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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돌며 한달살기 46번, 이 부부가 선택한 첫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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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0년째 신혼여행 ①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는 연방국가다. 말레이계ㆍ중국계ㆍ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잘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작은 가게에도 여러 국가의 깃발이 사이좋게 걸려 있다.

말레이시아는 연방국가다. 말레이계ㆍ중국계ㆍ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잘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작은 가게에도 여러 국가의 깃발이 사이좋게 걸려 있다.

김은덕(42)·백종민(43)씨 부부는 여행작가다. 여행작가 부부도 특별한데, 이들 부부의 여행은 좀 더 특별하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세계여행’을 해오고 있어서다. 부부는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진흙땅에서 함께 몸을 섞은 전우이며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적”이라고 말한다. 지구촌 한 달 살기의 추억을 아내와 남편이 각자의 시각으로 다시 썼다. 첫 회는 10년째 이어지는 신혼여행의 시작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이야기다.

◆ 아내의 쿠알라룸푸르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힌두교 최대 성지 바투 동굴.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힌두교 최대 성지 바투 동굴.

2013년 4월, 전세금을 모두 빼서 세계여행을 떠났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결혼 1년 차였던 우리 부부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씩만 들고 2년 계획으로 집을 나섰다. 시작은 말레이시아였다. 날 좋은 한국을 떠나 첫 한 달 살기 도시로 4월의 쿠알라룸푸르라니. 생각만 해도 후끈하고 습한 공기가 목을 조여왔다. 하지만 선택엔 후회가 없었다. 그러니까 쿠알라룸푸르를 우리가 ‘첫 한 달 살기 도시’로 항상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은 늘 어렵다. 그리고 두렵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낯선 외국 땅에서 살아보기. 말은 쉽지만, 첫 시작은 강렬한 유혹이 필요할 테다. 우리는 기꺼이 쿠알라룸푸르의 장점을 열거할 수 있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을 것, 문화권과 피부색이 비슷할 것,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을 것, 물가가 저렴할 것, 언어가 통할 것. 이 다섯 가지에 부합되는 도시가 바로 떠오른다면 당신도 여행 고수다. 무엇보다 쿠알라룸푸르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여성을 향한 불편한 시선은 찾기 힘들다. 터키·이란 등 여느 무슬림 문화권과 달리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가 어울려 살아야 하는 말레이시아의 관용적인 태도 덕일 게다.

쿠알라룸푸르의 낡은 뒷골목. 중국 베이징의 오래된 골목 후통을 닮았다.

쿠알라룸푸르의 낡은 뒷골목. 중국 베이징의 오래된 골목 후통을 닮았다.

물론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첫 도시에서 세계여행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처음부터 숙소 주인이 잘못된 주소를 줘서 캐리어를 끌고 땀으로 옷을 적셔가며 동네를 헤맸던 일, 당뇨병 중증 환자와 함께 살다가 새벽에 앰뷸런스가 들이닥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 현관에 고이 모셔 놓은 운동화를 도둑맞은 일, 지금 숙소는 불법으로 운영된다며 우리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던 아랫집 주민까지… 와! 열거해 놓으니 이런 혼돈 속에 어떻게 한 달 살기를 했나 싶다. 4월의 쿠알라룸푸르는 날씨만큼이나 머릿속도 진땀을 많이 흘렸다.

이렇게 진흙탕을 오갔던 4월의 도시를 떠올리면 우리 부부는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웬만한 일에는 웃어넘길 수 있는 배짱은 이렇게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디고 나서야 만들어진 것이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앞으로의 날들은 매일 늦도록 대화하고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리라. 그렇게 우리의 한 달 살기가 시작됐다.

◆ 남편의 쿠알라룸푸르

2013년 김은덕·백종민씨 부부가 한 달간 살았던 숙소에서 촬영한 쿠알라룸푸르 전경.

2013년 김은덕·백종민씨 부부가 한 달간 살았던 숙소에서 촬영한 쿠알라룸푸르 전경.

2013년 4월, 첫 도시에서 모든 게 끝날 뻔했다. 장담하건대 내가 중국어를 할 줄 몰랐다면 길거리에서 울다가 우리 부부는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거다. 잘못된 주소를 들고 헤맸던 곳은 중국계 말레이 사람들이 사는 동네. 집 앞에서 빗질하던 현지인에게 전화 좀 쓰자고 부탁했다. 요즘은 출국 전에 현지 유심을 사서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현지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그 집 전화를 사용해 주소를 다시 받았다.

동남아의 열기 속에서 집을 찾겠다고 20분 동안 짐을 끌고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얼굴과 등이 땀으로 흥건해 지고 나니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의 유일한 단점은 술이다. 그리고 이건 한국인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말레이시아 국민 음식 나시르막. 코코넛 밀크, 판단 잎을 넣고 지은 쌀밥에 반찬을 곁들여 나온다. 맥주가 나시르막과 가격이 비슷하다.

말레이시아 국민 음식 나시르막. 코코넛 밀크, 판단 잎을 넣고 지은 쌀밥에 반찬을 곁들여 나온다. 맥주가 나시르막과 가격이 비슷하다.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종교를 허락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무슬림 국가다. 어디서나 술을 살 수 있으나 가격을 보면 주류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엄격한지 알 수 있다. 사실 한국보다 맥주 한 캔에 1000원 정도 비싸다. 그래도 현지 백반 격인 나시르막 한 접시와 맥주 가격이 똑같다니! 이건 좀 너무하다. 반주로 매일 술 한 잔, 물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는 한국인이 듣는다면 ‘과연 쿠알라룸푸르는 한 달 살기를 할 만한 곳인가?’라고 반문할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첫 한 달 살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도시를 제일 먼저 추천한다. 지구 반대편인 남미에서 한 달, 로망을 찾아 유럽 어느 도시에서 다시 한 달을 산다면, 너무 다른 문화와 피부색 때문에 불편한 마음속에서 시간을 보낼 확률이 높다. 더위가 두려운가? 나 같이 여름에 취약한 인간도 어디서나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의 축복에서 한 달을 보낼 수 있었다. 술이야 면세점에서 좋은 양주 한 병 사서 한 달 내내 마시면 되지 않겠나. 일행이 있다면 한 병 더 콜!

김은덕·백종민 부부

김은덕·백종민 부부

한 달 살기라는 여행을 처음 시도했던 10년 전 쿠알라룸푸르는 매일매일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왜 그때 숙소 예약업체에 항의하지 않았을까? 왜 문제 많은 숙소를 뛰쳐나와 호텔로 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 그 경험이 있었기에 10년째 무사히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건 분명하다. 여행 초반에 쌓인 경험치를 바탕으로 어떠한 난관도 해결할 수 있는 무적의 여행가 부부가 되었으니까.

여행도, 삶도 밑바닥을 보면 ‘아! 여기가 바닥이구나. 더 내려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끝이 있구나!’ 하는 안도, 그리고 어떤 문제를 마주해도 의연한 태도가 나온다. ‘이미 바닥을 봤는데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남지 않겠는가!’ 하는 정신 승리의 마음으로 술 한 잔 걸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정보

● 비행시간 : 6시간 30분(비지니스석을 타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
● 날씨 : 우기·건기 별 차이 없는 더운 날씨
● 언어 : 영어가 공용어 중 하나(그래도 우리 부부는 10년 넘게 영어를 배웠다)
● 물가 : 한국보다는 저렴하고 태국보다는 비쌈(특히 술이 비쌈)
● 숙소 : 월 500달러면 도시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원룸형 아파트 전체를 빌릴 수 있음

글·사진=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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