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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전우원이 폭로 결심한 2022년 그날 [월간중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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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 손자 전우원

“지금 할아버지 금고엔 아무 것도 없어....자손들에 넘어간 비자금 추적해야”
“가족들에 대한 처벌 원치 않아…다만 위법과 불의를 멈추시라 말하고 싶어”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5월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산로에 있는 중앙일보 빌딩 12층을 찾아 월간중앙과 인터뷰했다.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5월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산로에 있는 중앙일보 빌딩 12층을 찾아 월간중앙과 인터뷰했다.

지난 3월 13일,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27)씨의 얼굴이 국내 신문과 방송을 가득 채웠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할아버지에 대한 비난 글을 올리고 전씨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전씨 일가를 둘러싼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 후손이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5·18 학살자’라고 비난하자 언론은 흥분했다. 피(핏줄)를 부정하는 서사는 매혹적이었다. 미국에 있던 특파원과 기자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줄줄이 뉴욕으로 향했고, 국내 기자들은 귀국을 준비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공항에서 24시간 대기했다.

3월 28일 마약 투약 혐의로 두 손목이 포승줄에 묶인 채 수많은 취재진 앞에 선 우원씨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어진 광주 5·18 묘지 참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다음날 신문과 포털 뉴스 지면을 장식했다. 그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5·18 희생자의 묘비를 닦아주는 모습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했다.

우원씨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인 2월 중순, 기자는 그의 행적에 대해 간접적으로 접한 적이 있었다. 국내에서 일하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출장 중인 한 타투이스트와의 전화통화에서였다. 그 타투이스트는 당시 한국인 남성에게 십자가 타투를 해줬는데, 그가 유독 인상에 남았다고 말했다. “그게 누군데?”라고 묻자, 타투이스트는 그가 실명을 밝히지 않아서 이름은 모르겠다고 했다. 대신 그는 자신을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라고 밝혔고, 자기 가문의 죄를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혜택을 받은 자신도 죄인이니 ‘언젠가 모두 폭로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방송을 통해 귀국하는 우원씨의 모습을 보고 왠지 기시감이 들어 해당 타투이스트에 확인한 결과 동일 인물이 맞았다. 그런 배경을 놓고 보면 그가 단순히 돌발적으로 이번 폭로를 결심한 것은 아닐 거라는 판단이 섰다.

우원씨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두고 그동안 마약 투약 전력이나 기독교 종교관을 근거로 진단을 내린 정신의학적인 분석도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지만, 기자는 그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는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개인사를 겪어왔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자의 연락에 그는 며칠간의 고민 끝에 인터뷰를 승낙했다.

“범죄자 신분인 저를 안아주신 광주시민께 감사”

전우원씨가 3월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 있는 고 문재학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우원씨가 3월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 있는 고 문재학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일가의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 귀국한 후부터 바쁜 나날이었을 것 같다.

“맞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귀국 직후 방송사와 매일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송 촬영을 했다. 광주에도 다녀왔고. 최근에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어떤 생각이 들던가?

“저는 범죄자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마약을 한 공인 대부분이 사회생활에 크게 지장을 받는데, 저는 오히려 그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많은 조명을 받았다. 제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신빙성이 없다며 ‘듣지 말아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제가 5·18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것만으로도 많은 분이 응원해주시고 광주 시민들이 넓은 마음으로 저를 안아주셨다. 그 모든 과정이 감사했다.”

5월 17일 광주에 또 한 번 방문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소중한 가족을 잃고 삶이 망가지고, 지옥 같은 삶을 사셨을 텐데… 정작 그들을 그렇게 만든 내 할아버지는 그에 대해 생전에 아무 말씀이 없었다. 후손들도 똑같은 입장이었다. 저로서는 그저 죄송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 분이라도 더 마음을 풀어드릴까 고민하고 있다.”

귀국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본인을 죄인이라고 칭했다. 이유가 뭔가?

“할아버지는 살인자이고, 비자금도 착복했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역행시켰다. 그런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저는 살아왔다. 일가의 재산으로 제 스펙을 만들었고 몇 억원을 벌었다. 그동안 혼자 행복하고 싶은 마음에 이 모든 걸 외면한 채 살아왔다.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저를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귀국했을 때 방송을 통해 봤는데, 무덤덤해 보이더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출두한 배우 유아인과도 비교됐다. 그 많은 취재진 앞에서 무슨 심정이었나?

