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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반복 속의 차이, 바간의 불탑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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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인가도 거의 없는 드넓은 밀림 속에 높고 낮은 불탑이 2000여 개나 솟아있다. 해 질 녘에 높은 곳에 올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탑들의 무수한 실루엣을 보면, 이것이 바로 부처의 세계인 불국토인가 하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미얀마 중부에 자리한 세계적인 유적지 바간의 풍경이다.

미얀마를 최초로 통일한 버마족 왕조는 1044년부터 250여년간 바간을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바간의 왕들은 1000개의 불탑과 1만개의 사원, 그리고 3000개의 수도원을 건설했다고 전한다. 이 당시 바간은 불교의 신앙적·학문적 중심지가 되어 인도·스리랑카·태국·크메르(현 캄보디아)에서 유학을 오는 국제도시였다. 1287년 몽골의 침략으로 왕국은 멸망해 도시는 쇠락했고, 불교 시설들은 잦은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럼에도 2200여 개 유적이 남아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모두 비슷한 뾰족탑들로 보이지만 불탑과 사원으로 구별된다. 불탑은 사리를 봉안한 성스러운 무덤이다. 가장 높은 쉐산도 파고다, 가장 오래된 부타야 파고다, 그리고 부처의 뼈와 치아를 봉안했다는 쉐지곤 파고다가 대표적이다. 사원은 승려들이 거주하는 수도원과 재가 신자들이 예배하는 불당이다. 지혜의 불상을 봉안한 아난다 사원, 최대 규모의 담마얀지 사원, 누워있는 열반상의 마누하 사원이 유명하다.

‘가장 ○○한’ 수식어가 붙은 사원과 불탑만 방문해도 이틀이 모자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유적 도시다. 탑과 사원의 형상은 시대에 따라 조금 다르고, 불교 종파에 따라 좀 더 다르고, 인도와 스리랑카나 티베트 등 지역적 영향에 따라 더욱 다르다. 그렇지만 모두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형상화했으니 대동소이(大同小異)라 할까, 그러면서도 모두가 개성이 있고 완벽한 작품들이니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할까. 다시 가기 어려운 바간의 영상을 보며 고통의 미얀마가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자유와 포용의 국토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