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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돌] 격세지감 본인방전과 일본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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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검은 돌 흰돌

검은 돌 흰돌

일본 3대 기전의 하나이자 세계 최초의 프로기전인 본인방전이 3분의 1로 대폭 줄어들었다. 가슴 아픈 소식이다. 일본 바둑이 아무리 죽을 쒀도 3대 기전은 의연했다. 어떤 스폰서도 없이 세계 대회보다 훨씬 큰 규모로 대회를 유지하는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승부 세계의 흥망성쇠하고는 무관하게 일본 바둑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 일각이 무너졌다. 한 시대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다. 마이니치 신문 측은 본인방전의 대폭 축소를 발표하며 “향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긴 했다.

기성전의 우승 상금은 4300만엔(4억3000만원), 명인전은 3000만엔(3억원), 본인방전은 2800만엔(2억8000만원)이다. 예선전부터 대국료가 지급되고 8명이 리그를 벌이는 본선에 오르면 더 큰 대국료가 기다린다. 3대 기전 중 하나만 본선에 올라도 “1년 농사를 지었다”는 말이 나왔다. 한데 내년부터 본인방전 우승상금이 850만엔으로 줄어들었다. 또 본선 리그를 없애고 16강 토너먼트가 등장했다.

이번 축소는 비단 돈 문제만이 아니다. 3대 기전 도전기의 제한시간은 각 8시간. 하루에 끝날 수 없으므로 ‘이틀 걸이’ 바둑을 둔다. TV 속기가 아무리 맹위를 떨쳐도 끝끝내 지켜온 전통이다. 한데 본인방전은 제한시간을 3시간으로 줄이며 전통의 이틀 걸이 바둑을 포기했다.

일본 1, 2위 신문사인 요미우리와 아사히의 ‘명인전 소송’은 1975년 벌어졌다. 당시 일본 1위 기전인 명인전이란 기전 이름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소송이었다. 내막과 과정은 복잡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났다. “요미우리가 기성전이라는 새로운 서열 1위 기전을 주최하기로 하고 명인전은 아사히가 갖는다.”

서로 가장 큰 바둑대회를 하려고 소송도 불사하던 이 무렵이 어쩌면 일본바둑의 최전성기였을 것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바둑의 쇠퇴는 묘하게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궤를 같이한다. 한국의 세계 제패와 중국의 굴기가 이어지면서 세계 기전이 계속 생겨났지만 상금 면에서는 여전히 일본이 1위였다. 일본은 모든 대국에 대국료를 지급하기 때문에 전체 예산은 더욱 커진다. 3대 기전의 도전기는 7번기. 전국의 명소를 순회하며 격조 있는 옛 방식으로 치러진다. 도전기엔 별도로 많은 대국료가 따른다. 일본의 강자들이 세계대회보다는 3대 기전에 전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방전 대폭 축소와 함께 일본바둑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 일본기원을 향해 경고장이 날아들었다고 봐야 한다.

본인방(本因坊)이란 이름은 아득히 거슬러 올라간다. 교토 적광사에 본인방이란 탑당이 있었고 그곳 주지인 닛카이는 일본바둑의 최강자였다. 도쿠가와 막부의 후원 아래 바둑 가문인 본인방가(家)가 세워졌다.

9단은 곧 명인이고 명인은 한 시대에 ‘한 명’ 뿐이었다. 바둑 4가문은 바둑 최고봉이자 바둑 권력의 정점인 명인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본인방가는 가장 많은 명인을 배출해 최고의 명문가가 됐다. 하나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4가문의 봉록은 끊겼고 본인방가도 해체됐다. 최후의 세습 본인방인 슈샤이 9단은 본인방이란 가문의 이름을 기전의 이름으로 내놓았다. 1939년 본인방전이 시작됐다. 이후 일본바둑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스포츠나 연예가 미약하던 시절, 바둑은 최고의 인기였다. 요미우리 신문은 우칭위안 10번기 등을 통해 부수가 두 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일본은 현재 전체 489명 중 9단이 114명이다. 엄청난 ‘고인 물’이다. 반면 지난해 프로 입단자는 10명. 인체에 비유하면 혈액순환이 힘들어지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상징인 본인방전이 3대 기전의 한 축이기를 포기한 것은 ‘정말 힘들다’는 표현일 것이다. 비슷한 구조를 지닌 한국도 이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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