“카메라가 많이 있다고 해서 심장이 크게 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한국에선 범죄자들이 포토라인에 서면 얼굴을 가리고 나온다. 그게 잘못됐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다만 제 행동이 그냥 쇼맨십으로 비치면 어떡하나, 이러다 갑자기 수갑이 채워져서 경찰서로 끌려가면 왜 귀국했는지 소명할 기회가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우원씨가 가족에 대해 폭로한 것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가족한테 버려진 것 때문에 네가 분해서 폭로한 거 아니냐’ 그런 말을 한다. 그런 마음도 있을 것이다. 저도 인간이어서 제 마음 속에 악(惡)의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우원씨의 사촌들,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대 자손들은 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할아버지의 업적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는 분위기였다. 특히 전수현(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딸)이나 전우석(전재국씨 아들)은 외부 노출을 피하고 있지만,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기에 우리 일가의 죄를 인정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설령 죄를 알더라도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일가를 도와준 지인들, 처가 쪽 집안 분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일반 시민이었다.”

“군 복무 중 부친 전재용의 노역으로 생계 걱정하기도”

전우원씨는 어린 시절 조부모(전두환·이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 사진:전우원 인스타그램 캡처

전우원씨는 어린 시절 조부모(전두환·이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 사진:전우원 인스타그램 캡처

본인은 왜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했나? 특별한 계기가 있나?

“살아오는 과정에서 저희 일가가 죄인이고, 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가 사춘기 때 전두환의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동급생 무리로부터 미움도 많이 받았고 왕따도 당했다. 제가 그냥 밥을 먹으러 가도 뉴스에서 할아버지가 나오면 항상 그게 문제가 됐다. 그래서 할아버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전두환씨의 손녀 전수현씨가 2004년 싸이월드에서 공개한 사생활은 일반인으로선 꿈도 못 꿀 만큼 화려했다. 본인도 그렇게 살았나?

“아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한(恨)이 있었다. ‘너는 분명 전가(全家)의 자손이니까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세간의 시각에서 항상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지는 몰라도 저는 가족 내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미국 뉴욕대에 입학한 2015년 군에 입대했다. 어디서 복무했나?

“한국 육군사관학교에 있었다. 저는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자원입대하면 선호하는 지역을 선택할 수 있었다. 논산훈련소에서 1순위로 서울을 선택했고 육군사관학교에 배치됐다. 보직은 정보작전병이었다. 정보과장을 수행하는 임무였는데, 간부가 발표할 PPT 자료를 만든다든가 CCTV 관련 출입 기록이나 각종 전자기기를 관리했다. 비서라고 보면 된다. 커피도 많이 탔다(웃음).”

종교관이 뚜렷하던데.

“훈련병 때는 초코파이 얻어먹으려고 불교 법당에 가고, 피자 먹으려고 천주교 성당에도 가고 그랬다(웃음).”

군 생활은 어땠나?

“군대 생활하면서 제가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간부들이 저를 문제 삼은 적은 없다. 다만 병사들은 조금 달랐다. 제가 (전두환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고참들로부터 쌍욕도 많이 들었다. 표정 관리하라고 혼나기도 했고, 밤 10시에 불려 나가서 몇 시간을 혼나기도 했다.”

그때가 부친(전재용씨)이 조세포탈 혐의가 확정돼 노역을 치르던 시기였다.

“언론에서 ‘황제 노역’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을 안다. 저는 그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 집안에 돈이 없다며 저더러 다니던 뉴욕대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라고 했다. 사정을 뻔히 아니 저도 알겠다고 하고 시간을 쪼개가며 국내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했다.”

어느 대학교를 지망했나?

“연세대학교에도 지원했고… 주로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였다. 학벌을 신경 쓴 건 아니다. 무조건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전부 1차까지는 붙었는데 2차에서 떨어졌다. 그때 내가 능력도 없고, 가족도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절망감을 느꼈다.”

부친이 노역을 치르기 직전에 부동산을 팔아 차명으로 재산을 은닉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이라면 집안에서 유학비를 지원해줬을 텐데?

“(아버지는) 박상아씨를 사랑하시니까. 그분 사이에 딸도 두 명이 있고. 거기에 많이 의존하셔서 아무래도…”

폭로하기로 결심한 때는 2022년 크리스마스 무렵

5공 초기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 일가의 청와대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효선, 재국, 재만, 재용씨.

