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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첨벙첨벙, 산소길 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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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진우석의 Wild Korea ③ 홍천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

홍천 수타사계곡은 계곡물이 얕아 물길 트레킹에 좋은 계곡이다. 깊은 산 속 계곡을 걷다 보면 더울 틈이 없다.

홍천 수타사계곡은 계곡물이 얕아 물길 트레킹에 좋은 계곡이다. 깊은 산 속 계곡을 걷다 보면 더울 틈이 없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기억하시는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에 걸어 들어가 플라이 낚싯줄을 던지는 브래드 피트는 얼마나 근사했던가. 그 그림 같은 풍경 속 계곡에 발목 담그고 첨벙첨벙 걷는 게 물길 트레킹이다. 플라이 낚시가 정적인 활동이라면, 물길 트레킹은 온몸으로 계곡을 즐기는 역동적인 행위다. 트레킹 며칠 전에 비가 제법 내린 덕분에 깨끗하고 풍성한 물길 트레킹을 만끽했다.

바위엔 다슬기, 물속엔 무당개구리

물길 트레킹은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등산화를 신은 채 물길을 걷는다.

물길 트레킹은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등산화를 신은 채 물길을 걷는다.

계곡 트레킹은 보통 계곡 옆에 난 오솔길을 걷지만, 물길 트레킹은 계곡 안에 들어가 걷는다. 한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걷기다. 때론 계곡에 몸을 담글 수 있고, 자연스레 물놀이를 즐길 수도 있다.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계곡은 험하지 않고 코스가 짧아 초보자의 물길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공작산(887m)은 높이보다 품이 넓은 산이다. 공작이 날개를 펼친 산세인데, 왼쪽 날개 품에 수타사계곡이 안겨 있다. 수타사 주변으로 홍천군에서 만든 ‘수타사 산소길’이 나 있다. 숲길과 계곡이 어우러지는 산책 코스로 가볍게 걷기에 좋은 길이다.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은 수타사에서 약 8㎞쯤 상류 쪽에 있는 노천1교부터 계곡을 따라 수타사까지 걷는다. 여행작가학교 동문과 함께 노천1교에서 물길 트레킹을 시작했다.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

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

둑길을 10분쯤 내려가 작은 농가를 만났다. 여기에서 과감하게 계곡으로 들어간다. 시나브로 신발이 젖고 물의 서늘한 감촉이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물에 들어가기 전의 걱정은 야릇한 흥분으로 바뀌었다. 콸콸~ 쏴~ 우당탕~ 맑은 계곡은 곳곳에서 거친 숨을 내쉰다.

두 사람이 넘어졌다. 초반에는 조심해야 한다. 계곡 안에 이끼가 껴 미끄러운 곳이 군데군데 있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천천히 걸으며 적응해야 한다. 물살이 거친 구간을 지나 바위 위에 올라서자, 앞쪽으로 모래가 깔린 잔잔한 계곡이 펼쳐진다. 쌓인 모래를 지르밟는 느낌이 통쾌하다.

수타사계곡에서 잡은 다슬기.

수타사계곡에서 잡은 다슬기.

바위에 돌단풍 가득한 암반이 나온다. 여기가 수타사계곡의 절경 ‘귕소다. ‘귕은 구유를 말한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 여물통이다. 미끈한 암반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길고 거대한 구유 같다. 물과 바위, 그리고 시간이 만든 걸작이다. 귕소는 하류 쪽에 하나가 더 있다.

귕소를 지나면 계곡 풍광은 더욱 수려해진다.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툭’ 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안의 근심이 끊기는 소리다. 근심은 스르르 물에 풀려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내 인생도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길 바라본다.

계곡 이끼 미끄러워…혼자는 금물

수타사계곡의 절경 귕소. ‘귕’은 소 여물통이다. 계곡 암반지대가 여물통을 닮았다.

수타사계곡의 절경 귕소. ‘귕’은 소 여물통이다. 계곡 암반지대가 여물통을 닮았다.

계곡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만나는 것도 큰 기쁨이다. 다슬기 무리가 물가 바위에 붙어 있다. 잠시 다슬기 해장국이 떠올랐지만, 잘 살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물속에서 꼬물거리는 무당개구리에게는 인사를 건넸다. 흰뺨검둥오리 가족도 만났다. 어미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여덟 마리 새끼들의 귀여운 몸짓에 웃음이 절로 났다.

신봉교가 가까워지면 물살이 거세다. 이곳은 계곡 오른쪽의 오솔길로 우회해야 한다. 수풀이 우거졌지만, 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한동안 산길과 수로를 번갈아 가면 도로를 만난다. 신봉교를 지나면 ‘둘레길 쉼터’란 제법 큰 건물이 보인다. 평일은 닫았지만, 주말과 성수기에는 영업한다. 잠시 논길을 지나면 호젓한 숲길이 나온다. 귕소 출렁다리를 건너면 수타사 산소길로 접어든다.

물길 트레킹의 종점 수타사.

물길 트레킹의 종점 수타사.

출렁다리 아래쪽의 귕소는 꼭 들러봐야 한다. 설악산 계곡처럼 매끈한 암반 지대가 펼쳐진다. 여기서 여분으로 가져온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이제 물에 빠질 일이 없다. 휘파람 불며 조붓한 산길을 따르면, 커다란 너럭바위인 용담 위에 올라선다. 바위 아래로 작은 폭포와 드넓은 소가 펼쳐진다. 바위 아래 박쥐굴에서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쏴~ 거친 물이 쏟아지는 용담의 작은 폭포를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피라미로 보이는 작은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다가 폭포에 휩쓸려 사라진다. 제 몸을 비튼 탄력으로 튀어 올라 몸이 부서져라 장벽 같은 폭포에 부딪히는 모습이 안쓰럽고 감동적이다.

수타사로 건너가는 공작교 위에 섰다. 마지막으로 물끄러미 계곡을 바라본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나는 강물에 사로잡혔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난다. 수타사계곡 트레킹의 마무리는 그 말을 약간 바꿔 쓰고 싶다. “나는 완전히 물길에 사로잡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트레킹 정보=수타사계곡 물길 트레킹은 경험 있는 리더와 동행하는 게 좋다. 혼자는 금물이다. 출발점은 홍천군 영귀미면 노천리의 노천1교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므로 차 한 대는 수타사 주차장에 놓고, 다른 한 대를 이용해 노천1교로 간다. 코스는 노천1교~귕소~신봉교~수타사, 거리는 약 8.5㎞, 4시간쯤 걸린다. 물길을 걸을 때는 등산화를 신고 스틱으로 중심으로 잡는 게 정석이다. 아쿠아 슈즈도 괜찮지만, 바닥이 얇아 충격 흡수가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진우석

진우석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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