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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워싱턴 선언의 숨은 대가, 내년 창설 전략사령부에 대한 견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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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지난 4월 26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 합의한 뒤 미국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속속 실행에 옮기고 있다.

지난달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인 미시건함(SSGN 727)이 부산항에 입항했고, 미 공군의 전략폭격기인 B-52H도 날아와 한국과 연합 공중훈련을 벌였다. 워싱턴 선언에서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한다’는 약속을 미국이 지키고 있다. 또 한·미는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핵·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18일에 연다. NCG 역시 워싱턴 선언의 결과물이다.

한국에 핵우산 씌운 워싱턴 선언
미국 속속 안보공약 실행에 옮겨
대가로 독자 핵무장 포기한 한국
전략사 자율성마저 내줘선 안 돼

그러나 워싱턴 선언은 공짜가 아니다. 미국이 선의로 한국에 핵우산을 씌워주진 않는다. 한국은 워싱턴 선언의 대가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 원자력 협정의 준수를 재확인해야만 했다. 이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옵션을 일단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미국의 숨은 계산서가 더 있다. 바로 전략사령부(전략사)다. 워싱턴 선언 중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연합방위태세에 한국의 모든 역량을 기여할 것임을 확인했다’며 ‘이는 한국의 새로운 전략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간의 역량 및 기획 활동을 긴밀히 연결하기 위해 견고히 협력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대목이 문제다. ‘긴밀한 연결’과 ‘견고한 협력’엔 전략사를 통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앞 문장에서의 ‘연합방위태세’는 결국 전략사를 연합사의 아래에 놓자는 뜻이며, ‘윤 대통령’까지 언급하면서 이를 못 박으려 하는 속뜻으로 보인다.

북한 핵·미사일 맞서는 전략사령부

전략사령부가 창설 후 지휘할 육군의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 [사진 국방부]

전략사령부가 창설 후 지휘할 육군의 고위력 현무 탄도미사일. [사진 국방부]

윤 대통령이 지난해 7월 6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받은 보고에 따르면 전략사는 한국형 3축 체계에 대한 효과적인 지휘통제와 체계적인 전력 발전을 주도할 목적으로 내년 창설될 계획이다.

전술(tactics)이 전투에 이기려는 계획이라면, 전략(strategy)은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용병술이다. 그래서 전략적 군사 작전은 정치·경제·군사적 핵심 목표를 타격해 적의 전쟁 수행 의지·능력을 꺾는다. 3축 체계는 ①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 할 때 선제적으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 ②북한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 ③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하면 한국이 보복하는 대량응징보복(KMPR)으로 짜였다.

이에 따라 전략사는 정찰위성, 방공미사일, 현무 계열의 탄도·순항미사일, F-35A 스텔스 전투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3000t급 잠수함 등을 지휘하게 된다.

해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진 국방부]

해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진 국방부]

전략사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부대다. 국방부와 군 당국은 전략사의 밑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중이다. 그런데도 전략사가 워싱턴 선언에 뜬금없이 등장한 배경은 뭘까.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이 한국의 킬체인이 ‘선제타격’의 수단으로 활용할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에서 무력공격의 위협이 존재하거나 무력공격이 임박하다면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예방적 자위권을 허용한다. 단 생존을 위협하는 대규모 무력공격에 대한 확고하고 일관된 증거가 있어야 하며, 선제타격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조건에서다.

‘설익은 선제타격’ 우려하는 미국

공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 이들 전력은 유사시 북한이 지휘부나 핵심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핵·대량살상무기(WMD)의 사용을 꺼리게 되는 억제력을 지닌다. 이 같은 전략사를 한국이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사진 공군]

공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 이들 전력은 유사시 북한이 지휘부나 핵심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핵·대량살상무기(WMD)의 사용을 꺼리게 되는 억제력을 지닌다. 이 같은 전략사를 한국이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사진 공군]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설익은 판단에 따라 자칫 선제타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제어하려고 한다. 한국은 북한 전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한국의 오판으로 원치 않는 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미국이다. 더군다나 북한은 미국의 주요 도시를 핵공격할 능력을 갖췄고, 이를 더 키우려 하고 있다.

사실 전략사가 당초 킬체인과 KAMD까지 맡는 게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선 전략사는 ‘미사일 전력, 사이버·전자전 및 우주작전 역량을 효과적으로 통합·운용’하는 부대로 돼 있다. KMPR에다 우주·사이버·전자기스펙트럼과 같은 새로운 영역에서의 군사 작전을 담당하는 부대로 정의됐다.

KMPR은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를 억제하는 전략적 수단이다. 고위력·초정밀 타격 무기로 전쟁 지도부와 핵심 시설을 제거할 수 있으면 북한은 핵·WMD 사용을 주저하게 된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과 김씨 일가의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유사시 이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꿈도 꾸지 못한다.

반면 킬체인·KAMD는 전쟁이 임박하거나(킬체인) 개전 후(KAMD) 상황에서의  작전적 대응이다. 목적이 다른 3축을 하나로 묶는다면 득보다 실이 많아진다.

전략사는 더 나아가 주변국과 관계가 나빠질 경우 든든한 ‘보험’이다. 핵을 보유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목표를 타격할 수 있다면 한국은 주변국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억제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축 체계 하나로 묶어야만 할까

만일 전략사가 연합사의 지휘를 받는다면 전략적이지도 않은 부대가 되며, 주변국 대응도 어렵게 된다. 이처럼 전략사가 창설 이전부터 스텝이 꼬이게 된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는 미국의 속내를 간파해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었어야 했다. 그리고 전략사가 3축 체계를 총괄한다면 미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전략사에 KMPR 임무만을 주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70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가져왔다. 그러나 동맹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게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전략사가 그중 하나다. 전략사가 앞으로 연합사와 온전히 협조하는 관계를 굳히길 바란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