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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원영 스님의 마음 읽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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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뜰 앞에 나가 비 갠 뒤의 맑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두 팔 벌려 한껏 품에 안아보았다. ‘하늘이 나를 안은 것인가, 내가 하늘을 품은 것인가.’ 도심의 혼탁한 기운과 소음도 맑은 허공이 다 감싸주었는지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오늘은 푸른 기운이 청룡암 도량에 가득하니, 어디선가 용이라도 꿈틀할 기세다.

청량한 아침, 물 한 동이 들고 나가 산문 앞 수국에 부어주었다. 절 앞에 놓아둔 수국이 하루가 다르게 뭉실뭉실 피어나 풍성하고 아름다워지더니, 고운 자태를 뽐내려고 자리싸움까지 하는 모양새다. 과연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보았다는 신선의 꽃이 바로 이 수국이련가 싶다.

‘어느 해인가 신선 살던 곳에 심어 놓은 것을(何年植向仙壇上)/ 조석으로 이 절집에 옮겨 심었네(早晩移裁到梵家)/ 비록 인간계에 있어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니(雖在人間人不識)/ 너에게 자양화라 이름 지어주노라(與君名作紫陽花).’

세상 걱정 잠재우는 만파식적
우리 마음에도 그런 피리 있어
‘나’라는 고집부터 내려놓아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신선의 꽃이었는지는 몰라도, 오가는 이들이 미소 짓는 것을 보니 이 공덕만으로도 충분하다. 수국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새로 출간된 나의 책을 들고 모처럼 도반 스님이 왔다. 담소 끝에 근황을 들으니 요즘 피리를 배운다고 했다. 반갑고 즐거운 소식이다. 청아한 비구니 스님의 피리 소리라니 상상만으로도 멋지다. 평소에도 음악적 재능이 있는 스님이라고 인정하던 터라 더 기대된다. 우스갯소리로 조만간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도 부는 게 아닌가 하며 즐거이 웃었다.

옛 전설에 의하면, 만파식적을 불면 혼란스러운 나라는 태평해지고, 병든 이는 낫게 되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에는 비가 개며, 바다에선 풍랑이 잦아진다고 했다. 파도도 근심도 없애준다니, 피리 하나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 제아무리 힘든 상황도 피리 한번 불고 나면 다 해결된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런 가피를 주는 피리도 없을뿐더러, 이 험한 사바세계가 그리 쉽게 변할 턱이 없다.

그럼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까. 불교에서는 처음도 끝도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에 열쇠가 있다고 본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흔히 『금강경』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말하는 이 경전은 수보리와 부처님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즉, 마음 다스리는 법을 알려달라는 얘기다. 부처님은 무엇보다 자신을 고집하는 ‘상(相)’부터 내려놓으라고 가르친다. 세상이 다 허망한데, 그깟 상을 내서 무슨 소용이냐는 말씀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최상의 지혜는 마음의 ‘상’을 없애는 것이다.

지난날 속 썩고 인간관계에 부대낀 일을 들여다보면, 자기를 고집하는 데서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만들어낸 각자의 아집이 불씨가 되어 ‘화’를 키운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구체적으로 네 가지로 설명한다. 자신을 내세우려는 상(我相), 평등하게 대하지 않고 차별하는 상(人相), 자신을 열등하게 보는 상(衆生相), 목숨에 집착하는 상(壽者相) 등이다. 이러한 ‘상(相)’을 버리는 연습이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이들이 해야 할 수행이다. 상을 버리지 못하면 풍랑이나 탓하며 고해를 건널 수밖에 도리가 없다.

다행히도 불교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만파식적과 같은 피리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본다. 달리 밖에서 애써 구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불 수만 있으면 된다고 말이다. 피리를 부는 것은 곧 마음을 비우는 일, 상을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된다. 비우고 버리고 나면 새로운 세상도 만들 수 있고, 더 아름다운 역사를 써갈 수도 있다는 사유방식이 깔려있다.

지난날 속 썩어가며 괴롭게 인생을 살아왔어도 괜찮다. 지금부터 마음을 잘 쓰면 그간의 힘든 삶은 누군가를 살리는 거름이 될 것이다. 살면서 곰삭지 않고 파릇파릇하기만 한 인생을 누가 믿겠는가. 세상에 썩은 것은 대개 다 버려지지만,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잘 쓰면 과거는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우리 각자의 인생도 아프고 썩은 만큼 누군가를 살리는 거름이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사람은 생각한 대로 변한다. 내 마음 씀씀이가 주위와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러니 누군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냐고 물으면, 일단은 자신을 내세우려는 상부터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좋겠다. 상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관계도 원만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용의 형상을 한 흰 구름이 파란 하늘을 헤엄쳐간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