 기술주권 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쇄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폐쇄적 기술주권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폐쇄적 기술주권 전략은 국가의 기술주권을 오히려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 기술’이라는 방패막이 뒤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수입대체형 국산 기술들을 양산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수입대체형 기술을 추구했던 남미 국가들과 개방적 기술경쟁의 길을 걸어온 한국이 오늘날 얼마나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상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미·중 경쟁에 기술주권 화두로
특정 국가의 폐쇄적 기술 한계
반도체·바이오 등 협력은 필수
글로벌 기술생태계 더 다져야

‘우리 기술’만 추구했다간 남미꼴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FP=연합뉴스]

폐쇄적 기술주권 전략은 글로벌 기술생태계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발표되는 각국의 기술주권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략기술 계획을 종합해보면, 자신의 강점이나 필요와 무관하게 중요하거나 유망하다고 알려진 소수의 몇 개 첨단기술을 공통적으로 타깃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요국들이 차세대 반도체의 핵심기술분야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금액만 모아보더라도 간단히 1000조원을 넘는다.

이렇게 소수의 기술에만 중복해서 글로벌 자원을 투자하게 되면 한 다리만 길게 만들어진 의자처럼 왜곡된 글로벌 기술생태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감염병이나 기후변화·고령화 등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지구적 문제의 기술적 해법은 더디게 개발될 것이다.

종합하면, 폐쇄적 기술주권전략은 장기적으로 개별 국가의 기술주권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생태계의 고른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폐쇄적인 아닌 협력적 기술주권으로 가야 한다.

협력적 기술주권은 고유한 기술을 가진 국가들이 기술시스템의 보완성에 기반하여 협력하고 있는 일종의 상보적 균형상태를 의미한다. 커다란 퍼즐판의 퍼즐처럼 서로 필수불가결한 상태, 혹은 못과 망치처럼 같이해야 완전한 성과를 내는 보완적 파트너의 관계를 갖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관심을 두는 전략기술들이 하나같이 복잡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협력적 기술주권은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채택해야 하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전략기술인 mRNA 백신기술만 하더라도 수십 개국, 수천 명의 연구자가 수십 년간 쌓아 만든 협력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독일의 커털린 커리코와 미국의 드루 와이즈먼 등이 노벨상 후보로 꼽히지만, 이들은 거대한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에서 빙산의 일각을 차지할 뿐이다.

전략기술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그 어떤 개인이나, 조직 혹은 국가도 모든 요소기술을 다 가질 수 없다. 미국이 ‘칩4 동맹’이나 미국-유럽 간 기술무역협의체(TTC) 등을 활용해서 동맹국 간 역할 분담을 하려는 것도, 쉽게 말해 아무리 미국이라도 복잡한 기술의 전부를 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팅과 같은 미래 기술을 생각하면 협력적 기술주권전략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미래 기술은 정의상 아직 어느 기술 대안이 표준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이므로 여러 국가가 많은 시행착오를 공유하면서 합의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4년부터 시작한 벨기에의 반도체 분야 국제공동연구소 IMEC 이다. 인텔·퀄컴·삼성과 하이닉스 등 전 세계 96개국의 대학과 기업이 반도체의 미래기술을 위해 경쟁과 협력을 함께하는 공동의 플랫폼이다.

협력적 기술주권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이 글로벌 협력의 테이블에 한국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뿐 아니라 백신 등 바이오기술·환경기술·데이터공유와 보안기술 등 분야별로 미래 기술의 방향과 표준을 정하기 위한 협력체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방어적 기술주권 사고 경계해야

기술주권 논의가 한창인 요즘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기술주권의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글로벌 기술생태계에서 우리만의 고유한 기여가 무엇일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상호 이해를 공유하면서 미래기술을 만들어가는 협력적 기술주권의 전략을 도모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 글로벌 기술협력 플랫폼에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은 갑자기 큰돈을 투자한다고 금방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중동의 오일머니가 기술세계를 일찍이 지배했을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과 축적된 경험을 글로벌 기술생태계에 제시하고, 작은 협력의 과제부터 시작해서 시행착오를 공유하면서 차근차근 신뢰를 구축해나가는 단계별 접근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기술협력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에 달린 일이라 마치 곰국을 끓이듯 혹은 가마에 도자기를 굽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투자비용이 많고 적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꾸준하게 신뢰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협력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끓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잘 식지 않는 법이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