5공 초기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 일가의 청와대 가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효선, 재국, 재만, 재용씨.

두 여동생과의 관계는 어떤가?

“원래는 같이 연락하고 제가 한국에 들르면 동생들에게 선물도 주고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교류가 없다. 동생들은 죄가 없다. 부친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또 이번에 제가 나와서 하는 걸 보면 앞으로 고생할 것이다.”

친형과는 연락하고 있나?

“3월에 제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부터 한 번도 연락을 안 했다. 어머니 말고는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된다.”

우원씨는 2017년 5월 제대 후 미국으로 출국해 2020년 1월 회계법인 EY-파르테논에 입사한다. 전 세계에서 빅4로 불리는 회계법인으로, 그는 M&A 합병과 관련된 전략 컨설턴트를 맡았다. 당시 그가 20대 중반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명문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거주하며 기업 고위직과 점심 약속을 잡는 게 주 업무인 월스트리트의 여피(yuppie)족을 연상시킨다.

2년 차에 시니어 어쏘(Senior Associate·과장급)까지 승진했다. 우원씨가 이런 커리어를 내던진 것이 놀랍다는 반응도 많다.

“투자 은행에서 인턴을 했는데 1년 차부터 애널리스트로 들어간다. 그쪽에선 한 2~3년을 해야 어쏘를 달 수 있다. 그런데 EY-파르테논에서는 들어가자마자 어쏘를 시켜줬다.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컨설턴트가 대하는 고객들이 대기업 사장들이라 급을 맞추기 위해 직함을 달아준 것이다. 일종의 업계 관례라고 이해하면 된다.”

하지만 우원씨는 그간의 뉴욕 생활에 대해 기자 앞에서 다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가기도 했고, 때로는 기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단답형으로 끝내기도 했다. 그가 입을 다물면 기자도 묻지 않았다. 침묵은 때때로 1분을 넘겼다. 공기는 무거웠다. 지면에 남길 수 있는 그의 고백 중 하나는 “제게도 전두환 일가와 똑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인터뷰는 그렇게 20여분간 공전한 뒤 재개됐다.

2022년 10월 중순 뉴욕에서 병원 신세를 졌다.

“약을 과다 복용해 실려 갔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부친과 본인이 밝힌 바 있다.

“일단 마약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정상은 아니었다. 지금은 괜찮다.”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할 마음이 그때부터 있었던 건가?

“생각해 보니 그게 맞다. 작년 10월에 입원하고 12월 23일에 퇴원했다. 정확히 기억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으니까. 그때부터 온누리교회를 다녔다. 주변 사람들한테 더 적극적으로 5·18 때 일어난 일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서 제가 그간 믿으려고 노력했던 진실이 많이 잘못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십자가 타투를 새겼다. 일가에 대한 폭로를 고민하던 때 타투를 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병원에서 퇴원한 뒤 교회를 더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제 몸에 십자가가 항상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듬해 몸에 타투를 하게 됐다.”

5·18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주로 소통했던 사람이 있는지?

“뉴욕에서 사모펀드 다니던 룸메이트다. 똑똑하고 역사도 많이 아는 친구이고, 제 주변과 달리 음주·가무를 즐기지도 않았다. 그 친구는 할아버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얘기했다. 그걸 들으니 제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자료들만 보고 살아왔구나… 그때부터 현실 부정을 못 하게 됐다.”

룸메이트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

“뉴욕대 동창이다. 원래는 형하고 형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대학 다닐 때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형과 거실과 방을 나눠 썼다. 형 친구들이 방을 쓰면 저희 형제가 거실에서 커튼 치고 지내는 식이었다. 그러다 제가 직장도 있고 돈도 버니까 제 개인 방을 가져보고 싶어서 작년부터 뉴저지로 떨어져 나왔다. 그래도 월세가 만만치 않아 룸메이트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그 동창이 들어오게 됐다.”

3월 13일과 17일 SNS와 유튜브로 일가에 대해 폭로한 뒤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자진 귀국했는데. 그때 심경이 궁금하다.

