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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성수의 우리 과학 이야기

2023년에 소환된 ‘1974 포니’…도전적 목표와 최적의 해법 일깨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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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옛날 자동차 ‘포니’가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19~21일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열린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2023’에서 현대자동차는 수소 하이브리드 검증모델인 ‘N비전 74’를 전시하면서 포니를 소환했다.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한 ‘포니쿠페’라는 콘셉트카에서 영감을 받아 N비전 74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9일부터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는 ‘포니의 시간’이라는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사전행사에서 정의선 회장은 포니가 “현대차의 정신적·경험적 자산”이라고 평가하면서 “과거의 여정에서 존재의 답을 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정부의 계획, 기업의 의지 합작
“못 만든다” 외국 조롱도 견뎌
“현대차 정신적·경험적 자산”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포니

지난달 8일 서울 강남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 이 우리나라 첫 독자 개발 모델인 포니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8일 서울 강남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 이 우리나라 첫 독자 개발 모델인 포니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포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로, 2013년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1975년에 포니가 생산되면서 고유모델의 단계에, 1991년에 알파엔진이 개발되면서 독자모델의 단계에 진입했다.

고유모델은 외국에서 생산·시판된 일이 없는 차종을 의미하며, 독자모델은 차량의 설계와 핵심 부품의 개발을 자체적으로 수행한 경우에 해당한다. 포니가 개발된 계기는 한국 정부가 1974년 1월 확정한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계획은 1980년에 완전 국산화한 5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자동차 수출 1억5000만 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세워졌다. 외국에서 생산·시판된 적이 없는 엔진배기량 1500cc 이하 소형승용차를 1975년에 생산 개시하고, 이후 연 5만대 이상 양산화한다는 게 골자다. 또 95% 이상의 국산화율 달성이라는 지침을 충족시키는 소형차를 1976년 이후 국민차로 지정해 금융과 세제·행정 등 제반 지원도 우선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앞선 1970년 9월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김재관(1933~2017) 박사를 연구책임자로 해 ‘중공업 발전의 기반’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자동차공업 편에서 ‘국산화계획이나 부품공업의 육성에 있어서나 그 기본이 되는 것은 자동차의 양산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실정에 맞게 설계된 국민표준차의 생산을 계획하고 단일차종의 생산을 영속해야 하며, 한국의 고유 대표 차종 개발과 이의 중점적 육성을 정부가 공익사업으로서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장기 자동차공업 진흥계획에 반영되었던 셈이다.

산업계의 화답이 이어졌다. 기아산업·현대자동차·GM코리아(신진자동차의 후신)가 정부의 방침에 대응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기아가 파밀리아 차종을, GM코리아가 카데트를 동양식으로 개작한 모델을 도입해 국내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반면 현대는 고유모델인 포니의 개발과 수출을 추진했다. 당시에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정세영은 “고유모델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주요 부품은 물론 차체까지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회사라면, 그건 간판만 자동차 회사지 진정한 자동차 메이커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GM의 수석 부사장 벤지는 “현대가 고유모델을 만들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어깨너머로 설계기술 익힌 기술진

현대는 설계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디자인 전문업체인 이탈디자인에  ‘5인의 특공대’로 불린 기술진을 파견했다. 현대의 특공대는 1년여 동안 어깨너머로 설계기술을 익혔다. 낮에는 현지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가 밤에는 이를 기록하고 토론하는 일이 반복됐다. 기술연수의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역할은 훗날 현대차 사장에까지 오른 당시 이충구 대리가 주로 맡았는데, 그가 작성한 문건은 훗날 ‘이대리 노트’로 불리면서 현대가 고유모델을 개발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됐다.

포니의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의 대부분은 외국에 의존했다. 현대는 스타일링과 차체 설계를 위해 이탈디자인에 기술용역을 의뢰했다. 엔진·변속기·후차축·섀시레이아웃·금형기술 등은 미쓰비시자동차에서 도입했다. 또한 턴블을 비롯한 영국인 전문가 7명과 3년 동안의 고용계약을 체결해 섀시·차체·시험·금형·프레스·엔진 등 부문별로 기술적 자문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현대는 다국적 기술을 도입해 ‘짜깁기 기술조합’을 통해 포니를 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여러 요소기술을 결합해 하나의 새로운 차종으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작업은 자체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성능이 확인된 완성차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엔진의 차체탑재, 차체와 섀시의 조화 등 제반 측면에서 해당 기술을 적용하고 연계하기 위한 활동이 뒤따랐다.

현대자동차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76년 2월부터 포니를 시판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업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포니의 개발을 주도했던 정주화 연구소장은 훗날 “처음에 멋도 모르고 고유모델 자동차 개발을 한다고 뛰어들었지만, 두 번 다시 하라면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던가. 과거에서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과거를 제대로 익히려면 결과뿐만 아니라 그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맥락을 소환하면 다양한 행위자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포착할 수 있다. 포니는 고유모델이라는 도전적 목표를 세우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