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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지워버린 영웅, 음악 속 불멸의 존재로 재탄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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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20면

민은기의 클래식 비망록

예전에는 슈퍼맨이 히어로의 대명사였다면 요즘 SF 판타지의 대세는 메타버스의 슈퍼히어로들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전설 속 영웅으로 이어진다. 영웅들은 하나같이 초인적인 힘을 갖고 태어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와 아킬레우스 모두 불사의 능력자다. 전설 속 영웅들은 정의감과 용기가 넘쳐나며 대의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화에서 소설로, 영화에서 게임으로 시대에 따라 매체는 달라져도 영웅 이야기는 늘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사람들은 영웅의 탄생을 희구하기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현실은 늘 힘들었으니까.

간혹 실제 인물이 영웅으로 추앙 받게 되는 일도 있다. 나폴레옹이 대표적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유럽 전체가 엄청난 변화와 대혼란을 겪던 시기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안으로는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갈등, 밖으로는 주변국들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프랑스 국민들은 자신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줄 영웅을 손꼽아 기다렸다. 때맞춰 등장한 젊고 용감한 군인 나폴레옹은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았다. 지중해 코르시카 섬 출신으로 파리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나폴레옹은 1793년 왕당파의 반란을 토벌하며 첫 무훈을 세웠고 그 이후 싸우는 전투마다 승리하면서 불패를 자랑하는 상승장군이자 전쟁영웅으로 떠오른다.

전 유럽이 추앙한 전쟁영웅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사진 사회평론]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사진 사회평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은 것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였다. 이집트 원정을 떠났던 그는 말머리를 돌려 파리로 입성해 오백인회를 해산하고 총재정부를 무너뜨렸다. 그 후 3명의 통령을 두는 새 헌법을 만들어 국민 투표에 부쳤고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자신이 1통령이 되었다. 이후 2년 후에 종신 통령에 오르더니 다시 2년 뒤에는 국민 투표를 거쳐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갔다. 집권 후 연이은 전투의 승리로 840년간 지속된 신성로마제국을 몰락시켰으며, 스페인·스위스·독일·이탈리아의 여러 지방을 속국으로 만들며 프랑스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덕분이다. 그는 프랑스뿐 아니라 점령국에도 효율적인 정부를 꾸렸고, 법제와 조세를 합리적으로 개혁함으로써 점령지 주민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았다.

나폴레옹은 군인 시절부터 인간적인 솔직함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병들로부터 전폭적 신뢰를 받은 바 있다. 여기에 더해 국가 지도자로서의 원대한 비전과 기민한 판단력, 강한 추진력을 갖춘 덕에 전 국민의 칭송을 받았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지만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영웅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언론은 물론 문학·미술·연극·음악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체제 비판적인 서적은 판금 조치되었고 극장에서도 창의적 현대물의 상연은 금지되었다. 대신 나폴레옹과 동일시될 수 있는 영웅이 등장하는 신화나 역사를 소재로 한 고전들만 무대에 올려 졌고 파리에는 개선문과 방돔 광장의 전승기념탑 등 나폴레옹의 치적을 기리는 거대한 건축물이 잇달아 세워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폴레옹 찬양에 나선 것은 화가들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그림에서 걸어서도 넘기 힘든 험난한 협곡을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튀어 오를 듯이 비상하는 모습으로 나폴레옹을 그렸다. 그리고 말발굽 아래 있는 바위에는 나폴레옹에 앞서 알프스를 넘었던 전설적인 영웅인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과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마뉴 대제의 이름 옆에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다른 화가들은 나폴레옹을 월계관을 쓰고 로마 황제의 복장을 한 모습으로 그리거나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의 형상을 한 나신으로 그리곤 했다.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이나 그의 결혼식, 아들의 탄생 기념행사를 그린 화가들 역시 그에 대한 대중의 숭배를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강압적인 통제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자발적으로 나폴레옹을 영웅화 하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이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해 파리 오페라와 연극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예술가들의 호감을 샀다. 독일 최고 문호인 괴테조차 그를 접견한 후 그의 해박한 지식과 교양에 감탄하여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서 많은 음악가들이 그를 칭송했으며 수없이 많은 작품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당대 최고 음악가였던 베토벤 역시 나폴레옹의 열성적인 추종자였다. 나폴레옹이 타고난 특권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유럽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은 후에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변혁을 추구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던 당시 베토벤이 가장 닮고 싶었던 이상형이자 롤 모델이었다.

