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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입양은 인간답게 살 기회 주는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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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석천(미국명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MPAK) 대표

최석천(미국명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MPAK) 대표

5월은 가정의 달이고,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올해 67세인 필자는 한국의 보육원(고아원)에서 살다 1970년 열네 살 때 미국의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런데 일부 한국 언론의 입양 관련 보도를 보면서 해외에 입양된 경험이 있는 입양인 입장에서 마음이 무겁고 불편할 때가 많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히 많은 입양인이 입양 부모에게 학대당하고, 해외입양 서류는 대부분 조작됐다는 보도는 극히 일부분을 전체로 둔갑한 일반화의 오류다. 자극적인 왜곡은 많은 입양 부모와 입양인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사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에서 아동학대와 사망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그런데도 극소수 입양 가족에서 일어나는 학대 사건은 언론이 유난히 더 주목하고 자극적으로 보도한다.

오늘 ‘입양의 날’에 돌아본 가정
국내외 입양에 대한 오해 많아
생명 버리는 사회엔 미래 없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부 극소수 해외 입양인에게 일어난 학대와 성폭행 등의 사례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매우 가슴 아픈 비극이다. 이런 사례는 요즘 혈연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당연히 해당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부 사건을 핑계로 입양 전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가정폭력을 없애기 위해 모든 가정 출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처럼 논리 비약이다.

한때 한국에는 부모를 잃은 아동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장치가 없었다. 당시에는 보육원에서 아이의 이름을 짓고 생년월일을 정해서 신분을 만들어 줬다. 아동이 입양기관으로 옮겨지면 입양기관은 시설에서 받은 정보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5세 때 거리에서 발견돼 6세 때 보육원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8년을 살다 미국으로 입양됐다. 생년월일은 시설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의 신분이 조작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불가피했다고 이해한다.

시설이 만들어준 서류 덕분에 미국 가정에 입양될 수 있었고 덕분에 어두웠던 과거를 딛고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중·고교를 다니고 대학에 진학해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했고 전공을 살려 42년간 항공우주 관련 기업에서 일하다 2021년 은퇴했다. 1995년부터는 미국에서 입양 홍보 활동을 하다 필자는 1999년 한국입양홍보회(MPAK)라는 단체를 설립해 입양 활성화 운동을 해오고 있다. 입양을 통해 기회를 얻고 축복을 받은 필자의 경험을 살려 버려진 아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자는 취지였다.

입양에 부정적인 소수의 해외 입양인들이 17만 명이나 되는 전체 해외 입양인 모두를 대변할 수 없다. 입양인 대부분은 입양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얻고 있다. 입양인을 만나보면 입양을 통해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을 얻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가능하지 못했던 고등 교육 기회도 얻는다. 대부분의 해외 입양인들은 새 가정을 찾아 준 입양기관과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양이 행운이자 특권이라 생각하며 입양 부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존재한다. 돌아보면 입양의 역사도 명암이 있다. 일부 언론 보도처럼 모든 해외 입양의 역사에 그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입양을 통해 새 부모를 만나고 그 가정 안에서 사랑받고 행복하게 성장해 세상에 이로운 삶을 살아가는 입양인이 훨씬 더 많다.

물론 해외입양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도 많은 해외입양인은 한국에서 가질 수 없었던 기회를 얻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든 해외든 입양은 한 아동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다. 일반 아동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랄 기회를 누리는 것처럼 가정이 필요한 아동이 입양을 통해 인간답게 자랄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런 이 기회가 대한민국 안에 모든 아동에게도 끊임없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생명이 함부로 버림받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는 매일같이 아이들이 버려진다. 극심한 저출산 시대인데도 영아가 화장실에 버려지고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어 안타깝다. 많은 아이가 시설에서 생활한다. 그 아이들에게 가정을 마련해 주는 것은 한국 사회의 마땅한 책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석천(미국명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MPAK)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