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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BTS RM도 왔다…"韓 아닌 것 같다" 난리난 의정부 명물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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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음악도서관 전경. 박이담 기자

의정부음악도서관 전경. 박이담 기자

 경기도 의정부시를 대표하는 게 뭘까요? 의정부고 학생들의 졸업사진? 이젠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상징물이 있습니다. 바로 의정부미술도서관과 의정부음악도서관입니다. 지난해 방문객은 합해서 약 60만명. 전문 도서관임에도 여느 공공도서관의 두 배가 넘는 이들이 이곳을 찾았어요. 유퀴즈도 찍고, BTS의 RM도 다녀간 곳이죠.

외지에서 온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우리나라가 아닌 것 같다”, “의정부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며 칭찬 일색 후기를 남기고 있죠. 오늘 비크닉에선 두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담당한 27년 차 사서,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관과 과장을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관과 과장.

박영애 의정부시 도서관과 과장.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간단한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공공도서관은 1901년 세워진 부산시립도서관이에요. 일제강점기에 서울과 인천 등에 공공도서관이 건립되죠. 하지만 일제 통치의 선전의 장으로 활용됐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었어요.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곳곳에 공공도서관이 만들어집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는 1172곳에 달하죠.

공공도서관이 발달하면서 일부 지역에 정보나 과학 분야에 특화한 도서관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 분야 특화 도서관을 만든 곳은 의정부시가 처음이었어요. 2019년 의정부미술도서관, 2021년엔 의정부음악도서관이 문을 열어요.

의정부미술도서관 내부 전경. 박이담 기자.

의정부미술도서관 내부 전경. 박이담 기자.

#기존 도서관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 문법

박 과장은 두 도서관을 기획하기 위해 30개 도시 80여개 도서관을 탐방했다고 해요. 그중 일본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습니다.

“당연히 우리 도서관 구조와 비슷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자료실 열람실 구분 없이 큰 공간만 하나 있었죠. 어린이자료실과 종합자료실의 구분조차 없었어요. 심지어 입구에선 음악 공연까지 열리고 있었어요”

거기에서 착안해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로 구성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며 만남과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열린 공간이란 의미죠. 두 도서관 건물 전체가 뻥 뚫려있어요. 벽과 칸막이는 최소화했죠.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원형계단. 박이담 기자.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원형계단. 박이담 기자.

미술도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원형 계단이에요. 도서관 중앙에서 1층부터 3층까지 연결하며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어요. 음악도서관에서도 1층 오픈스테이지와 2층을 잇는 계단은 두 층을 연결하는 동시에 관람석으로 사용됩니다. 도서관에서의 경험을 확장하는 공간 문법이에요.

“벽과 칸막이로 나뉜 열람실을 생각해보세요. 주변과 단절된 채 가져 온 책만 보며 제한적인 경험만 하게 됩니다. 열린 공간에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발견과 만남이 이뤄져요.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 그리고 미술 전시회와 음악 연주회까지 말이죠.”

#서점처럼 책을 돋보이게 진열하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정면 서가. 박이담 기자.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정면 서가. 박이담 기자.

두 도서관은 책을 단순히 모아둔 게 아니라 돋보이게 전시해놓은 느낌을 줍니다. 책등만 보이는 보통 서가와 달리 표지가 보이도록 놓는 정면서가 덕분이죠. 단점이 있긴 해요. 수십권 꽂을 공간에 두세권만 비치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도서관보다 서점 가는 걸 즐기잖아요. 대형서점을 돌아다니면서 그 이유를 찾았죠. 서점은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표지가 눈에 띄게 배치해요. 서점처럼 책이 돋보이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서가에 조명을 설치한 것도 어떻게 하면 책이 더 눈에 띌까 고민한 결과예요. 도서관 창문도 크게 만듭니다. 그 앞에는 뒷면이 뻥 뚫린 서가를 배치했어요. 자연 채광이 그대로 들어와 책을 빛내도록 한 거죠.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창문 앞 서가. 박이담 기자.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창문 앞 서가. 박이담 기자.

#이런 경험을 제공한 도서관은 없었다

이용자 경험에도 신경 썼습니다. 푹신한 바닥에 편안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았어요. 발소리를 줄여주는 효과는 덤이었습니다.

미술과 음악이란 주제도 색다르게 체험하게 만들었어요. 미술도서관 1층 한가운데 영국 현대미술 작가 데이비트호크니의빅북을 펼쳐놨어요. 세로 1m, 펼치면 가로 1.4m에 달하는 이 책의 가격은 무려 400만원. 관람객들은 책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죠.

음악도서관에는 지역 정체성을 담았어요. 미군 부대가 있던 의정부시는 힙합, 재즈 등 흑인음악이 발달해 정기적으로 블랙뮤직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합니다. 이 페스티벌과 관련된 음악 앨범을 전시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어요. 도서관 벽면은 흑인음악의 문화이기도 한 그래피티로 가득해요.

의정부음악도서관 벽면에 꾸며진 그래피티 작품. 박이담 기자.

의정부음악도서관 벽면에 꾸며진 그래피티 작품. 박이담 기자.

#전국 도서관에서 가장 비싼 물품이 여기에
두 도서관을 만드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고 해요. 공공도서관은 기획부터 개관까지 보통 4년 정도 걸린대요.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총 6년이 소요됐습니다. 기획 및 설계 단계에만 2년을 더 투입합니다. 도서관의 본질인 책을 중심으로 미술에 대한 경험을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탄생한 대표적인 공간이 지역 신진작가들의 작업 공간인 오픈 스튜디오에요. 이용객은 유리 벽을 통해 예술작품 만드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어요. 여기서 탄생한 작품으로 기획전시를 열기도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김남준(RM) 등 유명인사가 기증한 미술 도서를 모아 꾸민 공간도 의정부 미술도서관에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이죠.

의정부음악도서관에는 어쩌면 전국 도서관 물품 가운데 가장 비쌀지도 모르는 특별한 소품이 있어요. 바로 자동 연주 기능까지 갖춘 ‘스타인웨이 피아노’에요. 최고급 피아노의 대명사로 음색이 밝고 화려하기로 유명하죠. 가격은 무려 2억4000만원. 방문객들에게 고품격 음악을 선사하겠다는 의지로 꾸준히 지역 의회를 설득해 얻어낸 거죠.

#슬세권에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면

의정부음악도서관에서 음악 공연이 열리는 오픈스테이지. 박이담 기자.

의정부음악도서관에서 음악 공연이 열리는 오픈스테이지. 박이담 기자.

두 도서관을 만든 박 과장은 올해 초 ‘55회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했어요. 도서관 발전에 공적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를 치하하는 상으로 도서관계에선 최고 권위의 상이에요. 전국적으로 주목받은 특화도서관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은 거예요.

“잘 차려입고 멀리 성수동까지 가지 않아도 편하게 슬리퍼 신고 동네에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 공공도서관이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하이브리드 공간이 돼야해요. 다양한 콘텐트와 가치를 어떻게 담고 배치할지까지 열렬히 고민해야 합니다.”

의정부 미술·음악도서관이 유명해지면서 박영애 과장도 바빠졌다고 해요. 전국 지자체를 돌며 새로운 도서관을 만든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거든요. 누구나 집 앞 독특한 도서관에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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