10년 이상 음악으로 영웅적 서사 표현

베토벤 초상. [사진 사회평론]

베토벤 초상. [사진 사회평론]

베토벤은 1798년에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악화되었고, 결국 그는 자신이 완전히 청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막 빈 음악계에서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진 때라 그는 이 치명적인 불행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혼자서 고독과 불안을 견뎌야 했던 베토벤은 고통이 너무 심해 한때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1802년에 쓴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유서에서 베토벤은 자신이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오직 “예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비참한 생명을 부지하기로 했다는 비장한 각오를 보이며, 앞으로는 새로운 길로 정진하겠다고 선언한다. 그에게 이 새로운 길은 다름 아닌 음악을 통한 영웅의 창조였다. 바야흐로 베토벤 음악의 ‘영웅적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의 특징이 온전히 드러나는 첫 작품은 1803년부터 1804년 사이에 작곡된 교향곡 3번, 일명 ‘영웅 교향곡’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곡은 한 영웅을 찬양하기 위해 작곡되었으며 영웅적 위대함을 음악으로 놀랍도록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염두에 둔 영웅은 말할 것도 없이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이 곡의 제목을 “보나파르트라는 영웅의 교향곡”이라 적어 두었으며, 표지에 직접 연필로 “보나파르트를 위해 작곡했다”는 말도 적었다. ‘영웅 교향곡’은 하이든과 모차르트 같은 선배 작곡가는 물론 그때까지 자신이 발표했던 교향곡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주인공의 성격을 알리는 첫 3화음은 팡파르같이 당당하게 등장하지만 다시 반음계로 마무리 되면서 영웅의 내면적 고통을 암시하기도 한다. 모티프는 수많은 변형을 겪으면서 위로 빠르게 상승해 나가고 또 아래로 급히 내려오는 등 심각한 도전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승리로 결말을 맺는다.

영웅 교향곡’의 베토벤 자필 표지. ‘보나파르트라는 영웅의 교향곡 Sinfonia grande intitolata Bonaparte’이라는 제목에서 “intitolata Bonaparte”라는 부분이 파기되었지만, 베토벤의 서명 아래에 연필로 써 넣은 ‘보나파르트를 생각하며 작곡되었음(Geschrieben auf Bonaparte)’이라는 문구는 남아 있다. [사진 사회평론]

영웅 교향곡’의 베토벤 자필 표지. ‘보나파르트라는 영웅의 교향곡 Sinfonia grande intitolata Bonaparte’이라는 제목에서 “intitolata Bonaparte”라는 부분이 파기되었지만, 베토벤의 서명 아래에 연필로 써 넣은 ‘보나파르트를 생각하며 작곡되었음(Geschrieben auf Bonaparte)’이라는 문구는 남아 있다. [사진 사회평론]

하지만 베토벤은 ‘영웅 교향곡’을 마무리하자마자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웅으로 존경해 마지않던 나폴레옹이 그저 욕심 많은 권력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했고, 분을 참지 못해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 써두었던 이 곡의 헌사를 찢어버리고 제목에 있던 “보나파르트”라는 이름도 지워버렸다. 그토록 흠모했던 현실 영웅의 배신은 그러나 영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앗아가지는 못했다. 그의 영웅적 음악 스타일은 그 이후 10년 이상 계속되었고, 그는 꾸준히 열정과 영웅적 제스처, 강렬한 질주, 숨 막히는 상승과 승리의 행진으로 이어지는 영웅적 서사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오래 꿈꾸어 왔던 영웅은 그렇게 음악 속에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 ‘운명 교향곡’, ‘열정 소나타’, ‘발트슈타인’, ‘황제 협주곡’, ‘에그몬트 서곡’과 같은 베토벤의 걸작들이 모두 이 ‘영웅적 시기’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나폴레옹의 배신이 오히려 음악 속 불멸의 영웅을 만들어 냈으니 세상일은 늘 오묘하다. 살다보면 자신의 영웅에게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끼는 일이 적지 않다. 열렬히 지지하던 정치 지도자의 탐욕을 보거나 존경하는 윗사람의 자기 모순적 행동을 보았을 때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포기할 일만은 아니다. 영웅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영웅을 승화시키고 새롭게 재탄생시킨 베토벤이 있으니까.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 좌절을 이겨낸 장엄한 쾌거이니 베토벤 역시 영웅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힘든 세상에 영웅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민은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95년부터 서울대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음악과 페미니즘’ ‘독재자와 음악’ ‘대중음악의 역사’ 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했으며 최근에는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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