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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 꿈꾸던 22세 바리톤…세계 3대 콩쿠르서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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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2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왼쪽)이 올해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소프라노 조수미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02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왼쪽)이 올해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소프라노 조수미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계 샛별’ 김태한(22·바리톤)이 202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4일 새벽(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콘서트홀 ‘팔레 데 보자르’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시상식. 심사위원장 베르나르트 포크롤이 “태한 킴!(김태한)”을 호명하자, 다큐 ‘한국 클래식 음악의 수수께끼’ 등을 연출한 벨기에 감독 티에리 로로는 “다섯 번째!”라는 한국말로 축하를 건넸다. 홍혜란(2011, 성악), 황수미(2014, 성악), 임지영(2015, 바이올린), 최하영(2022, 첼로)에 이어 김태한이 다섯 번째 한국인 우승자란 의미였다. 2위는 미국의 콘트랄토 재스민 화이트(30), 3위는 러시아·독일 2중 국적의 소프라노 율리아 무치첸코(29)가 수상했다. 베이스 정인호(32)는 5위에 입상했고, 바리톤 권경민은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김태한은 대회 역사상 성악 부문 최초의 아시아 남성 우승자로도 기록됐다. 1위 상금 2만5000 유로(약 3500만원)를 받고, 2위까지 해당하는 군 대체복무 혜택의 수혜자가 된다.

쇼팽 피아노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경연대회로 꼽히는 이 대회는 바이올린·피아노·첼로·성악 부문이 매해 번갈아가며 열린다. 지난해 첼로 부문 최하영이 우승한 데 이어 한국인이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성악 부문인 올해 대회에선 소프라노 조수미가 심사위원을 맡아 화제가 됐다. 결선 마지막날인 3일 오후 브뤼셀 시내에서 만난 조수미는 “우리나라 가수들 노래하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4일 김태한에 축전을 보내 “이번 수상은 K클래식의 글로벌 영향력을 각인시킨 강렬한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김태한의 이번 우승은 ‘메이드 인 코리아’ 음악교육만으로 거둔 성과다. 선화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김태한은 바리톤 나건용을 4년간 사사하고 현재 국립오페라단 스튜디오에서 소프라노 김영미에게 배우고 있다.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진학할 예정이다.

김태한이 결선무대에서 열창하는 모습이다. 김태한은 대회 역사상 성악 부문 최초의 아시아 남성 우승자가 됐다. [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김태한이 결선무대에서 열창하는 모습이다. 김태한은 대회 역사상 성악 부문 최초의 아시아 남성 우승자가 됐다. [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김태한은 2021년 한국성악가협회 국제성악콩쿠르와 중앙음악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했다. 지난해 독일 노이에 슈팀멘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고,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금호영 아티스트콘서트로 데뷔했다. 그는 12명이 겨루는 결선 무대를 준비하며 “낭만적인 곡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최선을 다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태한은 “남을 잘 의식하지 않는 게 내 장점”이라며 “즐기면서 노래했다. 국제 콩쿠르보다 국내 콩쿠르가 더 떨린다”면서 “국내 콩쿠르는 1등 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실력자들이 많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라 모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한 결선에서 김태한은 2부 첫 순서에 등장했다. 첫 곡으로 바그너 ‘탄호이저’ 중 ‘죽음의 예감처럼 황혼이 대지를 뒤덮고-저녁별의 노래’를 불렀다. 깔끔하고 모범적인 가창이었다. 말러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타는 듯한 단검으로’에서도 청중들에게 개운한 뒷맛을 남겼다.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부를 땐, 감동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이 주목받았다. 끝곡인 베르디 ‘돈 카를로’ 중 로드리고의 아리아 ‘들어주시오 카를로-나에게 최후의 날이 왔소’ 역시 영리한 전략이 돋보였다.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오리지널인 프랑스어판으로 불렀다.

콩쿠르를 앞두고 하루에 몇 시간 연습했냐는 질문에 김태한은 “세어보지 않았다. 성악가는 놀면서도, 걸어다니면서도 연습할 수 있다”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동안 음악에 거의 잠긴 채 살았다”고 말했다.

김태한은 원래 록 가수를 지망했다. 중학교 때 밴드 활동을 했다. 캐나다 팝펑크 밴드인 썸 41(Sum 41)의 오랜 팬이고, 퀸이나 비틀스 등 영국 밴드들도 좋아한다는 김태한은 “그래도 클래식 음악을 가장 많이 듣고 좋아한다”며 웃었다.

전설적인 바리톤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의 추종자이기도 한 그는 현재 가곡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독일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노래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꼭 해보고 싶은 배역은 ‘세비야의 이발사’ 중 피가로다. 그는 “9월부터 베를린 슈타츠오퍼 오페라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태한은 이번 대회 2,3위 수상자와 함께 9월 서울·부산·세종 등 국내에서 총 10회의 공연을 갖는다. 11월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 20주년 기념 오페라 어워드 갈라 콘서트에도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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