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가능성 하나가 닫힐 때 생기는 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그린 북’은 1960년대 초반의 미국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에 사는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 그가 어느 날 특별한 제안을 받는다. 남부지역 공연 투어를 떠나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가 돼달라는 것. 돈이 궁하던 토니는 ‘그린 북’을 들고 돈 셜리와 파란만장한 여정에 나선다. 그린 북(Green Book)은 흑백 분리 차별이 있던 당시 남부에서 흑인이 이용 가능한 호텔 등을 정리한 안내 책자다.

내가 주목한 건 돈 셜리가 대저택에서 공연을 하는 장면이었다. 백인들은 그와 정중하게 악수를 나눈 뒤 피아노 연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돈 셜리가 화장실을 찾자 저택 주인이 건물 밖 후미진 공터의 간이 화장실을 가리킨다. “저곳은 이용하기 싫습니다.” 주인도 물러서지 않는다. “보기보다 괜찮아요. 불평하는 사람 없던데요.”

컷 cut

컷 cut

셜리의 연주를 즐기면서도 그와 화장실은 같이 못 쓰겠다는 심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른 것은 다 받아들여도 이것 하나만큼은 허용할 수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당신은 우리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상징일까. 이런 경우 소수자는 “겨우 그게 뭐라고 까탈스럽게 구느냐”는 힐난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가능성 하나가 닫히는 것으로 모든 가능성이 어그러진다. “같은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것뿐인데…”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인격에 매기는 가치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화장실은 차별의 체제를 유지하는 ‘불가침 영역’ 같은 것이다.

돈 셜리는 결국 왕복 30분, 차를 타고 숙소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는 “차를 세워줄 테니 숲에다 일을 보라”는 토니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오늘도 차별에 맞서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있는 분들께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