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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대신 뿔소라, 고추장 닮은 유자 퓌레…파리 뒷골목 백반집 같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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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24면

이선민의 ‘색다른 식탁’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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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 위치한 식당 겸 와인바 ‘오니바(사진1)’에는 일반적으로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연상되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하얀색 테이블보,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인다이닝이 아닌, 파리 뒷골목 길가에서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면 나타날 것 같은, 그네들의 백반집 같은 곳이다.

육향이 진한 오리고기와 함께 선보이는 검붉은 색깔의 퓌레는 ‘고추장일까?’ 싶은데 유자와 대추야자를 섞어 만들었다. 전통적인 프랑스 음식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달팽이 요리는 거제도 뿔소라(사진2)로 바꿨다. 기장에서 올라 온 검지손가락만한 멸치는 바삭하게 튀긴 후 아프리카 향신료에서 영감받은 매콤한 하리사 소스를 곁들여낸다. 술안주로 고추장 푹 찍어먹는 멸치의 또 다른 버전같은 느낌이랄까.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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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는 용인 ‘고기리막국수’에서 선보이는 들기름 막국수를 차용해 들깨아이스크림, 들기름, 김가루를 함께 조합했다. 한국 음식인지 프랑스 음식인지 알쏭달쏭할 만큼, 여러 문화권에서 영감받은 요소를 박진용 셰프가 복합적으로 풀어낸 결과인데, 말하자면 ‘한국식 프랑스 음식’이다.

서울 미쉐린 가이드 1스타 레스토랑 ‘제로컴플렉스’와 파리 소재 레스토랑 ‘르 샤또브리앙’에서 일했던 박 셰프는 편견을 깨는 요리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요리의 정점인 소스는 한국술과 만나서 더 새롭고 다채롭다. 국내 양조장 ‘이쁜꽃’에서 만든 소곡주 ‘황새’의 뾰족한 산미를 사용해 소스를 끓이고, 경북 안동에서 만든 ‘일엽편주’도 재료가 된다. 7가지 음식을 코스 형식으로 내며, 1인당 기본 코스는 8만8000원.

음악 선곡도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령대를 묘하게 아우른다. 파라디의 곡 ‘Instantane’나 LCD 사운드시스템의 ‘I used to’는 2030의 귀에 익숙한 즐거움을 주고, 1980년대 프랑스 팝을 이끈 팍트네흐 팍티큐리에의 곡이나 영국 밴드 더 휴먼리그의 곡 ‘Don’t You Want Me’는 5060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오니바’는 불어다. “함께 가자!”라는 뜻으로, 친구들끼리 같이 어딘가 가자고 할 때 주로 사용하거나, 레스토랑 주방에서 주문받은 요리를 시작하거나 완성된 음식을 손님에게 전달할 때도 쓴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시공간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끝의 불투명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끌벅적한 음악과 대화가 섞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잠시 잊게 된다. 그럼 오늘, 오니바로 오니바!

이선민 식음·여행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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