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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주택연금과 자린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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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자린고비는 식사 때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밥 한술 뜨고 굴비 한 번 쳐다보는 구두쇠다. 쳐다보면서 “어이 짜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아들이 두 번 쳐다보면 호통을 친다.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노후에 소득이 몹시 부족하면서도 주택을 연금화하지 않고 마냥 끌어안고 사는 경우다.

주택연금은 일종의 역(逆)모기지 상품이다. 모기지(mortgage)는 주택담보대출을 일컫는데, 목돈을 빌리고 원금과 이자를 분할 상환한다. 예를 들어, 3억원을 4%로 빌리고 20년에 걸쳐 원리금을 매월 181만원 상환하는 것이다. 역모기지는 이를 거꾸로 했다. 대출을 매월 조금씩 받고 나중에 목돈으로 상환한다. 3억원 주택을 70세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매월 90만원을 죽을 때까지 받고, 사망하면 주택을 처분해서 한꺼번에 갚으면 된다.

노년기 현금 챙기는 주택연금
주택을 채권으로 바꾸는 효과
60세 이상 가입률 2.4% 그쳐
고령자 자산활용에 추천할 만

은퇴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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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역모기지는 죽을 때를 모르기에 대출 기간이 확정되어 있지 않다. 2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모른다. 그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가로 역모기지 제공자(주택금융공사)는 가입자에게서 보증료(보험료)를 받는다. 그러니 주택연금에서 받는 연금은 ‘대출금+이자+보험료’인 셈이다. 보증료와 이자는 현금으로 당장 지불하지 않고 부채로 계상하고 있다가 죽을 때 모두 갚는다. 이들 부채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에 이자가 붙어 급속하게 증가하는 역(逆)복리 효과가 발생한다. 주택연금에 너무 일찍 가입할 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주택연금의 핵심 기능은 주택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가계자산의 구성비를 바꾸어주는 것이다. 올해 기준으로, 6억원 주택을 70세에 종신정액지급형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매월 180만원을 죽을 때까지 받는다. 주택 가격이 급락해도 연금액은 평생 변화가 없으니 고정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셈이다. 이는 매월 180만원 이자를 주는 만기 없는 채권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다. 주택연금은 집을 처분하지 않고 그 집에 살면서 실질적으로 주택과 채권을 교환하는 효과를 준다. 향후 부동산 가격이 양극화하는 상황에서 소외된 지역의 주택 한 채가 재산의 대부분인 사람은 생각해 볼 만한 특징이다.

주택을 채권으로 바꾸는 자산교환효과는 노후 소득이 있는 사람도 자산을 재배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자산에서 부동산이나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은 사람이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려주는 셈이 된다. 주택연금 가입 기준이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주택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주택금융공사법 개정으로 10월부터는 12억원으로 상향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다주택자도 합산하여 공시가격 12억원 이하면 거주하는 한 채를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한 채는 살면서 주택연금 받고 다른 한 채는 임대를 주면, 현금흐름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 변동에도 덜 노출된다. 현금흐름과 자산배분 둘을 바꾸는 일석이조 효과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주택연금을 취급하고 있다. 현금은 없고 집 하나 달랑 있는 ‘하우스 리치 캐시 푸어(house rich cash poor)’ 가계의 노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노후 소득 빈곤율은 OECD 국가 중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우리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나라들의 노후소득 빈곤율은 한참 낮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노후 현금흐름을 만드는 주택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현재 주택연금 가입 가구가 11만이며 월평균 116만원을 받고 있다. 가입 주택의 평균가격이 3억7000만원인 걸 고려하면 괜찮은 현금흐름이다. 기초연금이 부부 기준 월 최대금액이 51만원이며,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은 61만원이다. 주택연금은 연금액은 많지만 가입률은 낮다. 60세 이상에서 주택을 소유한 가구의 2.4% 정도 가입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주택연금 월 지급액을 가구 전체로 보면 월 1276억원, 연 1조5300억원 정도다. 단순 계산으로, 가입률이 5% 정도로 올라가면 매년 3조원이 넘는 소비 지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가 죽을 때 자녀에게 상속하면 그 기간 소비가 단절되는데 반해, 주택연금은 당대의 지출을 늘려 소비 단절을 완화한다.

우리나라는 연금 제도가 늦게 정비되다 보니 노후 소득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노후에 먹을 반찬이 별로 없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평균 수명이 올라가면서 먹어야 할 끼니는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있는 굴비 반찬이 바로 주택이다. 자린고비처럼 주택을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주택연금으로 소득 마련 수단으로 쓰는 게 좋다. 이는 사회적으로는 잠겨 있는 고령자의 자산을 활용하는 방안도 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