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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실행·혁신’ 포니 DNA, 신차 디자인에 영감 많이 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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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호 14면

현대차 ‘헤리티지 프로젝트’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리고 있는 ‘포니의 시간’ 전시회에 공개된 포니의 유산. 왼쪽 가장자리부터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 랩(Rolling Lab) ‘N 비전 74’,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 [사진 현대차]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리고 있는 ‘포니의 시간’ 전시회에 공개된 포니의 유산. 왼쪽 가장자리부터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 랩(Rolling Lab) ‘N 비전 74’,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 [사진 현대차]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감회가 새로운 표정이었다. 이날 정 회장은 “도로는 혈관, 자동차는 혈액에 비유하던 할아버지 말씀이 아직 기억이 난다”며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현대그룹 창업주) 얘기를 전했다. 이어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도 언급했다. 정 회장은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선대회장의 마음에서 (현대차그룹이) 출발했다”면서 “앞으로도 선대회장의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또 명예회장이 품질과 기본을 강조한 걸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를 통해 삶을 향한 진보가 지속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이 3대에 걸친 현대가(家)의 경영 철학을 전한 이유가 있다. 이날 현대차는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국내에서 처음 공개(해외에선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첫 공개)했다. 현대차는 양산형 포니 출시(1976년)를 앞둔 1974년 포니 쿠페 콘셉트를 만들어 처음 공개했지만, 당시 글로벌 석유 파동에 따른 경기 침체 여파로 출시되진 않았다. 이를 복원해서 49년 만에 선보인 것이다. 포니는 국산 자동차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로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포니 쿠페 콘셉트는 이런 포니의 시작점과 같은 모델로, 정주영 선대회장이 자동차 수출의 초석을 놓겠다며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리 노트’ 신차 개발에 활용돼

지성원

지성원

할아버지가 가난했던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 아버지가 미국에서 10년간 10만mi(마일) 무상보증 서비스를 도입(1998년)하는 등의 ‘품질 경영’으로 수출 전선을 개척했다면 정의선 회장은 ‘디자인 경영’으로 수출 보폭을 한층 넓히고 있다. 기아를 이끌던 2006년 독일 출신의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 세련된 디자인의 ‘K5’ ‘스포티지R’ 등을 선보이면서 회사 체질을 바꿨던 정 회장은 이후 현대차를 진두지휘하면서도 해외에서 호평 받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G80’ 등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142조5275억원)과 영업이익(9조8198억원)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런 정 회장에게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은 단순히 과거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포니 쿠페 콘셉트는 1980년대 공상과학(SF)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타임머신으로 나오는 ‘드로리안 DMC-12’ 자동차 디자인의 토대로 활용될 만큼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디자인 경영에 힘쓰는 정 회장이 그룹의 유산(遺産)을 돌아보는 ‘헤리티지(유산) 프로젝트’ 첫 타자로 포니 쿠페 콘셉트를 낙점한 것도 그래서라는 전언이다. 지성원 현대차 브랜드마케팅본부장(전무)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그간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았던 몇 가지 비화(祕話)를 소개했다.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임하는 정의선 회장의 의중이 궁금하다. 어떤 말이 오갔나.
“정 회장은 그룹이 모든 자료와 차량을 광범위하게 정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물론, 깊이 있는 조사를 통해 헤리티지 스토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외부적으로는 뉴 모빌리티 시대를 헤쳐 나갈 브랜드 강화, 내부적으로는 임직원의 도전 정신과 애사심 고양 효과를 각각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역사적 자산을 체계적으로 보관하는 한편 다양한 형태의 마케팅을 추진할 계획이다. 자동차 산업이 자율주행 등 기술의 고도화로 변곡점을 맞은 가운데 주변 환경에 휩쓸리면 기업의 기초가 흔들린다. 현대차만의 정체성을 더 견고하게 다듬기 위한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힘쓰려는 이유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현대차만의 정체성, 현대차만의 헤리티지는 뭔가.
“국가 발전의 산실로서 역사를 써왔다는 점이다. 정주영 선대회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에서 도로를 재건하고 자동차가 달릴 기반을 다졌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기술 독립으로 현대차의 글로벌 브랜드 입지를 확고히 구축했다. 정의선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대차의 고유한 DNA다.”
정 회장은 포니를 가리켜 ‘오늘의 현대차를 있게 한 모델’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현대차에 있어 시작을 의미하는 모델이다. 우선 선대회장이 믿었던 ‘사람이 지닌 무궁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입증한 사례다. 당시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던 거대 글로벌 기업에 대한 종속 관계를 거부하고 개발도상국의 신생 회사가 추구한 독자 노선의 결과란 점에서 의미가 깊다. 포니를 통해 내수 시장을 넘어 수출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포니를 시작으로 국내 기업의 고유 자동차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새로운 자동차 문화가 형성됐다.”

