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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몽’ 돌격대장 시장화매체, 당 기관지보다 논조 더 강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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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호 10면

[기고] 중국 미디어 왜 거친 발언 쏟아내나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국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윤석열 정부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외교 당국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나 워싱턴선언 등에 대해 “말참견” “불장난하면 타 죽는다”는 등의 비(非)외교적 수사를 동원하며 쉬지 않고 트집을 잡았다. 당국이 먼저 문제제기를 하고 나면 반드시 이어지는 게 중국 미디어의 파상공세적 보도다. 이번에도 ‘당(黨) 매체’와 ‘시장화(市場化) 매체’가 동시에 ‘윤석열 때리기’에 나섰다. 중국중앙TV(CCTV) 등 당 매체는 한국 야당인사들의 말을 집중 인용하는 방식을 동원했고, 상업성이 짙은 시장화 매체는 지금까지 그랬듯 돌격대장처럼 앞장서서 공산당 강경파의 의중을 반영했다.

CCTV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지난달 30일 저녁종합뉴스 신원롄보(新聞聯播)에서 자세히 다뤘다.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도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워싱턴선언은 빈 껍데기”라고 한 국내 학자의 주장도 전했다. 한국 국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였다. CCTV 군사채널(CCTV-7)은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장진호 전투를 거론하자 6·25전쟁을 다룬 장편 애국주의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跨過鴨綠江)’를 긴급 재방송하기도 했다.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인터넷판은 지난 2일 “윤 대통령의 친미 외교가 한국 안보를 희생시켰다”는 제목을 달고 배너를 따로 만들어 초기화면 상단에 배치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을 부각시켰다. 차이나데일리는 중국 내 외국인을 주요 독자로 하고 중문판(中國日報)을 별도로 낸다.

미디어, 애국주의 교육에도 앞장서야

환구시보는 지난달 23일자에서 ‘한국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는 사설을 싣고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을 “중국을 모욕하고 도발해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라고 강변했다. 다음 날엔 “한국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총알이 될 수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워싱턴 선언의) 진정한 승자는 워싱턴이고 한국은 자치권을 상실했다”고 쓴 데 이어 “북·중·러의 보복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는 공산당의 정교한 선전선동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 미디어 수용자를 유형별로 나눈 뒤 그에 적절한 매체로 하여금 선별한 내용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 내 일반 민중(CCTV)이나 외국인(차이나데일리), 강경 성향의 중국인(환구시보) 또는 강성 외국인(글로벌타임스) 등의 시선을 각각 붙잡기 위해서다. 내국인을 피해 해외 독자들에게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알리고 싶을 때는 인민일보 해외판이 주로 나선다. 이럴 때 공산당 중앙의 최고위 선전조직인 중앙선전부는 각 매체가 역할 분담 속에 선전전을 펼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율하는 기능을 한다.

중국에서는 민간의 미디어 설립이 허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신문·방송은 관영매체다. 이는 다시 당 매체와 시장화 매체로 구분된다. 시장화 매체란 독립채산제 경영을 통해 자립해야 하는 매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자극적 보도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보(都市報)나 만보(晩報)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언론의 인용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환구시보도 시장화 매체에 속한다. 글로벌타임스는 환구시보의 영문판이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당보(黨報)는 아니다. 그렇다고 중앙선전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이에 비해 재정 지원금을 직접 받는 당 매체는 경영 측면에 대한 걱정 없이 당의 입장만 충실하게 전달하면 된다.

중국 정부와 미디어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일까. ‘중국몽’ 실현을 위한 절박함이 주된 이유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재임 중에 중국몽,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의 업무보고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줬다. 강력한 1인 지배체제를 바탕으로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한다는 노선을 천명하면서 대만 통일은 중국몽 실현을 위한 필연적 요구라고 선언했다.

