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민의 기업] [기고] 국민 안전 위해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하지 말고 강화하고 존치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3면

민진용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 회장

민진용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경기도회 회장

지난 4월 5일 경기도 성남 정자교 붕괴로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국과수에서 감식 결과를 발표했는데 관리청의 적절한 유지 보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시설물유지·보수·보강 공사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1995년 ‘시설물의안전및유지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됐다. 충북 청주시 우암상가 아파트(1993), 성수대교(1994), 삼풍백화점(1995) 등 대형 참사 직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특별법이 생겼는데 이때 생긴 업종이 바로 시설물유지관리업이다. 시설물을 일상적으로 점검·정비하고 개량·보수·보강하는 일을 한다. 7200여 개 업체와 6만여 명의 기술자들이 이 업종을 터전 삼아 생계를 이어왔다.

2021년 1월 문재인 정부에서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방안’으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시설물유지관리업을 2023년까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2024년부터 폐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문제는 국토교통부가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종사자들에게 의견 한번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도 말이다. 혁신이라는 말로 포장해 대안조차 없이 무조건 폐지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종 폐지는 곧 기술 퇴보를 의미한다. 30년 가까이 업체들이 쌓아온 경험과 기술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설물 안전이 위태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토부의 막무가내식 행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토부는 몇 해 전 시공능력평가 업무 위탁기관에 지침을 내렸다. 높은 시공능력 평가를 받기 위해 건설사업자 실적을 허위로 신고할 경우 형사 고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뜬금없이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면 2023년까지 공사실적을 10~50% 가산해 주겠다고 고시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업종을 전환해도 시설물유지관리업은 2023년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없는 실적을 허위로 가산해 인정해 주고, 기술자가 없어도 2026년까지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유예해 준다고 하니 어처구니없다.

시설물유지관리업 종사자들은 국토부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권익위는 업종 폐지와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폐지 시점을 2029년까지 유예하라고 권고했다. 세부 시행방안을 충분히 논의하고 시설물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라고 했다. 국토부가 재심의 신청을 했지만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또한 지난해 국회는 국토부에 국정감사 당시 ‘광주 붕괴사고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시설물 유지관리와 안전을 강화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시설물유지업 폐지만을 고집하고 있다.

권익위의 권고와 국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설물유지관리업을 폐지하려는 국토부의 정책은 국민과 시설물업종 종사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시설물의 안정적인 유지관리와 국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시설물유지관리업은 폐지가 아니라 더욱 강화해 반드시 존치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공정과 상식이 회복되는 사회를 강조했다. 과연 어떠한 명분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시설물유지관리업만을 무조건 폐지하는 것이 정말 공정하고 상식에 맞는 정책이라고 국민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시설물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시설물의 안전 점검과 유지관리를 위한 보수·보강공사는 더욱 필요해졌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권익위의 권고사항을 수용해야 한다. 향후 협회와 제도 보완 등 발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더는 망설일 이유도 명분도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