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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한의 시사일본어] 호네부토 방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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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31면

시사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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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13일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 이름이 ‘여성판 호네부토(骨太) 방침 2023’이다. ‘호네부토’는 뼈가 굵은 모양을 뜻한다. 구조 개혁을 밀어붙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2001년 ‘향후 경제 재정 운영과 경제사회 구조 개혁의 기본 방침’을 확정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한 이래 경제정책의 뼈대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그 뒤 등장한 총리들도 제각기 ‘호네부토 방침’에 자신의 철학을 담았다. 두 차례에 걸쳐 10여년 장기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1차 내각 당시인 2007년 ‘아름다운 나라’를 내걸고 인구 감소 시대에서의 지속 성장과 교육 재생을 중점 정책으로 삼았다. 2017년에는 ‘인재에 대한 투자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를 맞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2020년에 ‘마이넘버(일본판 주민등록번호) 개선과 GoTo 캠페인’을 내걸고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섰다.

호네부토에 ‘여성판’ 타이틀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그만큼 여성 인재 육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성판 호네부토’의 핵심은 최우량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다. 일본에선 임원을 ‘야쿠인(役員·やくいん)’이라고 한다. 또 남성 육아 휴직제도를 강화하고 아이가 2세 미만일 때는 근무 시간이 줄어도 실수령액을 유지하도록 했다.

실제로 일본 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15.5%로 크게 낮다. 프랑스(45.2%), 이탈리아 및 영국(40% 이상), 미국(31.3%)은 물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29.6%)의 반토막 수준이다. 여성들의 업무 성취 의욕이 떨어지고, 세계 기업 평가에서 부정적 요인이 되는 이유다. 프라임시장에 상장된 1829사 중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이 383개(20.9%)나 된다. 이 회사들은 2025년까지 반드시 1명 이상의 여성 임원을 선임해야 한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경영진의 성별 균형을 반영한다. 한국은 어떨까. 일본보다도 낮은 12.8%다.

일본이 ‘호네부토’까지 발표하게 된 것은 여성의 경제 활동 부진이 일본 경제 전체와 노동 시장의 침체 요인이라는 자기 비판에서다.  보수 안정을 추구해온 일본 정부가 여성 인재 활용에 힘을 쏟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일본이 진짜 달라질 결심을 하고 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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