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윤정의 판&펀

"이 멋진 걸 엄마 아빠만 봤다니"…54세 김완선에 빠진 MZ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

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

‘MZ세대와 중장년의 세대갈등’ ‘무분별한 악플 세례’ 같은 사회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김완선(54)의 유튜브 동영상 댓글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tvN ‘댄스가수 유랑단’ 대학축제 공연을 계기로 젊은 세대의 관심이 폭발하며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이 가수에 “이렇게 대단한 분이었군요” “이 멋진 걸 엄마 아빠만 봤다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국보급 레전드’ ‘무대 천재 끝판왕’ 같은 극찬이 쏟아진다. 30년 넘게 그를 보아온 세대도 마찬가지. 초등학교 때부터 팬이었다며 ‘100년에 한 번 나올 전무후무의 댄싱퀸’을 알아본 자기 눈을 대견해 하거나 “그땐 제대로 몰라봐 미안하다”며 뒤늦은 애정을 고백한다. 악플 하나 없는 훈훈한 세대 통합의 현장이다.

“이 멋진 걸 엄마 아빠만 봤다니”
이 시대 젊은이들 탄성 쏟아져
세대통합 이끄는 ‘리듬 속 그 춤’

판 & 펀

판 & 펀

그럴 만도 하다. 김완선의 춤을 보면 대가들이 흔히 그렇듯 ‘자유’나 ‘초월’이란 말이 떠오른다. 칼군무, 포인트 안무 혹은 팝핀, 브레이크 댄스, 웨이브…. 아이돌이나 댄스 가수들이 애써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을 이 사람은 훌쩍 뛰어넘는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자유롭게, 힘들이지 않고 손끝 하나 고갯짓 하나로 독보적인 선을 만들어낸다. 팬들이 으뜸으로 꼽는 1987년 아시아 가요대전 팩스뮤지카 무대, ‘리듬 속에 그 춤을’ 공연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다니는 그는 흡사 한 마리 나비 같다. 물려받은 유전자가 남다르기 때문일까. ‘한국 근대무용의 아버지’ 한성준(1874~1941), 승무·살풀이춤 대가 한영숙(1920~1989)의 후손인 그는 시쳇말로 로열패밀리에서 태어난 ‘금수저’ 춤꾼이다.

그러나 이런 찬사는 그의 춤이 재발견되면서 쌓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구자들이 흔히 그렇듯 김완선은 처음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무려 38년차 가수 김완선의 1986년 데뷔 기사는 ‘기대되는 율동 가수’ 혹은 율동이 돋보이는 ‘비디오형 가수’라 쓰고 있다. ‘댄스 가수’ ‘댄스 음악’이란 말을 아직 안 쓰던 시절이었다. ‘비디오형’이라는 말에는 ‘오디오형 가수’보다 한끝 아래라는 폄하가 은근히 담겨있다. 춤곡이라면 여가수들이 간간이 발표하는 빠른 리듬에 약간의 율동을 곁들인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돌 댄스 가수의 원형이라 할 박남정이나 소방차보다 한두 해 앞선 데뷔였다.

온몸을 젖히는 웨이브와 목이 꺾일 듯한 헤드뱅잉, 앞발을 번쩍 치켜드는 동작 등 격렬한 춤을 추는 가수의 등장. 17세 소녀의 도발은 수십 년 군사독재 시대 대중문화에 어쩔 수 없이 깔려있던 근엄한 공기에 혁명적인 파열음을 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그 몸짓은 낯설었다. 대중은 ‘어떻게 저렇게 춤을 잘 출 수 있을까’ 넋을 잃고 빨려들면서도 ‘저렇게 춤을 춰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과 거리낌이 앞섰다. 지금 같으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칭송받을 그의 치켜뜬 눈은 늘 놀림거리였다. 1991년 ‘가요톱10’ 1위로 주류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데뷔 후 5년이 걸렸다. 그것도 댄스곡이 아닌 발라드 ‘혼자만의 것’과 시티팝 ‘삐에로는 나를 보고 웃지’였다. 오늘날 명곡으로 꼽히는 ‘리듬 속에 그 춤을’은 물론 ‘오늘밤’ ‘나 홀로 뜰앞에서’는 하나도 1위를 못했다. 팬들이 “너무 빨리 태어났다”고 아쉬워하는 김완선은 이제야 시대와 제대로 된 접점을 찾은 듯하다.

반가운 건 그와 시대의 화해뿐만 아니다. 김완선은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등에서 거듭되는 성공에도 “마치 남의 일 하듯 했고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획력과 오늘날 아이돌 훈련 같은 방식으로 김완선을 스타로 만들어낸 매니저 이모였지만 그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제대로 먹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칭찬 한 번 못 듣고 돈도 받지 못하며 하기 싫은 노래와 춤을 추다가 도망치듯 나왔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주눅 든 채 자신과 불화하고 주변에 마음을 닫고 살아온 듯했다. 아직도 종종 이슈로 등장하는 연습생 인권이나 수익 정산 문제 같은 것을 훨씬 더 앞서 호되게 겪은 것이다. 오랜 시간 뒤 그가 직접 쓴 ‘Here I am’(2019)에서 ‘이젠 웃지 않아도 돼, 입술에 힘을 뺀 너의 모습 괜찮아’라고 하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지는 이유다. ‘댄스가수 유랑단’ 최근 방송에선 “아주 오랜만에 춤과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 설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며 행복해했다.

열일곱 나이부터 ‘최초의 백댄서’ ‘최초의 본격 댄스가수’ ‘최초의 여성 밀리언셀러’ 같은 역사를 써온 김완선. 그는 이제 ‘가장 오랫동안 현역 댄스가수로 살아남은 유일한 존재’라는 새 역사를 쓸 일만 남았다. 자유롭고 행복해진 자신을 더 자랑스러워하는 개인의 역사도 함께 쓰면 좋겠다.

이윤정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