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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프리즘] 내신조차 사교육, 무너진 공교육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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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호 30면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아이의 수험생활을 함께한 엄마로서, 대학교에 몸담은 교육자로서, 대입에 다양한 경로로 참여하는 학자로서 수능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반가운 면이 있다. 논란의 시작은 대통령의 수능과 사교육에 대한 언급이지만, 교육 문제가 심각한 데 비해 그간 너무 조용히 다뤄진다고 생각하던 터다.

논란의 중심인 수능을 보자. 조국 전 장관 자녀 입시비리가 터지면서 정시 비중을 갑자기 확대할 때 정부의 명분은 공정성이었다. 고교 재학 중 활동과 내신을 보고 선발하는 수시에서 비리가 크게 불거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정성은 수능 점수가 실력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점수에 따라 수험생을 줄 세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즉 정시가 줄 세우기 전형이라 공정하다고 인식됐다.

수능 정시도 공정성 보장하지 못해
학교 역할 어떻게 정립하냐가 관건

하지만 정시도 공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은 줄 세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교마다 수능 과목 반영 비율이 제각각인 데다 학과 정원이 여러 전형으로 쪼개져 정시에 할애된 정원이 적다. 줄 수가 대학교 개수 이상 되고, 각 줄의 합격 순위는 올라갔다는 뜻이다. 통계학의 대수의 법칙을 적용하면, 한 줄로 세우는 인원이 많을수록, 줄을 여러 번 설수록 수험생은 줄 안의 자기 위치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지금은 수험생이 수능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어느 줄에 서야 붙을지 알 수가 없다.

줄 세우기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정시는 줄 세우기 전형이므로 정시 비중을 확대할 때 줄 서는 공정성을 위한 제도적 디테일이 뒷받침되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별로 수능 과목 반영 비율이 다르고 계열이나 단과대학별로 인정하는 선택 과목을 세세히 지정하는 것은 줄 개수만 늘린다. 반면 모집 단위를 학과가 아닌 계열이나 단과대학으로 확대한다면 정원이 늘어날 뿐 아니라 학생의 전공 선택권도 커질 것이다.

줄 세우기가 잘 되더라도 수능의 본질적인 문제는 남는다. 바로 수능 점수가 반영하는 역량이 미래 지향적인가다. 수능이 두뇌의 특정한 숙련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데 장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 숙련도가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역량과 관련이 깊은가, 그러한 역량이 오지선다형 문제들로 드러나는가에 지속적으로 의문이 있어 왔다. AI의 발달이 이목을 끌면서 의문은 더욱 커졌다. 수능을 서술형 문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정시가 교육계에서 불편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교사들은 대체로 정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수시에서 중요한 내신과 교내 활동이 정시에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시의 모든 것인 수능은 학교에서 제대로 대비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전국구로 치러지는 수능은 차치하더라도 내신 준비조차 학생들이 사교육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어떻게 제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가가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사교육이 비대해지는 건 수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교육비가 낭비인 이유는 그렇게 올린 내신 점수, 수능 점수가 정작 아이들의 역량을 키워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수능에 주어진 임무가 나라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이탈하지 않는 범위에서 변별력을 갖춘 문제로 수험생을 줄 세우는 것이라는 점이다.

수년간 지속된 내신의 과목별 상대평가와 수능의 절대평가 확대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대입부터 시작해서 구조의 문제점을 세밀하게 풀어야 한다. 2025년 고교 내신부터 고교학점제라는 일종의 절대평가가 전면 시행된다. 수능을 어떻게 조합하고 대학교들이 어떤 선발기준을 세울지 갈림길이 많다. 이번 논란이 나라의 미래가 바뀔 토론으로 이어지기 바란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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