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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워싱턴 선언’ 다질 후속조치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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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미대사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미대사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5박 7일 일정의 미국 국빈방문을 마쳤다.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높은 상징성과 그에 버금가는 실질적 성과가 어울린 방문이었다. 상징성과 관련,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한·미 동맹을 “서사시적 성공”이라 극찬했다. 그와 오랫동안 교류해온 필자는 그의 글에서 이런 수준의 찬사를 읽어 본 적이 없다. 실질적 성과와 관련,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했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한·미의 과학·기술 협력 강화 등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이 북한 도발에 대해 별도의 ‘워싱턴 선언문’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외교에서 선언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능한 많은 다중의 주의를 환기하는 높은 차원의 의사 표명 수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선언을 통해 북한의 한국에 대한 핵 공격은 즉각적·압도적·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확인했다.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향해 북한 핵 공격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선언’했다는 것 자체로도 확장 억제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에 거둔 성과
북 도발에 단호한 응징 구체화
실무그룹 만들어 내실 채워야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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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은 이러한 정상 차원의 의지를 담보하기 위해 많은 제도적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그 첫째가 ‘핵 협의 그룹(NCG)’의 창설이다. 그동안 한국 일각에서 미국의 확장 억제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 이유는 미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고, 한국은 아무런 목소리를 갖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NCG 창설을 통해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한 대응을 한·미가 공동으로 기획·집행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의구심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미의 대응은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미사일 대응 능력을 모두 포함해 이뤄진다. 따라서 공동으로 기획·집행하는 만큼 한국 측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한 ‘3축 체계’(선제타격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를 중심으로 한 한국군의 역할에 대해서도 더욱 심도 있는 협의가 이뤄질 수 있다.

선언에 따르면 한·미는 앞으로 도상 훈련을 해 나가기로 했는데, 이 훈련에 참여하는 미국 기관을 전략사령부로 지정했다. 전략사령부는 전략 자산 및 핵 조기 경보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 이를 기초로 미국을 상대로 한 공격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하고, 만일 억제에 실패했을 경우 신속한 반격을 책임진다.

이렇게 중요한 미국의 기관과 한국군이 정기적인 도상 훈련을 진행하게 된다. 북한의 다양한 도발 유형에 대비해 한·미 양국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응책을 개발하고, 필요한 자원 배치를 구상하고, 훈련을 강화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양국의 대응 능력을 크게 제고시킬 것이 자명하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핵무기 체계와 전략에 대한 정보를 얻고 미국 측 인맥에 대한 한국 측의 이해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선언에 따르면 미국은 전략핵잠수함(SSBN)의 기항을 포함해 미국이 보유한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할 것을 약속했다. 기항이 예상되는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1만8000톤에 이르는 미군 보유 최대 규모이며 핵미사일 24기를 장착한다. 이러한 전략 자산의 정례적 배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고, 나아가서 북한의 핵 개발 효용성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선언은 이렇게 북핵에 대한 양국 정상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밝히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제도화의 방향을 제시한 선언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언을 어떻게 실효적으로 실천해 나가느냐다.

NCG 결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 기획그룹(NPG)’을 참고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나토의 NPG는 장관급 회의, 대사급 회의, 실무자급 회의 등 3중 체계로 구성돼 상향식으로 운영된다. 실무자급 회의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한·미 간에는 이미 확장억제에 관한 차관급 회의가 있고, 앞으로 차관보급에서 운영될 NCG가 추가됐다. 바쁜 차관·차관보가 자주 만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상설 실무자 그룹을 만들어 상향식으로 운영해야 워싱턴 선언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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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전 주미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