“세상에 얼굴을 공개하고 병원에 들어갔을 때 간호사들이 얘기하기를, 제 맥박이 안 뛰고 숨도 한 3~6시간 못 쉬었고, 의사들도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때 제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저의 죄에 대해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죄를 회개할 수가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결국 저 스스로 벌인 범죄와 그간 방관해오던 일가의 죄를 포함해서 세상에 다 공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 명의 도용한 문제 해결하려 했지만 쉽지 않아”

전우원씨의 부친 전재용씨가 2018년 1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탈세 재판 위증교사’ 관련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우원씨의 부친 전재용씨가 2018년 1월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탈세 재판 위증교사’ 관련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때 폭로 내용을 살펴보면 연희동 저택의 비밀 금고가 가장 화제였다.

“나는 잘 모른다. 어머니가 안다. 사실 금고는 중요하지 않다. 금고를 찾아서 뭐하겠는가? 어차피 안에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 밖에도 할머니가 무슨 말을 했다, 부친이 무슨 말을 했다, 언론에서 다루는 그런 내용은 큰 의미가 없다.”

비자금 추적이 시급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비자금으로 친인척의 이름을 써가면서 회사를 세우고, 또 그런 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늘리고 있는 범죄 행각을 파헤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원씨 명의가 도용돼 있다고 지목한 회사만 여덟 군데다.

“저는 제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회사가 있는 줄도 몰랐다. 회사는 여러 개인데 사업 분야는 다 똑같더라. 웨어밸리라는 회사는 제 명의 주식을 팔면 몇 억원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인터뷰 직전인 5월 17일 계모 박상아씨가 우원씨를 상대로 법원에 낸 웨어밸리 주식 가압류 규모는 4억8232만원이었다). 그 명의의 존재도 2019년 부친이 노역을 마치고 본인이 생활비가 필요하다며, ‘어차피 네가 갖고 있어도 의미 없으니까 서류에 사인하라’고 했을 때 알게 됐다. 이번에 법정에서는 그쪽 변호사가 제출한 위임서부터 제가 작성한 적도 없는 온갖 서류들이 나타났다. 제 서명이 아닌 것들도 있었고. 군 제대하고 미국에 거주할 때는 2년에 한 번씩만 한국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그 시기에 맞춰서 모두 작성된 것들이었다. 내가 서류 작성에 관여한 사실은 없다.”

다른 자손의 회사는 몰라도, 우원씨 본인이 관련된 회사에 대해서는 물증을 확보해 흐름을 추적한다면 수천억원으로 추정되는 전두환씨 비자금 의혹을 밝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일찍이 정신 차리고 정리해서 공개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가 살아온 현실을 더 이상 부정 못하게 되는 점에서 부담감을 느꼈다. 머리와 능력으로는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이 쉽게 따라주질 않는 것이다. 이제는 서둘러야 한다. 저는 회계도 공부했고 일가의 일원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반인들이 해석할 수 있도록 조사해야 한다.”

“숨겨놓은 자금으로 살아가는 생활… 이젠 멈춰야”

2021년 11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 빈소에서 차남 전재용씨의 부인 박상아씨가 입관식을 마친 뒤 빈소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1년 11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씨 빈소에서 차남 전재용씨의 부인 박상아씨가 입관식을 마친 뒤 빈소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어떻게 움직여주길 바라나?

“검찰 수사는 20년 전부터 계속돼왔다. 그런데 아직도 뚜렷하게 해결된 게 없다. 일가의 3대 자손만 11명이다. 그중에서 저는 버려진 사람인데, 저조차도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다른 자손들은 어떻겠는가? 이런 과거를 비춰보면 검찰이 수사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한다.”

전두환 일가가 최종적으로 어떤 처분을 받았으면 하는가?

“처벌을 원하는 건 아니다. 위법과 불의한 행동을 멈춰주길 바란다.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해 가족들이 구속되고 추징금을 선고받는 게 아니라, 최소한 자기 의지로 멈추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 저는 이제 세상에 노출돼서 제가 무슨 행동을 하건 사람들이 다 안다. 그래서 제가 죄를 더 짓기가 힘들 듯이, 일가에도 투명성이란 게 보장되면 자연스럽게 그들도 죄를 짓지 못할 것이다. … 가족들이 제게 상처를 줬지만 저는 그들이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벌이는 위법 행위가 일반적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분들의 희망과 생명을 빼앗아간다는 걸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한다. 항상 남의 뒤에 숨어서 차명으로 비밀리에 재산을 숨겨도 탈이 안 나니까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그만하시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상 고민한다. 제가 할아버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하지만 저는 제가 관련된 일가의 죄를 고백하고 처벌 받겠다.”

- 글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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