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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일본판 연극 ‘기생충’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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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호 30면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일본에서 연극으로 재탄생해 상연 중이다. 나도 지난달 도쿄에서 연극 ‘기생충’을 관람했다. 영화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반지하 가족의 아버지 역할은 연극계의 톱스타 후루타 아라타(古田新太)가 맡았다. 연극 티켓값 1만2000엔(약 11만원)은 아주 비싼 편이지만 개막 전부터 매진됐다. 인기의 이유는 역시 ‘기생충’을 어떻게 무대화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건 홍수 장면이다. 영화에서 반지하의 집은 침수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높은 곳에 있는 박 사장 집은 아무렇지 않았다. 심지어 사모님은 “어제 비가 왕창 온 덕분에 오늘 하늘 완전 파랗고 미세먼지 제로잖아”라고 해맑게 이야기하며 홍수 다음 날 마당에서 파티를 연다. 아래로 내려가는 빗물이 빈부격차를 보여 주는 장치가 됐는데 이는 무대에선 표현하기 어렵다.

홍수 대신 고베대지진을 배경 삼아
피해 지역엔 재일 코리안 많이 살아

일본에서 상연된 연극 ‘기생충’에서는 홍수가 지진으로 바뀌었다. 1995년 고베대지진이 일어나는 전후를 배경으로 삼아 구체적인 지명은 안 나왔지만 부유한 가족이 사는 곳은 아시야(芦屋), 가난한 가족이 사는 곳은 나가타(長田)로 추정된다. 높은 부잣집에서 화재로 연기가 나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었다. 나가타는 바다에 가까운 낮은 지역으로 지진으로 인해 많은 집이 무너지고 불이 나서 큰 피해를 보았다. 한편 아시야는 높은 곳에 있는 부자 동네로 실제로 피해가 작았다.

사실 나는 영화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최우식이 연기하는 기우가 박 사장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며 ‘아시야 같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아는 한국 부유층은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경사가 있는 곳은 달동네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베대학에 다니면서 아시야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간 적도 많은데 오르막길을 걸어가면서 박 사장 집 같은 넓은 마당이 있는 큰 집들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설정을 고베대지진으로 한 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정의신이 재일코리안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피해가 컸던 나가타는 재일코리안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정의신은 연극 ‘야끼니꾸드래곤’을 비롯해 재일코리안을 그린 연극과 영화를 여러 작품 만들어 왔다. ‘야키니꾸 드래곤’은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에 들뜬 1970년 전후를 배경으로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재일코리안 가족을 그린 연극으로 정의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그렸다. 정의신은 인터뷰에서 “이른바 기민(棄民) 같은 취급을 받은 재일코리안들의 삶을 작품으로 기록하고 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올해는 간토대지진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도 나왔듯이 간토대지진 당시 혼란 속에서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정확히 100년이 되는 오는 9월 1일에는 학살사건과 관련된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후쿠다무라 사건(福田村事件)’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알려진 모리 다쓰야(森達也)가 감독을 맡았으며 이우라 아라타(井浦新), 다나카 레나(田中麗奈) 등 유명 배우들이 주연한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든 극영화로 이 사건의 희생자는 일본 사람이다. 행상인으로 간토 지방을 지나가던 시골 사람들이 사투리 때문에 조선인으로 오해를 받아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 영화를 만든 영화사 ‘우즈마사’는 ‘박열’을 일본에 배급한 영화사다. 우즈마사의 고바야시 산시로(小林三四郎) 대표는 “일본에서 만들어야 하는 영화를 자꾸 한국에서 만든다”고 했었다. 사실 이런 영화가 일본에서 흥행하기 어려운데 영화사도, 감독도, 배우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만든 듯하다.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지하게 역사를 기록하고 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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