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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마음껏 웃으며 즐기는 오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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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음악회장에서 청중이 크게 웃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몰입하며 음악을 감상한다. 그런데 이번에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있었다. 올해로 21회를 맞는 한국소극장오페라 축제가 그것이다.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세이모어 바랍(Seymour Barab, 1921~2014)의 ‘버섯피자’(1988), 이건용(1947~)의 ‘봄봄’(2001), 모차르트의 음악을 모티브로 한 어린이 오페라 ‘푸푸게노! 똥 밟았네?’가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들은 기존의 오페라가 가지는 무게감이나 장중함보다 청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연출 덕분에 오페라를 보다 친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또 낯선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와 대사가 진행되어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소극장이란 작은 공간도 나름 흡족했다. 연주자를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

‘소극장 오페라축제’의 흥겨움
우리말 노래와 대사 부담 없어
대중성·예술성 잡은 ‘버섯피자’

네 남녀의 뒤엉킨 사랑을 다룬 오페라 ‘버섯피자’. [사진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네 남녀의 뒤엉킨 사랑을 다룬 오페라 ‘버섯피자’. [사진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특별히 큰 웃음을 선사한 작품은 오페라팩토리(대표 박경태)가 공연한 ‘버섯피자’였다. 20세기 후반 ‘코믹 오페라’의 대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바랍이 대본과 음악을 썼다. ‘본격 충격 막장 드라마’라는 홍보 문구가 딱 맞게 ‘버섯피자’는 불륜과 살인,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제목은 버섯피자에 독을 넣는다는 설정과 연관된다.

물론 이런 주제가 오페라에서 드문 것은 아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에서도 하인 세르기에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 카테리나는 자신의 불륜을 알아챈 시아버지의 버섯 요리에 독을 넣어 그를 살해하고, 남편까지 죽인다. 그렇지만 ‘버섯’이라는 공통점도 가진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와는 달리 바랍의 ‘버섯피자’는 이 주제를 완전히 코믹하게 그렸다.

여주인공 블룹뚜아(소프라노 이소연)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젊은 애인 스콜피오(테너 조철희)와 밀회하며 남편 포르마죠(바르톤 염현주)가 좋아하는 버섯피자에 독을 넣어 죽이려 한다. 사냥을 마치고 남편이 돌아오자 애인을 장롱에 숨기고 이 계획을 실행하지만, 이것을 엿들은 여동생 포비아(메조소프라노 김미소)가 형부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피자를 먹지 말라고 한다.

이에 남편은 장롱 속에 숨었던 애인을 찾아내 피자를 먹으라고 총을 겨눈다. 긴장된 상황에서, 할 수 없이 피자를 먹은 스콜피오는 피자가 너무 맛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에 속았다고 생각한 남편은 광분하고 실수로 총을 쏘아 여동생이 죽는다. 이후 두 사람을 추궁하지만, ‘항상 늦는 버릇 때문에’ 여인들과 사랑을 실현하지 못했다면서 스콜피오는 블룹투아와의 관계를 부정한다. ‘절대 맹세’를 한다는 두 사람의 말에 수긍하며 포도주를 한잔하려던 남편은 쓰러진다.

사실, 블룹뚜아는 피자가 아니라 포도주에 독을 넣은 것이다. 죽어가는 남편은 분노하며 스콜피오를 총으로 쏘았는데, 그 와중에 남편과 스콜피오가 아버지와 아들임이 밝혀지며, 부자(父子) 재회를 한다. 스콜피오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연인 블룹뚜아 마저 죽인다. 결국 등장인물은 모두 죽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죽음은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풍의 경쾌한 선율과 리듬, 코믹한 행동으로 시종일관 유쾌하게 표현되었다.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 많이 웃으며 감상한 이 오페라는 단지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네 명의 성악가들이 수준 높은 노래와 연기로 생생하게 캐릭터를 살려냈기 때문이다. 한국어 대사는 명료했고, 서정적인 아리아, 고난도 콜로라투라 아리아와 중창도 수준이 높았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포도주는 신이 내린 태양의 술’이라 노래하는 조철희는 경박한 스콜피오를 생생하게 재현하였고, 양복을 번지르르하게 차려입고 소파에 앉을 때마다 엉덩이를 찌르는 뜨개질바늘을 빼내면서 익살스럽게 노래하였다.

한 명씩 죽어가면서 ‘날 죽이다니’라고 원망 섞인 노래를 우스꽝스럽게 한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가장 처음 죽게 된 여동생 포비아가 소파에 엎드려 있다가 한 번씩 ‘날 죽이다니’를 노래할 때는 박장대소를 하게 되었는데, 메조소프라노 김미소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인간 밑바닥 삶의 단면을 주제로 웃음 코드를 작품 안에 치밀하게 장착한 ‘버섯피자’는 공허한 웃음이 아닌, 진한 감동이 있는 웃음을 선사하였다. 비평가 알가로티(F Algarotti)가 “좋은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방법 중에서 오페라가 아마 가장 완벽하고 의미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번 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는 어깨의 힘을 빼고 오페라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