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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석무의 실학산책

아버지 그리울 때 보던 형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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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유학(儒學)은 공자가 창시한 학문이다. 때문에 ‘공자지도(孔子之道)’, 공자의 도(道)가 바로 유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공자지도 효제이이(孔子之道孝弟而已)’, 공자의 학문인 도는 바로 효와 제(孝弟)일 뿐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자의 도를 실현하는 일이어서, 효제를 강조하려고 그런 표현을 썼다고 보인다.

율곡 이이 또한 그의 『격몽요결』이라는 책에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효제를 비롯한 오륜(五倫)을 실천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심오한 이론이나 사상이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윤리인 효제를 비롯한 덕목을 실천하는 일이 바로 학문이라고까지 단언했다.

유학의 요체는 효도와 형제애
형을 아버지처럼 여긴 박지원
가족을 원수같이 대하는 세태
화목한 세상은 이제 볼 수 없나

경남 함양군 물레방아공원에 있는 연암 박지원 동상. 중국에서 물레방아를 본 연암이 함양 안의현감 시절 조선에 물레방아를 처음 들여왔다고 한다. [함양군 동영상 캡처]

경남 함양군 물레방아공원에 있는 연암 박지원 동상. 중국에서 물레방아를 본 연암이 함양 안의현감 시절 조선에 물레방아를 처음 들여왔다고 한다. [함양군 동영상 캡처]

그렇게 중요한 인간의 행위가 바로 ‘효’와 ‘제’임을 그런 데서 알게 된다. 다산이 유배 생활 18년에 수많은 편지로 아들들을 가르쳤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언제나 두 가지였다. 첫째는 효제요 둘째는 독서였다. 효제를 제대로 실천하고 책을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인간의 기본 의무는 실행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독서의 중요함이야 더 설명할 이유가 없지만, 효제를 그렇게 강조했음은 오늘의 우리로서는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산의 저서 500권을 통해서 보더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효제가 어떤 것인가를 다산처럼 강조한 사람은 없었다.

다산의 효제를 생각하다 보니, 실학파 연암 박지원 또한 아버지와 형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갔다는 점을 알게 되면, 연암 또한 다산 못지않게 효와 제를 가슴 속에 품고 또 실천에 옮겼음을 알게 된다.

‘우리 형님 외모 누구와 딱 닮았지/ 가신 아버지 그리울 때마다 형님 보았지/ 이제 형님 그리운데 어디서 보지/ 의관을 갖춰서 시냇물에 비추어 보네.’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이라는 박지원의 시다. 홍국영의 미움으로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에서 숨어 살 때 쓴 시로 여겨지는데, 형님은 아버지를 닮았기에, 아버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그리우면 형님의 외모로 아버지를 뵈온 것 같았는데, 이제 형님 또한 떠나버려 아버지도 형님도 뵈올 수 없는 사모의 정을 토로한 시다. 그래서 나는 형님을 많이 닮았으므로 의관을 차려입고 개울의 물 위에 내 외모를 비춰보면 아버지도 형님도 뵐 수 있다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읊었다. 거울이 보편화하지 않던 시절, 고요한 물 위에서 영상으로 얼굴을 보던 그 시절의 간절한 아버지와 형님을 사모한 마음이니, 그런 것이 바로 효제의 실천이 아닌가. 글자 20자로 효제의 간절한 정을 그렇게 멋지게 읊었던 연암의 솜씨, 탁월하지 않은가.

옛날부터 생각한다는 ‘사(思)’라는 글자는 효자가 부모님 생각, 형제간 생각으로 많이 통용되었다. ‘고(顧)’ 또한 돌아본다는 뜻이어서 부모 형제를 돌아보며 생각하고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연암의 ‘사형(思兄)’은 바로 연암이 형제 사이의 우애를 깊이 느꼈음을 금방 알게 해주는 글자이다. 사모하는 마음, 그리운 마음, 추억하는 마음, 부모 형제에 대한 효제의 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무치는 정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요즘 부모 형제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이 얼마나 많은가. “효제란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라 했거늘, 유학의 최종 목표는 인(仁)을 행함인데, 효제가 바로 그 근본이니, 효제가 사라져 인을 찾을 수 없는 오늘, 어떻게 해야 연암이나 다산의 효제의 아름다운 인간 윤리를 회복하여 인간답고 사람다운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올 것인가.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야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다산은 천주교에서 마음을 끊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지금과 다산의 시대, 연암의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제사를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한다고 행해질 일도 아니다. 세상의 가치관도 변했고 효도하고 우애하는 가족이나 집안의 환경도 매우 크게 변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고 형제도 함께 살아가기는 어렵게 된 세상이다. 그래서 예전과 같이 효제를 강조하는 것도 실효성이 없고 또 조건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연암이 자신의 얼굴을 물 위에 비춰 아버지와 형님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달래려 했던 그런 마음만은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형제간이 원수가 되고, 부자 모자 사이가 남보다 더 험한 경우가 많은 요즘의 세상, 갈등과 모순으로 뒤얽힌 세상, 어떻게 해야 화목한 세상을 복원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다. 다산이나 연암의 효제정신을 바로 회복하는 길뿐이다.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해 이익 추구의 싸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