중국몽 실현이란 목표 아래 미디어의 역할은 특히 중시된다. 시 주석은 여론공작이 당과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직접 밝혔다(2016년 2월 뉴스여론공작 좌담회). 미디어를 통한 선전과 동원이 인민들을 단합시키고 국가적 역량을 모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통제는 언론의 감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20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는 미디어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공작을 강조하면서 시진핑 사상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다. 시진핑 사상의 핵심은 중국몽이다. 중국공산당은 사상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여타 분야 방어선은 지키기 어렵게 된다고 본다. 이런 기조에 따라 “당이 이데올로기 공작에 대한 영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해야 한다”거나 “이데올로기 공작 책임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사상 통제를 강화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인터넷 검열 당국, 네티즌과 숨바꼭질

지난달 24일 시진핑 주석이 주중 대사 70명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연설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지난달 24일 시진핑 주석이 주중 대사 70명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연설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이런 미디어 정책은 ‘당관매체(黨管媒體)’ 원칙에서 나온다. 미디어는 당이 관리한다는 의미다. 당관매체 원칙에 따라 당이 실질적으로 이데올로기와 여론을 주도한다. 당 중앙선전부는 매일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려보낸다. 나아가 언론인에 대해서도 당성과 정치성을 갖추라고 요구한다. 당 중앙의 입장에서 뉴스를 판단하고 보도하라는 주문이다. 그럴 때에 여론선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인이 5년마다 기자증을 갱신할 때 시진핑 사상 시험을 치르도록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당관매체 원칙은 1921년 공산당 창당 이래 이어져왔다. 1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중국공산당 제1차 결의’는 “일간 신문 등 모든 출판 사업은 마땅히 중앙집행위원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디어는 중국몽 실현을 위한 애국주의 교육에도 앞장서야 한다. 2019년 11월 공산당 중앙위와 국무원이 공동으로 발표한 ‘신시대 애국주의 교육실시 강요(강령)’는 중국몽 실현이 애국주의 교육의 명확한 주제라고 강조하면서(1장), 청소년을 애국주의 교육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으라고 했다(3장). 5장에서는 모든 종류의 미디어에 대해 애국주의에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하고 특히 인터넷 공간에 애국주의가 가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강령은 중국이 국가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총동원체제를 가동하던 2020년 봄. 장쑤성 한 의대의 산부인과 온라인 수업이 시작한 지 몇 초 만에 먹통이 됐다. 검열 당국이 차단한 것이다. 이유가 황당했다. 여성 생식기 그림을 올리는 게 규정위반이란 것이다. 그 뒤 해당 교수는 SNS에 “내가 가르치는 내용은 검열기준으로는 모두 외설에 해당할 것”이라고 썼다. 허난성 한 고교의 고대사 온라인 수업에서 독재, 군주제, 관료주의 같은 단어가 등장하자 검열 당국이 막은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중국에서 인터넷 검열은 인터넷안전법에 의해 합법화돼 있다. 인터넷 매체에 대한 최고위 관리감독기관인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모든 인터넷 정보를 규제하고 삭제하는 권한을 갖는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중국인의 의사표현 욕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에 따른 현상이다. 중국 네티즌과 검열 당국 간의 숨바꼭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버 공간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 언론의 토대는 기본적으로 마오쩌둥 시기에 만들어졌다. 공산혁명 시기 미디어는 혁명 성공을 위한 도구였다. 신중국 출범 뒤 문화혁명 때는 미디어가 계급투쟁 수단이었다. 언론 매체가 당 사업을 위한 선전도구라는 존재 의의는 이런 과정에서 확립됐다. 이런 미디어 시스템은 앞으로 바뀔 수 있을까. 대답은 간명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관매체 원칙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중국공산당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중국과 같은 1당지배 국가에서 인민들이 당의 방침을 따라오도록 만드는 선전의 중요성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원교 차이나미디어 대표. 일간지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출신으로 중국 인민대에서 뉴미디어와 정치 참여의 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달 『시진핑의 중국몽과 미디어 전략』(나남)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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