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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차별에 분노 폭발…마크롱, 증오 고리 끊을까 촉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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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14면

폭력 사태, 혼돈의 프랑스

지난달 30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주간 파리 교외를 중심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계속된 소요 사태는 그동안 프랑스 사회에 잠재돼 있던 다양한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7위인 프랑스가 경찰을 4만 명이나 동원하고도 방화·약탈에 시장 공관 습격까지 대대적인 폭력 사태를 겪은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사건은 지난달 24일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승용차를 몰던 17세 아랍계 소년 나엘메르주크가 검문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 시작됐다. 동승한 다른 두 명은 달아났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등에 따르면 이후 급속히 확산된 폭력 사태로 경찰 808명이 부상했고 33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또 자동차 5662대가 불타고 1000개 이상의 건물이 손상되는 등 11억 유로(약 1조5600억원)가 넘는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거리의 쓰레기통도 1만 개 이상 파손되거나 사라졌다. 휴가철을 맞아 파리 등 주요 관광지를 찾으려던 해외 여행객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관광업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프랑스에서 소요 사태는 낯설지 않다. 2005년과 2009년, 2017년에도 대규모 소요가 발생했다. 주목할 점은 폭동이 한결같이 ‘방류(Banlieu)’라고 불리는 파리 교외 변두리 지역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지역 주민 상당수가 저소득층에 이주민 출신이란 점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이곳엔 알제리·튀니지·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와 레바논·시리아 등 동부 출신 아랍인, 그리고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몰려 살고 있다. 피해자 나엘도 파리 서북부 낭테르에서 피자 배달 등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 가난한 이민자들이 몰린 데는 1970년대 진행된 도시 재생 및 주택 정책과 관련이 깊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랍인 중에는 식민지 시대 이주자들은 물론 ‘영광의 30년(LesTrenteGlorieuses)’으로 불리는 1945~75년 고도 성장기에 입국한 노동 이민자와 그 후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시기 프랑스는 전후 재건과 경제 호황 등으로 일손이 부족하자 이민자들을 적극 받아들였고, 그 결과 1946년 5만여 명이던 이주민은 75년엔 386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또한 1830년 이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가 1954~62년 무장투쟁 끝에 독립하면서 ‘피에 누아르(PiedsNoires·검은 발)’로 불리는 북아프리카 거주 유럽계와 아랍인·아프리카인 등 신규 이민자들도 대거 프랑스로 몰려왔다. 이에 행정 당국도 이들에게 저렴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파리 교외 지역을 중심으로 저소득층 대상 주택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 이주민이 프랑스 정부의 필요에 의해 정착하게 됐음에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카이로 국제 문제 리뷰’는 프랑스가 이민자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내부의 적’으로 모는 경우도 적잖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경찰이 북아프리카계가 밀집한 파리 교외 지역을 중점적으로 순찰하는 게 차별적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마크롱

마크롱

실제로 프랑스에 정착한 아랍인들은 그동안 프랑스 군사·경제·문화 각 분야에서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알제리인으로 구성된 튀르크스 부대는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나가 용감하게 싸웠고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아랍인들이 대거 참전했다. 또 아랍계 이민자들은 파리는 물론 조선·해운이 발달한 마르세유, 섬유산업 지역인 론 계곡. 미쉐린 타이어 본사가 있는 클레르몽페랑, 광산·금속산업이 발달한 알자스 등 전국 곳곳의 산업지대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며 프랑스 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민자들은 프랑스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유명인도 많이 배출했다. 축구 국가대표를 지낸 지네딘 지단과 카림 벤제마도 아랍계다. 카타르 월드컵 때 프랑스 대표팀 에이스였던 킬리안 음바페도 어머니가 알제리 아랍계고 아버지는 카메룬 출신이다.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자벨 아자니는 알제리계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프랑스 내부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 시각과 언어·행동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대거 몰려 있는 프랑스 대도시 교외 지역이 ‘거대한 아파르트헤이트(분리와 차별)’의 현장이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결과 차별에 갈수록 예민해진 아랍계는 그들만의 민족주의 운동을 조직화하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에서 희망이 없는 이 지역 청년들이 정부와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게 된 게 이번 폭동의 숨겨진 원인이란 분석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시위에 대해 무슬림 이주민들이 프랑스 정부에 대항해 벌인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등의 대규모 아랍인 봉기)’라고 표현했다. 부자 나라인 프랑스에서 경제적 혜택을 받긴커녕 빈곤의 덫과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사는 아랍계 주민들이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프랑스 사회가 좌우로 더욱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좌파가 2017년 느슨해진 경찰 총기 사용 규정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며 나엘 가족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자 이에 맞서 우파도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경찰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다. 지난 3월 연금 개혁 반대 시위로 홍역을 치렀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사태가 심각해지자 프랑스 대통령으로는 23년 만의 독일 국빈 방문을 황급히 취소해야 했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마크롱 대통령이 최대 도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는 1995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La Haine)’를 떠올리게 한다. 파리 교외 빈곤 청년들의 고뇌와 분노를 담은 이 영화는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La haine attire la haine)”는 명대사를 남겼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 같은 증오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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