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관객 여러분~ 살인범 좀 찍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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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매드니스

오픈 런, 대학로 예술마당 2관, 1만5000~3만원, 02-744-4337

"저 여자 아까 가위를 몰래 쓰레기통에 넣었어요."

"이 남자 말 거짓말이에요. 왼쪽 문으로 들어오는 거 제가 봤어요."

엄숙해야 할 공연장이 소란스럽다. 손을 번쩍 번쩍 들거나 웅성웅성 떠드는 건 그나마 얌전한 편.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봤다니깐, 이 계집애야"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관객도 있다. 때론 인민재판장 같고 때론 시장 바닥 같다.

연극 '쉬어 매드니스'은 이처럼 별난 관객과 함께한다. 관객이 유난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보통 관객을 흥분하게 만든다. 공연이 영화.TV 드라마와 다른 점은 복제 불가능성에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무대 위 모습은 매번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을 배우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며 스크린에 대고 무어라 떠들 순 없다. 그러나 공연은 바로 관객의 눈앞에서 펼쳐지기에 때론 배우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공연의 본질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줄거리는 이렇다. 평소처럼 수다스러운 서울 성북동의 조그마한 미용실. 위층에 사는 건물 주인 노애심이 살해당한다. 왕년에 잘나가던 피아니스트다. 미용실엔 미용사 토니와 미스 양, 그리고 손님인 사교계 인사 장 여사, 골동품 판매상 태진아가 있다. 살인범도 이 가운데 있다. 범인의 단서는 노애심이 살해당하기 전까지 미용실에서 벌어진 용의자들의 행동이다. 담당 형사는 관객에게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형사도 미처 알지 못했던 세밀한 부분을 관객의 증언으로 찾아내면 실마리는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용의자들은 저마다 그럴싸한 알리바이를 갖다댄다. 관객은 용의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다. 객석과 무대 사이에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면서 용의자의 범위는 차츰 좁혀진다.

얽혀 있는 사건을 관찰자가 아닌 해결사로 직접 참여해 빠져들게 하는 게 이 연극의 묘미. 다만 반전과 추리로 결판날 듯 싶던 사건이 범인의 허망한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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