미 포드 종속관계 거부, 포니 만들어

복원된 양산형 포니. [사진 현대차]

복원된 양산형 포니. [사진 현대차]

지 본부장이 말한 거대 글로벌 기업은 미국의 포드다. 1967년 설립된 현대차는 초기 포드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사업을 확대해 나갔지만 포드에 기술적 기반이 종속됐던 탓에 독자적 사업을 전개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포드는 현대차를 자사의 아시아 생산 기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포니의 첫 출시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면.
“과거 포니의 수출길을 개척하던 현대차 직원들의 서류 가방 안엔 인삼이 가득했다. 한국산 자동차의 인지도가 낮았던 1970년대 후반 해외 바이어에게 ‘동양의 신비로운 묘약’을 선물해 현대차와 포니를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였다. 첫 수출 대상국인 에콰도르와의 거래가 자동차와 바나나를 맞바꾸는 식으로 진행됐던 점도 이채롭다. 당시 에콰도르는 무역 규제상 바나나를 수출했다는 면장이 있어야 자동차를 수입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에콰도르에서 부산까지 바나나를 싣고 온 배에 포니를 실어 수출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당시 한국에서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를 국민이 더 많이 접하게 됐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포니의 개발 과정은 어땠나.
“당시 독자 모델 개발과 양산 여력이 없었기에 해외 업체·인력과의 많은 협업이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 있었다. 예컨대 이탈디자인주지아로(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인 회사)와의 차체 설계 용역 계약 후 현대차 임직원을 현지 파견, 도면 그리는 법과 프로토타입(시제품) 제작의 기초 등을 배우게 했다. 당시 파견자 중 한 명이었던 이충구 전 사장(당시 대리)은 현지에서 보고 익힌 내용을 꼼꼼하게 수기로 남겼다. 이 보고서는 훗날 ‘이 대리 노트’로 불리며 현대차의 신차 개발 프로세스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됐다.”
포니의 유산이 현재 현대차에도 이어지고 있나.
“그렇다. 첫째, 정신적 유산이다. 포니를 만들어 수출하던 시절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은 인본주의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 이는 ‘인류를 위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라는 현대차의 브랜드 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경험적 유산이다. 반세기 전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불모지였고 현대차는 포드의 자동차를 조립 생산하는 회사였다. 당시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독자 모델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관련 기술을 단기간 효과적으로 내재화해 포니 개발에 성공했다. 이런 ‘집요한 실행’의 경험은 현대차가 오늘날 전기차 시장에서 선도적 행보를 이어가는 데 작용 중이다. 셋째, 물리적 유산이다. ‘대담한 혁신’으로 완성시킨 포니의 디자인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신차 디자인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헤리티지를 중시하지만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도 중시하는데.
“헤리티지 기록은 커뮤니케이션 소재라 할 수 있고 감각적 디자인은 표현 방식이다. 헤리티지 스토리를 현대차만의 감각과 감성으로 표현하면 양쪽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9일부터 진행 중인 ‘포니의 시간’ 전시회에서도 단순히 차량을 전시하는 것뿐 아니라 포니가 세상에 나올 당시의 시대 상황을 현재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한 전시물을 선보이고 있다. 기성세대뿐 아니라 MZ세대도 포니의 콘텐트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굿즈도 개발해 전시·판매 중이다. 이처럼 헤리티지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물과 굿즈가 젊은 세대에게도 다방면에서 창의적 영감을 제공하길 기대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수요 확대를 위한 기타 특별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나.
“사진 공모전, 서적, 음악 등으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포니의 시간 전시회를 기념해 ‘포니와 함께한 시간’ 사진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포니가 대국민 차명 공모를 통해 탄생한 추억을 돌아보고 고객들과 오랜 시간 함께한 의미를 되새기고자 했다. 아울러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포니의 개발 관련 사료를 담은 ‘리트레이스 컬렉션’, 포니를 통해 소유라는 주제를 다각도로 풀어낸 ‘리트레이스 매거진’ 두 가지 유형의 출판물을 선보였다. 또 밴드 잔나비를 헤리티지 프로젝트 홍보대사로 선정하고 포니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잔나비가 향수를 일으키는 가사와 특색 있는 보이스로 다양한 세대에게 사랑받는 만큼, 해당 음원이 과거를 추억하는 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감성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0월 8일까지 ‘포니의 시간’ 전시회…현대차 역사와 미래 한눈에

서울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전시회에 소개된 포니 왜건. [뉴시스]

서울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포니의 시간’ 전시회에 소개된 포니 왜건. [뉴시스]

현대차는 9일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포니의 시간’ 전시회를 열고 있다. 10월 8일까지 약 넉 달 동안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현대차는 포니를 처음 선보일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철학적 고민, 디자인 변천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관람객은 건물 5층부터 2층까지 차례로 내려가면서 포니의 시간을 체험할 수 있다. 전시 도입부인 5층에는 1970~80년대 수집품과 당시를 재해석한 영상·음악·회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4층엔 포니의 탄생부터 전 세계로 수출을 시작할 당시까지의 상황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료들이 마련됐다.

3층으로 이동하면 일반에 처음 공개된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이 기다리고 있다. 전시 결말부인 2층은 많은 국민이 추억하는 포니의 다양한 순간을 담은 이미지로 구성됐다.

정의선 회장은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대차의 시작을 돌아보고, 무엇이 오늘날의 현대차를 만들었는지 되짚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 관람을 희망하는 소비자는 현대모터스튜디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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